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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긴자의 스타벅스. 때론 안전한 카페 체인에서 쓸쓸한 익명이 되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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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모퉁이를 돌아가면 카페가 있다. 아주 작다. 겉으로 보이는 테이블은 불과 둘, 주방을 돌아가면 다락방의 앉은뱅이 책상 같은 자리 둘. 골목에서 서성이면, 주인이 창을 열고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셨던가 봐요.” 쑥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모두 낯익은 손님들이다. 주인은 메뉴판도 주지 않고 “그거요?”라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동네 사랑방 같은 카페, 참 좋은 풍경이다. 요즘 모퉁이 카페에 고민이 생겼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대로변에 커다란 커피 체인점이 들어선 거다. 단골들이야 이 카페로 직행하겠지만, ‘커피 한잔 할 데 없나’하며 킁킁대다 들르던 사람들은 그곳으로 갈게 아닌가? 상호도 눈에 익고 찾기도 편하니, 약속 장소로도 그쪽이 훨씬 좋아 보인다. 손님들까지 한마음이 되어 걱정이다. “여기 단골 중에도 배신자가 나올지 모르죠.” 미안하다. 내가 그 배신자다.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카페들에서도 영화 <유브 갓 메일>에 나오는 ‘모퉁이 책가게’와 대형 서점 ‘폭스 북스’의 대립구도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정치적으로는 작은 카페를 지지한다. 나의 카페정키 생활 역시 열 명도 못 들어가던 대학로의 카페 ‘데미타스’에서부터 시작했다. 서로 속삭임까지 들릴 정도의 작은 카페는 모두를 친밀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가족적인 분위기가 항상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카페를 찾아가는 이유 하나는, 이 도시에서 완전한 익명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개성은 떨어지지만 넓고 쾌적한 카페에서 내가 뭘 하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고 쓸쓸해지고도 싶은 게다. 가끔은 커피 맛이 나쁘지 않는 패밀리 레스토랑 구석 자리에서 에드워드 호프의 그림 ‘나이트호크스’와 같은 쌉싸래한 밤공기를 즐긴다. 어느 날인가 양재역에서 신사역까지 하릴없이 걸으며 스타벅스와 커피빈 가게 수를 세다 포기한 적이 있다. 벽지의 문양처럼 끝없이 따다 붙인(Copy & Paste) 그 복제물들을 찬양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낯선 동네에서 커피 한잔이 간절할 때, 구원을 얻은 듯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이 껄끄럽지도 않다.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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