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기름유출 피해 모면, ‘똥새’와 ‘백조의 호수’는 물론 ‘희귀 아이템’까지 만나보자
천수만이라는 이름은 역설적이다. 천수만에는 바다가 없다. 1984년 현대건설의 에이(A), 비(B) 지구 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천수만은 바다에서 뭍이 되었기 때문이다.육지로 변한 천수만에선 생태계의 거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새만금 갯벌과 함께 서해안 최대 갯벌로 꼽혔던 천수만 갯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갯벌에 의지해 사는 바지락, 백합 등 갯벌생물은 전멸했고, 도요새 등 바다철새는 부쩍 줄었다. 대신 뭍에 사는 기러기와 오리류 등의 겨울철새가 90년대부터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간척한 농경지가 겨울철새들의 식량창고가 된 것이다. 천수만 철새들이 그나마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피해를 모면한 이유도 이들의 대부분이 천수만 농경지와 인공호수인 간월·부남호를 터전으로 삼기 때문이다.
큰기러기의 V자 협동비행은 계속된다
“천수만에 들어가면 길을 헤맬 거예요. 농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길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기준점을 하나 잡고 다녀야 돼요.”
천수만 생태안내자 모임의 김은자(40)씨가 혼자는 못 들어간다며 함께 길을 나섰다.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바다가 아닌 육지 천수만에 들어갔다.
처음 일행을 맞은 건 추수한 논에서 낟알을 주워 먹는 큰기러기 떼였다. 천수만에서 기러기는 ‘똥새’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흔한 새라는 비아냥거림이다. ‘똥새’란 소리를 들어도 큰기러기는 자연환경보전법상 보호야생종이다. 천수만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새다.
큰기러기는 시베리아 평원에서 2주 동안 쉬지 않고 날아 지난 9월부터 차례차례 천수만에 도착했다. 기러기들이 브이(V)자 대열로 날아가는 이유는 ‘협동 비행’을 최적화시키기 위해서다. 기러기가 브이자 대형으로 줄 맞춰 날개를 저으면, 뒤따라오는 새는 상승기류를 받아 힘들이지 않고 비행한다. 피곤해 뒤처지려고 해도 이탈 순간 대기의 저항력을 받아 다시 대열에 합류한다. 물론 대열의 선두에는 젊고 힘센 기러기들이 선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러기는 혼자서 날아가는 것보다 최소한 71% 더 먼 거리를 날 수 있다.
“그래도 기러기들은 겁쟁이죠. 조금만 인기척이 나도 금방 자리를 떠요. 반면 큰고니는 워낙 몸이 무거워 웬만하면 날지 않아요.”
우아한 자태의 큰고니는 이즈음 천수만 ‘희귀 아이템’ 중 하나다. 일명 ‘백조의 호수’(백조류에 큰고니가 속한다) 간월호에 큰고니들은 중년의 귀족 부인처럼 떠 있는데, 역시 ‘똥새’인 청둥오리들이 떠들썩하게 날아도 그저 ‘춥다’며 가느다란 머리를 날갯죽지 사이에 파묻을 뿐이다. 큰고니는 보통 4∼6마리 가족 단위로 모여 다닌다. 꾀죄죄한 빛깔을 지닌 고니는 털갈이가 끝나지 않은 한두 살 먹은 새끼고, 발레리나 같은 우아한 털을 가진 이들이 엄마 아빠다.
“노랑부리저어새도 외곽서 곧잘 출현”
큰고니가 날갯짓 한번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며 망원경에 눈을 대고 있는데, 말똥가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황조롱이는 제자리에 떠서 헛날갯짓을 하고 있다. 먹잇감을 노리고 단번에 돌진하려는 태세다. 이들은 맹금류, 그러니까 천수만 농경지에 퍼져 있는 설치류를 잡아먹는 육식성 조류다. 심지어 청둥오리도 공격한다.
김씨는 “‘희귀 아이템’ 흑두루미 200여 마리도 방문했고 노랑부리저어새도 외곽에서 곧잘 출현한다”고 했지만 이날은 눈에 띄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모든 철새를 ‘구경’하려 했으니. 천수만에선 인간이 새들을 방문할 수 없다. 새들이 인간을 방문하는 것이지.
해질녘이 되자 철새들은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큰고니는 잠홍저수지로 잠을 자러 가고, 기러기들도 브이자 대열을 갖추며 비행을 준비했다. 서로들 뭐라고 말하는지, 천수만은 새들이 우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천수만(서산)=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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