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3 21:29
수정 : 2008.01.2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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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야, 피부를 구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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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레이저야, 피부를 구해줄래?
이른 아침 거울 앞에 앉아 뚫어져라 자신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던 30대의 백설 공주가 새엄마인 왕비가 그랬듯 마술 거울한테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내 코가 더 예쁘니? 아니면 신데렐라 코가 더 예쁘니? 쌍꺼풀은 어떤 거 같아? 얼굴 라인은?” 그 옛날 거울이었다면 “백설 공주님이 가장 아름다우시지요”라고 대충 대답했겠지만, 지금의 마술 거울은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피부야. 눈가와 입가의 주름과 볼 부분에 있는 색소 침착을 보라구!” 아무리 피부가 새하얀 백설 공주라도 ‘중력 제1법칙’ 피부 노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 거울의 충고를 듣고 정신 차린 2008년의 백설 공주가 제일 먼저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넣은 단어는, “주름 개선 화장품? 아니죠. 레이저? 맞습니다!”
쇼핑을 다니듯 병원을 찾는 ‘병원 쇼핑족’ 사이에서 가장 화제인 쇼핑 아이템은 이제 성형수술도, 다이어트 관련 시술도 아닌 ‘피부 레이저 시술’이다. 예뻐지려고 성형외과를 찾던 이들은 피부과로 발길을 돌리고 있고, 피부과를 찾는 여성의 대부분은 레이저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 문턱을 넘는다. 주름 때문에 피부과를 찾는 이들은 3년 전보다 약 5배 정도 늘었고, 색소와 관련해 병원을 찾는 이들도 약 3.5배 늘었다. 초등학생도 엄마 손을 잡고 레이저로 여드름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고, 칠순이 넘는 여성도 젊어 보이고 싶다며 병원 문을 두드린다. 이에 발맞춰 피부과가 아닌 수많은 여타 전문의원에서도 피부 레이저 기계를 들여놓고 가격 경쟁을 벌이며 성업 중이다.
‘젊음’과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불기 시작한 ‘레이저 열풍’. 왜 이렇게 사람들은 레이저에 열광하며, 또 레이저 시술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자.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촬영협조 반포 고운세상피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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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불기 시작한 ‘레이저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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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뽀송한 당신은 최상위계급!
피부계급 시대의 잔혹사, 19세기 전기 롤러에서 21세기 아이피엘까지
미국의 사회 트렌드 분석가인 페이스 팝콘이 미래에 유행할 열쇳말들을 엮은 <미래생활사전>에는 ‘미용 하위계급’(Cosmetic Underclass)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성형수술을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 나이만큼의 외모대로 살아가야 하는 하위계급을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깊이 패인 주름에 배어 있는 연륜’이라는 표현은 ‘주름에 배어 있는 궁핍함’으로 바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피부에 쌓인 세월의 더께를 인생의 훈장으로 삼을지, 치부로 느낄지는 선택의 자유다. 하지만 화장품 광고에서 ‘피부는 권력이다’라고 외치고, 연예인들의 ‘아기 피부’ 비결이 대중 매체를 도배하는 시대에 나이 먹는 즐거움을 거침없이 만끽하며 살기는 확실히 고난도의 마음수련을 요하는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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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뽀송한 당신은 최상위계급! 일러스트레이션 추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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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염 치료 위한 투열요법을 미용시술에 응용
피부를 젊게 만든다는 다양한 레이저 시술 역시 넓게 보면 미용 성형에 해당하지만 쌍꺼풀이나 코 높이기 등의 성형수술과 피부과 시술은 조금 다른 맥락에 있다. 성형수술이 예뻐지기 위한 노력이라면 피부관리, 또는 피부성형은 젊어지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실버시장이 생겨남에 따라 요즘 하나 둘씩 문을 여는 노화방지 클리닉들은 노화를 자연현상이 아니라 질병으로 규정한다. 질병이라는 건 완치나 개선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나이 먹는 즐거움>을 쓴 중년의 저자 박어진씨는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피부를 ‘개선’할 수 있고 주름살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정보들과 ‘성공 사례들’은 중년 여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며 “생긴 대로 나이들고 싶다는 내 소신은 피부과를 출입처로 삼는 또래들의 ‘부지런함’과 ‘투자정신’ 앞에 빛을 잃는다”고 적었다. 시원한 눈과 오똑한 코가 연예인을 닮고 싶은 젊은 여성들의 희망사항인 데 비해 탱탱하고 고운 피부는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노화 단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과 자기관리 노력의 척도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피부과에 대한 관심과 그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젊고 싱싱한 피부를 향한 열망과 기술적인 모험의 역사는 길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이미 주름살을 펴준다는 전기 롤러가 등장했다. 피부마사지사로 시작해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을 세운 엘리자베스 아덴은 관절염이나 근육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피부에 약한 극초단파를 쐬는 투열요법을 얼굴 마사지에 응용한 ‘유스 마스크’를 개발해 192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의 레이저나 고주파 시술의 싹은 야심 있는 미용사업가가 탄생시킨 셈이다. 또 전기의 대중화와 함께 등장한 전기 진동기는 종기·탈모·빈혈·천식·변비·요통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질병 치료와 함께 ‘주름살을 제거해 주고 동시에 여성들에게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 준다’는 해괴한 약속으로 40년 이상 사랑을 받기도 했다. (<아름다움의 발명>, 테레사 리오단 지음)
병의 치료에서 미용 목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은 그 옛날의 기계들이나 21세기의 ‘피부 해결사’ 레이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오타씨 모반, 혈관종 등 난치성 색소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피부과에 도입된 레이저가 미용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주근깨, 점 등을 없애는 데 레이저 시술을 찾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흠’을 없애는 데 사용되던 레이저 시술의 개념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이피엘 시술의 등장부터다. 강남에스엔유피부과의 김방순 원장은 “아이피엘을 통해 특정한 피부 문제가 아니라 얼굴 전체의 피부 재생을 도와 노화를 치료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레이저 시술과 피부 미용이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또 이전까지의 방법은 시술 후 어느 정도의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했지만 “아이피엘이 약한 강도로 여러 번 시술하는 방식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게 되면서 성형에 거부감을 가진 노년층까지 피부클리닉을 찾을 만큼 문턱이 낮아졌다”고 덧붙였다. 아이피엘의 성공으로 레이저 기기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다양하고 업그레이드된 레이저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술 견적에 따라 신분이 분류되는 세상
그래서 같은 레이저라도 한번 시술에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 몇천만원까지 더 좋고, 더더 좋은 시술방식이 눈 뜨면 새롭게 등장한다. 다시 돌아가자면 피부는 계급이다. 가까운 미래에, 또는 지금 생긴 대로 늙어가는 사람이 하위계급으로 대접받는다면 시술받을 수 있는 치료 종류의 가격대에 따라 계급 분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계급의 맨 꼭대기에는 누가 자리잡을까? ‘젊어지는 샘물’ 전래동화처럼 끝없이 젊어지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샘물을 마시다 마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기가 돼버린 사람이 아닐까. 피부관리도 능력이 된 시대를 삿대질할 필요야 없겠지만 온갖 시술로 영원한 20대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지금 ‘젊어지는 샘물’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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