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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6 17:25 수정 : 2008.01.19 14:30

태안으로 놀러가자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태안으로 놀러가자

태안반도 가보셨나요? 지난 15일까지 109만명이 자원봉사를 위해 태안반도를 다녀갔습니다. 지난달 7일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로 바닷가에 퍼진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한마음으로 태안으로 달려간 거지요. 모두들 기름으로 얼룩진 돌들을 닦아내는 고된 자원봉사를 했답니다.

태안반도 가보셨나요? 태안은 자원봉사를 위해 가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 서해바다를 건너 온 모래가 1만5천년 동안 쌓인 신두리 사구, 시베리아의 시린 바람을 몰고오는 천수만의 겨울철새들이 바로 태안반도를 풍요롭게 해주는 주인공들이지요.

처음 해 보는 자원봉사 활동이 너무 고된 나머지, 겨울 칼바람에 쫓겨 서둘러 상경하셨다고요? 이왕 태안반도에 내려간 김에 한나절 더 둘러보질 그랬어요? 태안반도는 만이 깊고 뻘이 넓어서 많은 사람들을 거뜬히 품어줄 수 있거든요.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가 터진 지 한 달 보름이 지나고, 〈Esc〉가 태안반도에 놀러 갔습니다. 태안반도는 자원봉사자들의 땀에 씻겨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신두리 사구의 백사장도 누런빛을 되찾았고, 학암포의 파도도 푸름을 되찾았습니다. 기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안면도의 개펄과 천수만 철새들도 여전히 안녕합니다.

이번 기회에 태안을 가보세요. 자원봉사를 위해서도 좋고, 썰물처럼 빠진 관광객들 때문에 시름하는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도 좋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놀러가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여행 방식을 바꿔 보세요. 자원봉사와 여행을 함께하는 ‘볼런투어리즘’(voluntourism)도 해보고요, 태안 지역의 경제, 문화, 사회를 살리는 ‘책임 여행’(responsible tourism)도 해보세요.

태안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천수만 철새들이 시베리아로 돌아가기 전에, 태안으로 놀러 가세요.

태안=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럼에도, 바다는 아름다웠다

만대포구 기름굴뚝에서 혼합갯벌까지 태안반도 해안선을 따라 걸어보니…

이번 여행은 충남 태안군 이원면 태안반도의 북쪽 ‘땅끝’ 만대포구에서 시작했다. 만대포구에서는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대산석유화학단지가 보인다. 대산석유화학단지에는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오일뱅크의 기름탱크와 굴뚝이 솟아 있다.

“내가 몇 살처럼 보여?”

김기권씨가 2리터짜리 소주 됫병을 들고 때가 낀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글쎄요, 한 일흔 살쯤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까르르 웃었다.

“이 사람 여든이야. 나는 여든하나고.”

조선시대 학암포는 질그릇을 중국에 수출하던 무역항이었다. 지금은 학암포 멀리 태안반도 앞바다로 유조선이 지나간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만대포구 언덕 뒤 작은구매 해변에서 당산4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태안의 속살을 꿰는 사람들이 찾는 곰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굴을 캐는 것처럼 보였지만, 돌을 주워 헝겊으로 기름을 닦고 있었다. 김기권씨는 기름 닦는 손들에게 소주잔을 건네는 중이었다.

“글쎄, 한 10년이나 지났을까. 우린 저기에 기름공장이 들어오는 줄도 몰랐어. 몇 년 전에도 기름이 유출돼 이렇게 기름을 닦았는데.”

태안반도의 숨겨진 모래사장 작은구매와 기름굴뚝은 ‘부조화’적인 풍경이었다. 민속학자 주강현은 이 풍경을 들어 “국립공원에서 굴뚝이 보이는 건 코미디”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어쨌든 작은구매는 아름다웠다. 말세에 가까운 듯, <미래소년 코난>을 만날 수 있을 듯 기묘한 아름다움이긴 했지만.

태안반도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이원방조제를 건너 조선시대 질그릇을 수출하던 무역항이었던 학암포로 향했다. 학암포는 예전 그대로였다. 늙은 햇살은 모래밭에서 누렇게 튀어나가고, 겨울바람은 여전히 거칠어 모래에 풍문을 새겼다. 한 달 전 이곳에 끔찍한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과거를 알려주는 건 가끔씩 하얀 방제복을 입고 나타나는 자원봉사자 무리뿐.

학암포 아래에는 구례포, 구례포 아래는 신두리다. 파도와 바람이 신두리 사구를 쌓았다. 1만5천년 동안 바다가 실어온 모래는 언덕이 되었고, 그 위에는 각종 사구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겨울 신두리의 아름다움은 정작 모래보다는 모래를 덮은 갈대밭이다. 여름과 가을, 해당화와 통보리사초, 갯매꽃으로 푸르던 언덕은 지금 누렇다. 누레서 모래와 햇살이 구분되지 않는다.

“기름 냄새가 나는 건가요?”

“그럼, 안 나세요?”

기름 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아까부터 킁킁대 봐도 기척이 없다. 신두리 슈퍼마켓의 아줌마는 처진 눈을 바다로 돌렸다. 신두리 모래밭도 푸른 바다도 여전히 아름답다. 1만2547㎘의 검은 원유가 이곳을 휩쓴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면대교를 건너기 전 곰섬으로 빠졌다. 시인 안도현이 ‘모항 가는 길’에서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라고 묘사했는데, 태안반도의 곰섬이 그러하다. 곰섬은 태안반도의 속살을 훤히 꿰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곳이다.

곰섬의 아름다움은, 다음날 아침잠에서 깬 뒤에야 알았다. 바닷가 펜션, 마루에 난 미닫이문을 열었다. 바다는 썰물로 맨몸이 드러났고, 뿌연 안개는 갯벌을 가만히 감싸안았다. 저 앞에 피아노를 한 대 갖다 놓으면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 같은 풍경이겠구나 생각하는데, 주인집 고양이가 ‘야옹’ 하고 다가와 앉는다.

바다에 나가본 지 한 달이 넘었다. 포구 옆에 쌓인 어망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만대포구는 태안반도에서 북쪽으로 뻗은 이원반도의 땅끝이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백년 뒤 후손들은 무얼 주울까

태안반도 여행은 안면도의 남쪽 끝 바람아래 해수욕장에서 끝났다. 펄 갯벌, 모래 갯벌 그리고 펄과 모래가 섞인 혼합 갯벌이 공존하는 희귀한 해변이다. 혼합 갯벌은 무르면서도 단단하다. 갯벌에서 놀던 백로 발자국을 따라 할미섬 한 바퀴를 돌았다.

지난해 8월, 한 스쿠버다이버가 바람아래 바다 밑에서 고려청자를 주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섬에서도 마도에서도 주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태안 앞바다에서는 종종 수백년 전 보물이 발견된다고 한다. 지금은 대산석유화학단지의 유조선들이 줄지어 다니지만, 조선시대 태안 앞바다는 조운선들의 항로였기 때문이다. 수백년 뒤, 후손들은 태안 앞바다에서 무얼 주울까. 설마 기름이 뭉친 타르덩어리나 검은 오일볼을 치우며 우리를 원망하는 건 아닐까.

태안반도=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해변가의 돌에 패류가 딱지처럼 붙어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만대포구에서 보이는 대산석유화학단지.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태안반도 여행쪽지

석유문명을 성찰해보자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태안반도는 깨끗이 정비됐다.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물론 아직도 일부 갯벌을 파 보면 기름이 나오고, 민감한 사람은 남아 있는 기름 냄새를 맡는다. 서산 굴 등 해산물을 먹거나 갯벌 체험을 하기는 어렵지만 휴양형 겨울바다 여행은 너끈하다.

⊙기름 굴뚝과 기름 탱크가 보이는 이원반도의 땅끝에서 태안반도를 따라 내려오는 경로를 따른다. 여행의 테마는 석유 문명에 대한 성찰이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택하면 금상첨화다. 사실 태안반도는 자전거 동호인들의 주요 모임장소다.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도로와 숨은 포구들을 느린 속도로 둘러본다. 겨울이라 자전거 타기가 부담스럽다면, 안면도 백사장해수욕장∼삼봉해수욕장∼안면해수욕장∼꽃지해수욕장의 10여㎞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상당수 펜션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

곰섬에서 하룻밤 자기를 권한다. 횟집이 점령하지 않은 아늑한 곳이다. 펜션이 두 채 있는데 둘 다 현관문이나 거실의 미닫이문을 열면 갯벌이 펼쳐진다. 밀물 때는 정원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찬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기름띠는 곰섬에 오지 않았다. 개펄에는 바지락과 돌장게가 돌아다닌다. 그럼에도 곰바위펜션(gompension.co.kr)의 정정숙(44)씨는 “대부분 예약이 취소됐어요. 그러니 1만∼2만원이라도 할인해 드려야지요”라고 말한다. 주중 7만∼17만원, 주말 8만∼20만원. (041)675-4281. 바로 옆 시밀레펜션(similepension.com)도 10% 할인해 준다. 주말 10만∼20만원, (041)675-6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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