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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05 18:29 수정 : 2008.03.07 16:41

노이에 도나우 강변에서 본 도나우 시티 전경. 도나우 시티는 ‘성장하는 도시’라는 콘셉트에 따라 12년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매거진 Esc] 21세기 건축기행4
홀로코스트에 스러진 빈 사회주의의 추억, 그리고 가스공장 사람들

누군가는 유럽에 대한 그리움을 안개와 가스등 때문이라 했건만. 노란 달들이 길거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 안개 속에서 매캐하고 흐린 빛을 발하는 가스등의 길을 걸어보는 상상은 이제 과거의 이들을 질투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다 오래된 가스공장이 빈(비엔나)의 외곽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래된 산업건축물을 미술관이나 예술가의 작업장으로 재활용하는 예들은 더러 보았지만 주택이라니! 빈행의 시작은 오직 주택이 된 가스공장에 집중돼 있었지만, 행로의 마지막은 그 도시가 추구하는 ‘주택’ 전체로 확장됐다.

현대주택으로 거듭난 가소메터

빈 중심에서 남쪽으로 운하를 따라 꽤 먼 거리. 그곳에 100년 전 가스공장이던 가소메터가 고스란히 남았다. 가스등을 밝히던 가스를 저장했던 이곳은 1986년 가동이 중단됐고, 이후 폐쇄되면서 문화재로 지정돼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남겨졌다. 그러다 2001년 가소메터는 다시 태어났다. 지금 가소메터는 역사적 유물로서 산업건축물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삶의 공간이다. 역사적인 산업문화재가 문화시설과 기본설비를 갖춘 현대적 공동주택으로 변모한 것이다.

2001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메가플렉스. 엔터테인먼트 센터로 가소메터 맞은편에 있다. 가소메터와 다리로 연결됐다.
가소메터와 메가플렉스를 연결하는 다리.
전철에서 내리자 우뚝 솟은 굴뚝과 타워크레인, 공사 중인 대지들, 알록달록한 색채로 중심임을 드러내는 극장의 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개발 중’이라는 번잡함과 활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곁에 잠자리의 날개처럼 가볍게 솟구칠 듯하면서도 딱정벌레처럼 견고해 보이는 휘어진 유리탑이 보인다.

유리탑은 지름이 60m 이상, 높이 70m가 넘는 거대한 가스 저장 탱크 네 개 중 하나에 살짝 붙어 있다. 단단한 붉은 벽돌의 원형 건물과 조각된 듯 우아한 창들을 바라보며, 유리탑은 건물을 향해 겸손하게 인사한다. 건축사무소 코오프 히멜블라우가 설계한 이곳은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이고 있다.

가소메터의 건물 네 채는 각기 다른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건물들은 서로 연결됐고 연접한 위락시설 건물들과도 다리로 연결됐다. 단지 안에는 2천∼3천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음악당과 극장, 기숙사가 있고, 또한 가소메터의 역사를 보존하는 기록보관소가 있다. 800가구에 1600명이 살고 있고 70개의 기숙사에 250명의 학생들이 생활하며 가소메터 공동체를 형성한다.

가소메터 에이(A)는 장 누벨이, 비(B)는 코오프 히멜블라우가, 시(C)는 산업 건축물 보전에 힘을 쏟는 만프레트 베도른이, 디(D)는 빌헬름 홀츠바우어가 설계했다. 유리막대 모양의 건물은 비(B)로 학생 기숙사다.
내부는 거대한 천창을 통해 자연 빛을 끌어들이고 있고 중앙에는 중정과 슈퍼마켓, 카페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옛 공장 지대의 황량함에 자연의 생기를 주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생필품과 최신의 문화를 공급받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된 공간들이다. 건물 속의 사람들은 자연의 중정을 내려다보고, 멀리까지 뻗은 도시를 바라보며, 하늘에서부터 그대로 덮쳐오는 빛을 받는다. 가스공장 안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이웃들과 만나고 대화한다.

블루칼라 계층 구역의 슬픈 역사

1910년대, 1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빈의 정치적 상황에서 많은 일들이 터졌다. 1918년 2월 클림트가 숨졌고, 두 달 만인 4월 바그너가 세상을 등졌으며, 10월에는 에곤 실레 차례였다. 11월 휴전, 그리고 합스부르크가의 몰락, 공화제 성립이라는 큰 획이 빈을 긁고 지나갔다. 그 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빈에는 사회주의 사상이 유행했는데, 당시 건축물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카를 마르크스 호프다.

지하철 우(U)4의 종점, 빈의 블루칼라 계층 구역인 하일리겐슈타트로 간다. 역사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눈앞에 우뚝 선 카를 마르크스 호프에 흠칫 놀란다. 당시 사회당의 건축 정책으로 나오게 된 빈 최초의 서민주택(Sozialbau)이자 노동자 전용 주택이다.

빈 최초의 서민주택인 카를 마르크스 호프.
1919년 이후 15년간 빈 인구가 6만3000명 이상 늘어나자 이들을 위한 도시주택개발 정책에 따라 카를 마르크스 호프를 지었다. 1㎞가 넘는 단일 건물. 그리고 그 안엔 여성 노동자들을 돕는 탁아소·세탁소가 있다. 또 싼 임대료로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두고 만든 카를 마르크스 호프는 그때로서는 대단한 개혁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에게는 책(교육)을’, ‘남성에게는 쇠사슬에서 해방(노동 해방)을’이라는 시대정신이 건축에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 호프의 이상은 잠시였다. 1938∼39년 이곳에 살던 66가구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됐다. 그리고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합병 뒤 유대계 사회주의자의 소탕 국면에서 카를 마르크스 호프는 최대의 희생자가 생기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게 됐다. 7층 아파트 아래로 아치형 통로에 아픈 역사가 기록됐다.

카를 마르크스 호프 안에선 이곳이 빈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아주 다른 어떤 곳, 낯익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사태에 당황한다. 전철역에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돼 있는 것 같다.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다시 전철에 올라탄 나는 한참 동안 길게 이어지는 카를 마르크스 호프의 호흡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21세기 건축기행 끝>

빈(오스트리아)= 류혜숙/자유기고가


알트 도나우 강변의 전경.
섞이면서 튀는 세련된 공동체

빈 도심의 주택개발에서 예술성과 도덕성을 논함

도시의 근교, 즉 ‘외곽’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풍경이 있다. 19세기 빈(비엔나) 도심을 휩쓸었던 건설 붐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뻗어나갔다. 외곽 지역에도 중·하층민의 임대주택들뿐 아니라 정원을 갖춘 저택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도심의 거대한 임대주택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빈의 부자들 중에는 외곽의 정원주택으로 옮겨 가는 이들도 생겨났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도 근교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시인 호프만스탈과 건축가 오토 바그너,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그리고 화가들 모두가 도시 외곽의 새로운 부르주아 주민들이 되었다. 브랜드화된 거대 건축가들이 도심의 밀도를 더욱 찬란하게 높이는 가운데 설 자리가 없었던 젊은 건축가들에게 외곽의 신흥 부르주아들은 일감을 제공했다.

그리고 불안과 불확실성의 19세기가 지났다.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4개국의 신탁통치 뒤, 1955년 영세 중립을 선언하며 그들이 택한 ‘중립’은 ‘균형’이었다. 무엇보다 임대주택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매우 흥미롭다. 특수한 정치 지형도가 만든 민중주택이 카를 마르크스 호프였다면, 현대의 가소메터는 단순한 주택 보급이나 역사적 산업건축물의 보존을 넘어 그들이 직면한 물리적·사회적 지형도가 할애한 새로운 섹터 개발로 보인다. 가소메터의 부활을 구심점으로 거시적인 이상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빈 도심의 주택개발 사례들을 보면, 비교적 소규모인 건물들은 확연하게 눈에 띄면서도 주변의 전통 주거지와 완전히 분리된 건물군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잘 섞이면서도 나름의 톡톡 튀는 개성과 매력을 살짝 드러내는 법을 아는 세련된 공동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 임대주택들은 도시개발과 임대주택협회의 공동 투자로 생겨났다. 오스트리아의 주거 정책은 정부 주도가 아니더라도 시행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수가 있는데, 정부는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대신 주택 임대료를 일정 수준으로 규제한다. 개인이 아닌 공공을 위한 주택개발과 동행하는 도시개발은 한 나라의 예술성과 도덕성을 가늠하게 한다. 도시를 성장시키는 방법,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빈 여행지도
빈 여행쪽지

모든 동선은 지하철로

가소메터는 빈 동남쪽 외곽에 위치한다. 지하철(U3)의 가소메터 역에 내리면 곧바로 모든 동선이 시작된다. 건물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옛 공장의 모습과 리모델링 과정을 상세히 그려놓은 패널을 보면 이해가 쉽다.

카를 마르크스 호프는 빈 북부 외곽에 위치한다. 지하철(U4)을 타면 외곽으로 진입하면서 지상으로 올라와 달리면서 중심부와는 전혀 다른 광경을 맛보게 해 준다. 종점인 하일리겐슈타트에 내리면 역 바로 앞이 카를 마르크스 호프다.

⊙ 지하철(U1)을 타고 도나우 강을 건너기 전인 포어가르텐슈트라세 역 앞에 보리스, 노이만 운트 슈타이너, 그리고 코오프 히멜블라우의 집합주택이 함께 있다. 도로에 면한 외부 모습은 평범하지만 다리를 이용한 어린이집, 과감한 매스의 표현, 정원 등을 볼 수 있는 중정을 놓치지 말자.

⊙ 지하철(U1)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도나우시티, 우노시티를 지나 알트 도나우 직전까지 현대 건축의 향연이 이어진다. 조금 긴 길이지만 걸어서 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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