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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6 21:17 수정 : 2008.01.16 21:17

주천 다하누촌은 본디 섶다리 마을로 이름 높았다. 섶다리는 보는 순간 건너고 싶어진다.

[매거진 Esc] 이병학의 마을을 찾아서
브랜드 마을로 다시 태어나 흥성거리는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다하누촌

사람살이가 모두 도시 중심으로 바뀌어갑니다. 도시 삶이 각박하다고 느낄 때 주말 이틀은 활력소입니다. 훈훈한 정과 정겨운 경치가 살아 있는 농어촌 마을의 사람과 자연 이야기를 전하는 ‘이병학의 마을을 찾아서’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정육점을 나와 만물상회, 싱싱야채 앞을 지나 부리나케 걸어가면서 최주형(56·전직 공무원)씨가 말했다.

“그 뭐래요. 안 보이던 동네 사람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나 돌아댕기는 느낌이래요. 지금 바쁘걸랑요? 나중에 말하자구요.” 식당 경력 5개월인 최씨는 지금 손님 추가 주문을 받아 ‘한우 암소 한마리 세트’를 사들고 돌아가는 중이다.

조용하던 산골 동네가 갑자기 들썩인다.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쌍섶다리 마을이다. 젊은이들은 줄고 빈 집은 늘어가던 평범한 촌마을에 외지 차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몰려든 외지인, 거리는 재개발 공사중

다하누촌 때문이다. 다하누촌은 ‘싹 다 한우고기만 파는 마을’이란 뜻이다. “한우와 한우가 아닌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온데” “자꾸 한우가 아닌 것을 한우라고” 우겨 팔고 섞어 파는 곳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로 한우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주천리 주민들은 거품을 뺀 한우고기를 싼 값에 팔기로 했다. 한 사람이 앞서고 주민들이 따라 나섰다. 이래서 지난해 8월 마을 브랜드 다하누촌이 만들어졌다. 주도적으로 일을 저지른 최계경(45) 촌장이 말했다. “유통구조를 바꾸고 새 판로를 텄죠. 아주 쌉니다. 같은 부위, 같은 품질에서 일반 마트의 절반 내지 삼분의 일 값이죠.”

농가에서 한우 암소와 거세 황소만을 사들여(비거세 황소는 고기가 질겨 상품성이 떨어진다) 영월·제천 도축장에서 잡아서 가져온다. 거품을 걷어내, 시뻘건 한우고기 속이 속속들이 드러났다는 소식에 도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인구 800명인 주천면 소재지에 6개월 새 대형 정육점 5곳과 가맹식당 27곳이 생겼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들고 가맹식당으로 가면 야채·반찬비(1인 2500원)를 내고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가격 거품을 걷어내 부위별로 싼 값에 한우를 즐길 수 있다.
가격 거품을 걷어내 부위별로 싼 값에 한우를 즐길 수 있다.
인구 800명의 마을에 식당만 27곳이다. 식당들은 제 발로 찾아오는 손님을 받으며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가맹식당들은 제발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짭짤한 소득을 올린다. 주천시장 안에서 밥집을 하다 그 자리에 가맹식당을 낸 김순덕(48)씨는 대박을 맞았다. “첨엔 깜짝 놀랐댔어요. 시상에 이렇게 잘되는 장살 두고 내가 뭐했나 하고요.”

거리는 공사 중이다. 곰팡내 나던 옛 식당, 나른하던 옛 다방, 쓰러져 가던 빈집들이 안팎을 새로 단장해 다하누촌 간판을 내걸고 있다. 식당들을 한우불고기·숯불구이·연탄구이·곱창전골·육초밥·내장탕 등으로 전문화하는 작업도 벌어진다. 마을 전체가 쇠고기를 주제로 ‘재개발’되는 셈이다.

정육점과 식당들이 북적대자 다들 갑자기 바빠졌다. 슈퍼도 야채가게도 바빠지고 호프집도 다방도 시끄러워졌다. 음주운전 단속 경찰이 바빠지더니, 동네에선 꿈에도 생각 못했던 대리운전 기사도 생겼다. 전에 없던 ‘알바 문화’에다 ‘예약 문화’까지 자리잡았다.

올해 안에 한우 사료공장, 유기농 야채매장, 잡곡매장, 산나물매장, 약초매장 등 지역 특산물 전문매장들을 개설해 면민들을 참여시킬 계획이다. 최 촌장이 말했다. “가맹식당을 60곳 이상으로 늘릴 겁니다. 한우박물관도 짓고요. 국내 최고의 한우고기 관광마을이 될 때까지 밀어붙일 겁니다.”

졸지에 한우고기 관광마을이 된 이곳은 본디 섶다리 마을로 이름 높았다. 주천면 판운리와 주천리·신일리 주민들은 해마다 초겨울 각각 평창강과 주천강에 옛 방식대로 나무를 엮고 흙을 덮어 다리를 놓는다. 겨우내 강물 위에 엎드려, 주민들에게 흙길을 열어준다. 주천강 섶다리는 300년 전통의 쌍섶다리다. 부임하는 강원관찰사 일행이 장릉(단종의 능) 참배 길에 건넜다고 한다. 4인 가마가 건너도록 주민들이 다리 둘을 나란히 놓았다.

주천은 본디 술샘이다. 주천교 다리 밑 바위 틈에서 술이 솟았다고 한다.
건너고 싶어지는 300년 전통의 쌍섶다리

보는 순간 즉각 건너고 싶어지는 이 섶다리의 자태는 눈 퍼붓는 날 도드라진다. 눈발이 날릴수록 다리 윤곽은 아득해지고 아득할수록 강 풍경은 눈부시게 다가온다. 주민들은 섶다리 전통을 되살려 초겨울 지역축제로 발전시켰다.

이병학의 마을을 찾아서
주천은 술샘이다. 주천교 다리 밑 바위틈에 있었다는 샘이다. 양반이 가면 약주가, 상민이 가면 탁주가 솟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웃한 수주면 무릉리에 요선정과 요선암, 호야지리박물관이 있다. 5대 적멸보궁 절집의 한곳인 법흥사,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선암마을, 책·곤충·민화박물관,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장릉 등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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