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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2 22:18 수정 : 2008.03.12 22:18

나는 쓴다, 거리에서

[매거진 Esc] 여행의 친구들

루브르 카페에 앉아 쓴다. 문인들이며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는 프라하의 클래식한 카페. 개중에는 프란츠 카프카, 그도 있었다고 한다. 카프카의 단골 카페라는 정보를 책에서 보고서는 좀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일 거라 예상했다. 오후 햇살처럼 환하고,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이 어울리는 우아한 카페다.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지만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한 잔 하기에는 더없이 쾌적하다.

주문을 해 놓고 수첩을 꺼내 든다. 별다른 내용은 없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나 때워 볼 요량이다. 그러니 쓴다기보다 긁적거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공항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수첩은 디자인이 별로다. 크기가 적당하고 종이 질이 좋아 참아 줄 만하다. 손에 쥔 파란 연필은 전날 카프카박물관에서 산 것. 파란색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연필 끝에 새겨진 카프카 사인을 보는 순간 그냥 집어 들었다. 볼펜도 아니고 연필이라니, 어쩐지 카프카와 어울린다.

집 떠난 지 한 달이 지나 수첩도 하나 장만한다. 연필에 맞추려고 한 건 아닌데 사고 보니 파란색이다. 디자인은 깔끔한데 써 보니 영 맘에 차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구류가 얼마나 좋은지 번번이 밖에서 느낀다.

길 위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종이에 까만 글씨로 남는다. 감상적인 수필가가 되기도 하고,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거리 풍경을 스케치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쓸 말이 줄고, 게으름은 늘어 새로 산 수첩은 반도 더 남았다.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던 수첩도, 카프카 연필도 지금은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 찾을 수 없다. 마음에 드는 것을 충동구매하고, 여행 내내 끼고 살고, 돌아와선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몇 년 지난 뒤 우연히 찾아내 읽는 재미 …. 이런 맛에 습관처럼 여행 가방에 챙겨 넣는다. 종이와 펜, 아날로그 문구류를.

김숙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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