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2.20 21:49 수정 : 2008.02.24 10:07

주민들이 만든 전통 생활용품들. 보람과 짭짤한 소득을 안겨준다.

[매거진 Esc] 이병학의 마을을 찾아서
주민들의 옛날 솜씨로 농촌체험객 불러모으는 김천 증산면 장뜰마을

짚풀공예 담당 김홍배(74)씨가 가르치기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

“새끼를 이래 꽈옇고 요래요래 묶어 요짝조짝 다시 꽈옇고 해서 맨드는 긴데, 한 시간을 갈콰줘도 몬 하는 기라. 계란꾸리미, 짚신 삼기도 이래 애려운데 멍석 짜기를 우예 갈치노, 고마.”

노인회장 최병욱(77)씨가 배우기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

“고래 복잡시럽게 하모 우예 알아듣노. 저짝(방문객) 따라하기 좋쿠러 쉽게 지대로 갈차야지.”

새끼 꼬기, 옛날 이야기 들려주기…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장뜰마을 마을회관. 방문객 체험행사 발전 방안에 대한 토의가 한창이다. 평일 밥상을 물리고 나면 가마솥 찐빵 담당, 전통 식혜 담당, 강정 담당, 옛날이야기 담당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국수도 삶고 화투판도 벌인다.


짚풀공예 담당 김홍배(왼쪽)씨와 이보영 추진위원장.
한 주민이 체험행사에 쓸 땔감을 자르고 있다.
장뜰은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마을 한복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정겹고, 집마다 울타리 안팎엔 호두나무·감나무·벚나무 고목들이 즐비하다. 여느 마을처럼 아기 울음소리 조금도 들리지 않고, 호호백발 어르신들만 고목들처럼 자리 잡고 계신다. 주민 50명 중 40여명이 60대 이상이다. 다른 점은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활기가 넘치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증산면은 북으로 가묵재, 서로 가랫재, 남으론 해발 1317m의 수도산 줄기가 둘러싼 산속 평지 마을이다. 평촌리 장뜰은 수도계곡 들머리에 있다.

태풍 루사와 매미가 이태 연속(2002∼2003년) 마을을 휩쓸었다. “김천서 둘째 가라카마 섭한 계곡이 말해자문 수도 계곡인데, 고마 뻬만 남고 다 씰려내리가 삤어.” 세간도 가축도 떠내려가고, 집 안팎으로 돌과 모래가 가득 쌓였다.

시름에 잠긴 마을에 희미한 희망가가 들려왔다. 농촌진흥청이 지원하는 전통테마마을 사업. 처음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옛 관광농원사업 실패의 기억이 생생한 터에, 젊은이도 없는 산골에서 또 무슨 사업이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추진위원장 이보영(76)씨가 화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했다. “저마다 땅만 파먹고 살던 사람들이 모여서 낯간지럽게 무슨 사업이냐며 시큰둥해했지요.”

재주라곤 농사짓고 밥 해먹고 놀고 이야기하는 것뿐이었다. 그 재주가 보배였다. 주민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모았다. 도시민을 상대로 농촌 체험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산골의 자질구레한 일상생활 자체가, 도시민들에게 고향의 정을 느끼고 배우게 하는 ‘솜씨’로 거듭났다.

찐빵이 익어가는 가마솥.
수도암 법당 앞 삼층석탑. 멀리 가야산 연화봉이 보인다.
처음 겨우 여섯 가구를 참여시켜 시작한 일이 조금씩 굴러가게 되자, “내도 마 요런 재주는 있다 안 카나” 하며 하나 둘 다가왔다. 4년 넘은 지금은 각 분야 솜씨꾼을 비롯한 주민 대부분이 팔을 걷어붙이고 참가해 판을 키워가고 있다. 연간 6천여명의 가족·단체 체험객이 찾아와 정을 나누고 전통문화를 배우며 어르신들에게 보람과 짭짤한 소득을 안겨준다.

이 마을에서 즐기고 맛볼 수 있는 솜씨는 이런 것들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전통 식혜인 석감주와 약단술 만들기, 가마솥 찐빵 만들기, 짚신·바구니 등 짚과 풀로 생활용품 만들기, 밤새 마을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감자·고구마 구워먹기, 맷돌로 콩 갈아 순두부 해먹기, 옛 농기구 알아보고 직접 써보기, 나물 캐기·수확하기, 썰매타기·쥐불놀이·널뛰기·비석치기 하며 놀기 …. 야생화 터널도 만들고, 전통 차 체험도 시작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새단장한 방에서 묵으며 그 집 안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시골 밥상을 받는 건 물론이다. 아침엔 아름다운 절집 청암사로 산책을 나서거나 수도계곡을 따라 올라 수도암까지 가벼운 산행을 할 수도 있다. 계곡엔 용소폭포·와룡암 등 좋은 경치가 숨어 있다.

옛날이야기 담당 박종수(75)씨가 대화의 소중함에 대해 말했다. “얘길 해야 서로 통하는 기라. 언제든 와가 얘기 듣자카마 내 고마 밤을 새라캐도 샌다.”

신라 때 창건한 사찰·암자가 세곳이나

이병학의 마을을 찾아서
평촌리 주변엔 신라 때 창건된 사찰·암자가 세 곳 있다. 수도산(불령산) 자락의 청암사와 수도암, 증산면 소재지에 있던 쌍계사 터다. 청암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절로,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폐비된 뒤 내려와 복위를 기원하며 4년을 머문 곳이기도 하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수도 도량이다.

수도암도 청암사·쌍계사와 같은 시기에 세운 암자로 전한다. 6·25 무렵엔 빨치산 불꽃사단 본거지였다. 법당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전망의 끝에 연꽃을 빼닮은 가야산 연화봉 자태가 또렷하다. 대적광전·약광전의 두 석불과 마당의 동서 한 쌍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법당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는 쌍계사는 면사무소 뒤 시루봉 밑에 있다가 6·25 때 불탔다. 주춧돌과 부도, 노송들만이 오래된 절터임을 짐작게 해준다.

김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