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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초코’라도 받아보세. 윤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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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5초면 따라하는 저급일본어
이 시기가 되면 초콜릿이 화제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갖가지 초콜릿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밸런타인데이는 그야말로 성자(聖者)가 내려준 기념일이다. 밸런타인데이를 둘러싼 마케팅 전쟁과 로맨틱 에피소드는 이 기념비적인 기념일을 기념할 만한 초콜릿을 정말로 ‘대량생산’해 낸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등장하는 웡카 초콜릿이 당연하다는 듯이 판매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차이는 있다. ‘초코’(チョコ)는 그 용도와 상품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가장 영예로운 왕좌를 차지하는 것은 ‘데즈쿠리초코’(手作りチョコ)다. ‘手’(て, 데)는 우리말의 ‘손’을 뜻하는 명사. ‘作り’(づくり, 즈쿠리)는 ‘만들다’는 뜻의 동사 ‘作る’(つくる, 즈쿠루)의 변형이다. 물건 앞에 ‘데즈쿠리’라는 말이 붙으면 그 정성스럽다는 ‘수제’를 뜻한다. 그 어떤 상표도 데즈쿠리의 가치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벨기에산 유명 초콜릿이나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메이지 초콜릿도 손으로 만든 ‘데즈쿠리초코’를 넘어설 수는 없다. 혹시 누군가가 자신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후 그것을 ‘데즈쿠리’라고 설명하면 정말로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 분말가루와 각종 용기 등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용품 일체’가 쇼핑몰에서 각광을 받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데즈쿠리의 정반대 되는 초코는 ‘기리초코’(義理チョコ). ‘義理’(ぎ-り, 기리)는 ‘의리, 인정’ 등을 나타내는 명사인데 대략 짐작 가능한 초콜릿이다. 누구나 한번쯤 마지못해, 인정상, 예의로 초코를 건네지 않는가. 하지만 ‘기리초코’ 역시 감추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기리초코였노라”라고 상대방에게 건네 준 초코의 등급을 당당하게 설명해 주는 편이 낫다. 기약 없이 기대하게 만드는 사랑은 쓰디쓴 카카오 98%짜리 초콜릿보다 더 잔혹하니까. 이은혜/축구전문 월간지 <포포투>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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