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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앞에 놓인 운명은 보신탕집 또는 안락사뿐이다. 사진 고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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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고경원의 애니멀 퍼스트
해가 바뀔 때마다 늘 하는 다짐이 있다. ‘올해는 좀 버리면서 살아야지.’ 공간 정리 전문가 캐런 킹스턴은 써야 할 물건과 버려야 할 물건을 가리는 기준은 ‘1년 동안 이 물건을 썼는가, 쓰지 않았는가’라고 한다. 1년 동안 한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라면, 앞으로도 결코 쓰지 않을 물건이니 버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버려야 할 것들로 가득 찬 창고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있는 것을 내다 버려도 모자랄 판에, 버려진 책이나 인형이 보이면 어쩐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덥석 줍고 마니, 이것도 고질병이다 싶다. 특히 헌책을 주워 읽다 보면, 속표지에 사랑 고백이나 축하·격려 말을 적어놓은 책이 눈에 띄는데, 그런 책을 보면 그 글씨의 주인공이 상상되어 마음이 스산해진다. 분리수거 전날 밤이면 운동도 할 겸, 폐지로 버려질 책도 구제할 겸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곤 하는데, 하루는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하다가 기이한 광경을 봤다. 재활용품을 분리해 가득 쌓아둔 가로등 아래, 조그맣고 누런 것이 줄에 묶여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종을 알 수 없는 잡종 강아지였다. 발작적으로 심하게 떠는 모습을 보니, 추운 것보다 중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경비 아저씨는 ‘누군가 와서 묶어놓고 갔는데 한참 지나도 찾아가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세상에, 개도 분리수거 품목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니. 키우던 개를 분리수거장에 버리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지, 어지간한 상상력으로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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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애니멀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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