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탁현민의 말달리자
|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아, 새해가 왔는가! 했는데 어느새 몇 주가 흘렀다. 이 시점이면 많은 사람들이, 연말 연초에 세운 각종 계획과 다짐들을 소리 소문 없이 포기하거나 수정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계획과 다짐들은 다분히 선언적이거나 여러 사람에게 공언했던 것이기에, 포기와 수정에는 필연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빈정거림이나 잔소리 혹은 욕을 먹는다는 것에 상당히 후달린다. 결국 올해도 지키지 못할 금연을 선언한 축들은 의지박약 인간으로 낙인찍혀 복도에서 피우는 담배마저 눈치를 보아야 하고, 아침형 인간에 도전한 축들은 아침마다 온갖 갈굼을 당하게 되며, 몇 kg 감량과 같은 구체적인 수치까지 약속해 버린 축들은 매일 저녁 고픈 배를 움켜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하는 고문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라면을 끓이게 되는 것이다. 허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게 다 자초한 일이다. 어떤 계획이나 다짐이라도 그저 자신과의 약속이니 굳이 주변에 알리거나 할 필요가 없음에도 이 사람, 저 사람, 안사람, 밖에 사람에게 쓸데없는 말을 해버린 결과다. 해서, 어쩐지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그러나 왠지 자신이 없거나 결국은 포기해 버릴 확률이 높은 공언(空言)의 기술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공언의 기술은 무엇보다 여지를 남겨두는 게 중요하다. ‘담배를 끊겠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끊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거나 ‘끊어 볼까 한다’라는 투로 말해 보자. 결국은 실패하게 되었을 때 괜히 실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시작과 끝을 얼버무릴 필요도 있다. ‘오늘부터’, ‘새해부터’, ‘이 시간부터’와 같은 말들은 지양하고 ‘곧’, ‘슬슬’과 같이 다소 엉거주춤하게 시작을 알리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나 이미 쓸데없는 말들은 늘어놓고 신년 계획에 실패해버린 처지라면 이 말밖에는 대안이 없다. ‘아직 새해는 아니잖아. 구정도 안 되었는데.’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