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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의 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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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연초에 열 명 정도가 함께 일하는 조그마한 프로덕션을 하나 시작했다. 사장이 되면 여러 가지 즐거운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특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는 당혹스럽기까지 한데, 요즘은 나도 모르게 신새벽이면 눈이 떠지는 기적을 매일 경험한다. 문 닫힌 방에 앉아서도 모든 직원들의 행동을 감지하는 초능력이 생겼고, 대충 저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리는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빈말이 급속도로 는다는 사실이다. 빈말이란 누군가에게 일을 받아 수행하는 ‘을’의 입장에선 ‘갑’에게 응당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거리를 주는 사람들과는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부의 직원들과 사장의 관계에서도 속엣말을 하기가 참 쉽지 않더라는 것이다. 사실 사장이 되기로 결심했던 몇 가지 매력적 이유 중 하나는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말 마구 할 수 있음’이었는데 이게 절대 그렇지 않더라. 이런저런 실수 연발인 직원들을 발견할 때마다, 곱게(?) 야단을 쳐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말 확 뒤집혀 큰소리를 내게도 된다. 문제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기분도 꿀꿀하거니와, 국으로 앉아 욕을 먹는 직원은 더욱 의기소침해져 잘하던 일도 어리바리하게 된다. 결국 치밀어 오르던 화를 꾹꾹 참아내며 그래도 뭔가 잘한다는 칭찬이나 혹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빈말을 날리게 된다. 결국 이것이 사장의 화법이며 일상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일을 시작한 뒤에 전에 다니던 회사의 사장을 만났다가 짠한 기분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사장실 문을 닫고 웬만해선 내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야 그를 이해한다. 정말이지 어떤 날은…. 사장은 절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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