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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구덩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홀즈〉(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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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중혁의 액션시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이 있다. 액션으로 시작하는 소설과 풍경으로 시작하는 소설. 나는 (당연히) 액션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팬이다. 풍경으로 시작하는 소설 중에도 좋은 게 많지만 액션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어쩐지 심심하다. 액션으로 시작해야 흥미진진해진다. 액션으로 시작하는 소설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폴 오스터다. 그의 소설은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사건으로 뛰어든다. 〈거대한 괴물〉이라는 작품의 시작은 이렇다. ‘6일 전, 위스콘신주 북부의 어느 도로변에서 한 남자가 폭사했다.’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한 남자가 죽어버린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달의 궁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액션의 시작으로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소설 중 진정한 액션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우연의 음악〉이다. 〈우연의 음악〉은 한마디로 ‘주인공이 삽질하는 이야기’다. 속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삽질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나쉬는 소설 속에서 ‘의미 없는 벽을 쌓아 가는 일’만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과 함께 ‘의미 없는 벽’을 쌓아 가는 듯한 기분이 들고, 다 읽고 나면 실제로 몸이 뻐근하다. 풍경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뻐근하지만 액션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온몸이 쑤시다. 인생이 노동 같고, 삶이란 결국 삽질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책읽기의 색다른 경지다. 폴 오스터가 벽 쌓기의 달인이라면, 반대편에는 구덩이 파기의 달인 루이스 새커가 있다. 루이스 새커의 소설 〈구덩이〉(창비, 김영선 역)는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돼 있지만 삽질 좀 해본 어른들이 더 재미있어 할 만한 소설이다. 흥미진진하며 파란만장하다. 이야기의 설정은 간단하다. 사막 한가운데 소년원이 있다.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은 하루에 하나씩 구덩이를 파야 한다. 구덩이 속에서 뭔가 흥미로운 게 나오면 소장에게 알려야 한다. 시작은 간단하지만 과정은 우여곡절 투성이고, 소설 곳곳에 파놓은 구덩이에는 비밀이 묻혀 있으며, 마지막은 창대하다. 모름지기 균형 잡힌 액션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머리와 몸을 함께 혹사시켜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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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액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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