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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3 23:11 수정 : 2008.01.26 11:54

한 유목민이 올가(올가미)로 야생마를 낚아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여행보다 고행에 가까운 모래세계, 몽골의 끝자락 고비의 고비를 넘어

몽골에 가기 전에는 몽골이 지구의 끝자락처럼 아득했다. 몽골에 도착해서는 이제 고비가 몽골의 끝자락처럼 아득하다. 아시아에서 아직도 탐험이나 모험을 해야 할 곳이 있다면, 몽골이 그렇다. 더더욱 고비에 가는 것은 사실 여행보다 고행에 가깝다. 내가 탄 지프는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외곽의 ‘어버’(돌서낭)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멈춘다. 고비까지의 무사운행을 비는 몽골의 풍습이다. 바퀴로 한 바퀴 돌고 나면 두 발로 또 한 바퀴를 돌며 운전사는 무사귀환을 빈다.

고비에서 만난 낙타 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비를 지척에 두고 빙하가 있다니…

이제부터 일주일간 운전사는 덜컹거리는 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여행자는 운전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고비의 길은 마치 ‘비포장길의 진수를 보여주마’ 하는 표정으로 여름 햇빛 속에 맹렬하게 누워 있다. 끝도 없고,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길. 울란바토르에서 몇 고개를 넘어가면 곧바로 지루한 지평선이 펼쳐진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초원을 굴러다니는 구름. 하늘과 초원 사이로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소떼와 염소떼가 지나가며 초원과 하늘의 틈을 간신히 떠받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는 바퀴가 달려간 자국이 고스란히 차선이 된다. 10차선, 20차선, 갈수록 늘어나는 차선과 갈증. 아침에 출발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작은 마을을 만난다. 10여 채의 건물과 수백마리의 양떼들이 점령한 마을. 여기서 점심을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굶고 마는, 정확히 끼니에 맞춰 나타난 초크토부 마을. 여기서 밥 먹고 출발하면 다시 저녁 때쯤에야 마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느닷없이 초원에 소나기가 흩뿌린다. 소나기 너머로 무지개가 걸려 있고, 무지개 사이로 양떼와 야생마 몇 마리가 풀을 뜯는 비현실적인 풍경. 길가에는 내내 야생 파꽃 무리가 일렁인다.

오아시스. 구유통에 물을 담으면 가축들이 몰려와 목을 축인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종일 달려서 덜컹거리는 지프는 만달고비에 도착한다.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지는 곳. 여기서부터 초원이 다하고 진정한 모래 세계가 펼쳐진다. 말이나 양떼 대신 모래벌판에는 이제 낙타가 자주 눈에 띈다. 가도 가도 모래땅. 다시 하루를 꼬박 달려서야 공항이 있는 사막도시 달란자드가드에 가 닿는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사막이 펼쳐진 홍고린엘스까지는 또다시 하루를 달려야 한다.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는 얼음 계곡으로 알려진 욜링암이 있는데, 사시사철 녹지 않는 빙하가 이곳에 있다. 고비를 지척에 두고 빙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내내 말이 없던 운전사는 초원의 언덕에 차를 세우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로 드디어 모래의 바다, 고비사막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울란바토르에서 꼬박 사흘을 달려서야 고비사막에 도착한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이곳은 아직 사막이 아니라 사막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홍고린엘스다. 때는 저녁이어서 석양 속 사막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아침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침 햇살이 모래언덕에 부딪쳐 고비사막은 더없이 눈부신 황금 물결을 이룬다.

모래언덕의 굴곡.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자 게르(몽골의 전통 천막가옥) 한 편의 세면통에서는 눈물겨운 풍경이 연출된다. 기껏해야 2리터쯤 물이 담긴 세면통의 아래 꼭지를 누를 때마다 한방울 한방울 물방울이 떨어지고, 게르 주인인지 여행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골인은 그것을 손바닥에 받아 세수도 하고 목까지 닦는 것이다. 사실 몽골에서는 우리가 먹는 2리터 생수 한 통이면 온가족이 세수하고 남겨서 이튿날까지 세수할 분량이다. 어차피 이 세면통은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고비의 원주민은 세수하는 것조차 사치에 가깝다. 나도 세면통으로 가 현지인이 하는 모양으로 물방울을 받아 세수를 한다. 겨우 물 한 모금 정도로 세수를 마치고 나자 느닷없는 모래돌풍이 세수한 내 얼굴을 덮치고 간다. 고비의 원주민이 굳이 씻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내가 방금 경험한 것이다.

고비의 야생마.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리터 세면통을 둘러싼 눈물겨운 풍경

정말로 고비고비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고비를 인생의 고비에 비유하고, 누군가는 ‘고비의 고비’를 이야기한다. 고비의 비유는 이제껏 너무 많아서 어떤 비유도 참된 고비를 수사하지 못한다. 오로지 여행자의 목적은 ‘시간의 무덤’인 저 사막에 발목을 내리고, 푹푹 빠지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기까지 가는 방법은 낙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여기서는 낙타만이 사구를 견디고, 모래땅을 건널 수 있다.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몸은 덩달아 기우뚱거린다.

사막은 이제 아침의 황금빛을 벗어버리고 흰색에 가까운 모래빛으로 바뀌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구의 곡선무늬와 물결무늬는 다가갈수록 선명하고 분명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사막이다. 난생 처음 나는 낙타의 등에서 내려 사막의 모래를 발목으로 느낀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발목이 잠긴다. 이런 사막에 빠지려고 나는 왔다. 누군가는 고비에서 모래알 만한 존재감을 안은 채 돌아가고, 누군가는 낙타의 눈에 비친 또다른 고비를 발견한다지만, 사막에서 내가 본 것은 사막의 궁륭(활의 등처럼 굽은 모양)에 뜬 낮달과 맹렬한 직사광선과 사막의 무늬를 제압하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사막의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싹을 틔운 갸륵한 새싹들이다.

고비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의 물결

살아 있는 동안, 다시 고비에 올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비가 아니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나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 내 앞의 광경은 나에게 마지막 풍경이다. 굳이 고비를 넘어갈 이유가 내게는 없다. 고비를 만나서 고비를 떠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던 고비에 대한 예의다. 낙타를 타고 나는 다시 사막을 빠져나간다. 그동안 사막까지 나는 사흘을 달려왔고, 사흘을 더 달려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것이다.

또다시 계속되는 모래땅, 허허벌판, 황무지, 도대체, 으악, 지평선, 적막, 단조로움, 덜커덩을 견디며 나는 또 이 모래벌판을 달려야 한다. 홍고린엘스에서 두 시간을 달려 만난 오아시스. 사하라의 오아시스처럼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벌판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다. 고작해야 그곳에는 샘이 솟는 우물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을 가축한테 먹이기 위해 긴 구유통을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의 오아시스 우물은 사방 수십 리에 걸쳐 사는 고비의 원주민과 가축들의 생명수다.

울란바토르 외곽의 어버. 돌서낭당이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양치기가 우물물을 길어 구유에 붓자 주변에 있던 수많은 염소떼와 양떼가 몰려와 목을 축인다. 누군가는 오아시스의 샘물이 무슨 대단한 구경이냐 하겠지만, 인근의 원주민과 아이들의 상당수는 매일같이 이 우물 주변에 나와 지나가는 여행자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 너무 조악해서 그냥 준다고 해도 가져가지 않을 것들을 버젓이 그들은 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장사 수단은 조악한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불쌍한 표정에 있다. 아이들의 불쌍한 표정이 배부른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이다.

가도 가도 초원이고 지평선인 풍경은 지루하도록 계속된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되었을 때, 고비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게르 밖으로 나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의 물결을 구경했다. 툭하면 초원으로 떨어지는 별똥별과 지평선 위로 곧바로 뜨는 월출도. 초원의 별똥별은 내가 별똥별의 추억을 새기던 어린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세계로 나를 몰입시켰다. 지구에는 아직도 이렇게 별똥이 수없이 쏟아지는 곳이 있고, 은하의 물결이 다 보이는 곳이 있구나, 라고 나는 막 감격했다. 원초적이고, 본질적이고, 우주적인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몽골이고, 몽골의 진면목이다.

비와 돌풍, 두번의 펑크를 이기고 귀환

고비를 떠나 울란바토르로 돌아갈 때, 난데없이 소나기가 퍼부어댔다. 고비로 오는 날에도 소나기를 만났는데, 가는 날에도 똑같이 소나기를 만났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돌풍과 함께 바람이 차서 여름인데도 날씨는 초겨울과 같았다. 내가 탄 차도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는지 연달아 두 번이나 펑크가 났다. 그런데도 운전사는 느긋하게 우리의 70년대식 펌프기를 꺼내 설렁설렁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있다. 계속되는 비와 돌풍. 바람을 넣은 차가 거의 울란바토르 인근까지 와서야 하늘은 잠잠해졌다. 익숙한 초원 언덕을 넘어서자 불 켜진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주욱 펼쳐진다. 저녁 7시30분. 다시 나는 울란바토르에 입성한 것이다.

고비사막(몽골)=이용한/시인·여행작가

몽골의 전통 천막가옥인 게르 속 모습.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롤과 타락, 라이브 몽골 체험

고비에서 울란바토르를 갈 때, 노련한 운전수조차 두 번이나 길을 잃었다. 그때 우연히 구원처럼 나타난 초원의 게르 두 채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 게르 주인은 난데없는 손님에게 딱딱한 ‘아롤’(말린 우유 덩어리)과 ‘타락’(우유를 저어 걸쭉하게 만든 요구르트)을 내 왔다. 둘 다 몽골에서는 최고의 간식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것이 최악의 간식이다. 순식간에 변비를 치료하는 마술적 간식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순식간에 설사를 유발하는 기막힌 음식이랄까.

두번째로 만난 게르에서도 어김없이 아롤과 타락을 대접받았다. 그리고 아이락(말젖을 발효시킨 우유)과 아르히(아이락을 증류시킨 소주, 마유주라고도 함)까지. 우리 소주의 전통이 몽골의 아르히에서 유래했다고 하던가. 초원의 게르에서 만난 몽골 할아버지조차 아르히를 따라주며 ‘소주’라고 또박또박 발음했다. 음식과 술을 대접한 그들은 우리를 밖으로 데려가더니 ‘올가’(올가미)로 잡아온 야생마를 구경시켜주고, 말젖 짜는 것도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말까지 태워주었다. 길을 잃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진짜 몽골 체험. 나는 한번 더 운전사가 길을 잃기 바랐으나, 그것으로 라이브 몽골 체험은 끝이었다.

고비사막 지도
고비사막 여행쪽지

지프 빌리고 게르에서 묵어

⊙몽골 비자가 필요하다. 주한 몽골대사관(02-794-1951)에 신청하면 약 사흘이 걸린다. 3만8천원. 인천~울란바토르 사이에는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이 거의 매일 한 차례씩 운항한다. 왕복 60만~75만원.

⊙울란바토르에서 지프차를 빌린다. 왕복 520달러 정도다. 연료비는 별도로 내야 한다.

⊙고비사막에선 보통 게르에서 묵는다. 15~30달러. 음식은 3000~5000투그릭(3천원~5천원) 정도다. 고비에 갈 때는 지프가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생수를 싣고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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