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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14:12 수정 : 2008.01.31 14:12

<스위니토드> (2008)

[매거진 Esc] 김중혁의 액션시대

<스위니토드> (2008)

무서운 게 좋다. 아니다, 싫다!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모르겠다. 복잡하다. 면도칼로 사람의 목을 긋는다. 어쩜, 너무 잔인하다. 그런데 속시원하기도 하다. 나만 이중적인가? 아니다, 다들 그렇겠지. 그러니 공포영화라는 갈래가 있는 거겠지. 이왕 무서울 거면 온몸이 힘들 정도로 잔인한 게 좋다. 어설픈 깜짝쇼보다는 발가락이 찌릿할 정도의 공포가 좋다. 그런 공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영화는 많지만, 어떤 공포가 묵직하게 어깨를 내리누르는 영화는 드물다. 가장 극렬한 공포는 액션이 아니라 액션 이전의 침묵에 있다. 면도칼로 사람의 목을 그을 때보다 긋기 이전의 조용함이 더욱 무섭다. 침묵이 완벽할수록 공포는 배가된다.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는, 오랜만에 무서웠다. 가장 긴박한 순간인데, 주인공들은 어쩌자고 자꾸만 노래를 부른다. 뮤지컬이니까 그렇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공포가 극에 달한다. 죽이려는 자와 죽어야 할 자가 만났는데 대결은 하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때 부르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침묵이다. 스위니 토드가 악당의 목에 면도날을 대고 면도를 하는 순간, ‘스거륵’하며 짧은 수염이 깎여 나간다. 침묵의 순간이다. 팀 버튼은 관객들의 온몸에다 공포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다음 방심하고 있을 때 그걸 터뜨린다. 면도날 하나로 코끼리보다 더 거대한 무엇인가를 쓰러뜨린다. 그는 역시 고수다.

얼마 전에 본 <미스트>도 무서웠다. 설정부터가 무섭다. 안개가 끼었다. 그 안에 무언가 있다. 뭐가 있을까.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안갯속은 침묵의 세계다. 이런 설정을 생각해 내다니, 역시 스티븐 킹은 무서운 사람이다. 영화도 무섭긴 했지만 원작이 열 배는 더 무섭다. 폭풍우가 몰아친 직후의 풍경 묘사는 압권이다. 나무가 군데군데 쓰러져 있고, 전봇대도 쓰러져 있다. 끊어진 전선이 물웅덩이에 닿아 파밧!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다. 아이가 물웅덩이 근처를 뛰어다니고 있다. 아이가 발을 헛디뎌 감전될 것만 같다. 이리 오렴, 물웅덩이 근처에 가지 말고, 이리 오렴.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호수 위로 안개가 짙게 배어 있다. 안개는 천천히 다가온다. 침묵의 세계가 몰려온다. 아, 무섭다!


김중혁의 액션시대
주변에는 공포영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다. 좀비나 귀신이 등장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건 괜찮은데, 상황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상상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안갯속에 갇혔다, 라는 한 문장, ‘나를 죽이려는 자의 차가운 면도날이 지금 내 목에 닿아 있다’란 한 문장이 그 어느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다. 스티븐 킹의 <미스트>가 영화 <미스트>보다 더 무서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적게 말하는 것이 많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김중혁 객원기자 vonnegu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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