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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9 17:52 수정 : 2008.03.19 18:00

피트니스 VS 헬스. 연합뉴스.

[매거진 Esc] 김중혁의 액션시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피트니스클럽’, 하면 세련된 체육복을 입은 멋쟁이 도시 남녀들이 팔뚝에는 아이팟을 찬 채 러닝머신 위를 우아하게 달리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헬스클럽’, 하면 중년의 사내들이 울퉁불퉁한 몸매를 과시하며 무거운 역기를 들어대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만 그런 느낌이 드나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그렇다더라.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단어의 모양새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피트니스’라는 단어는 보기에도 날씬하다. 군살 없이 미끈한 몸매를 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헬스클럽의 ‘헬’을 보고 있으면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울룩불룩한 근육질 몸매가 떠오른다. 온몸에 산맥을 새겨놓은 듯 지형이 복잡한데다 옆으로 넓은 글자다. 헬스클럽보다는 피트니스클럽의 발음이 좀더 어려운 점-나만 그런가? 침 튀기며 발음 연습해도 쉽지 않다-도 그런 선입견을 부풀렸는지 모른다.

요즘 내가 다니고 있는 곳은 야누스 클럽이다. 상호가 ‘야누스’인 것은 아니고 낮에는 헬스클럽이었던 체육관이, 밤이 되면 피트니스클럽으로 바뀐다. 그 변화가 사뭇 흥미롭다. 오후의 체육관을 장악하던 아저씨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 한때 정적이 감돈다. 고요한 시간이 지나고 7시쯤 되면 직장에서 돌아온 젊은 남녀가 체육관을 피트니스클럽으로 바꿔놓는다. 경쾌한 음악과 진한 땀 냄새와 흐린 향수 냄새와 수많은 시선들이 얽혀 피트니스클럽이 완성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날마다 가야 하는 직장도 없고 특별히 바쁜 시간도 없기 때문에 아무 때나 체육관에 갈 수 있고, 덕분에 헬스클럽과 피트니스클럽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김중혁의 액션시대
미국 의학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인 악독한 하우스 박사는 공원에 멍하니 앉아 달리기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갑자기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나는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생활을 상상한다. 저 아저씨는 정말 몸이 좋군, 그런데 오후 4시에 운동을 하다니, 자영업자일까? 어라 귀고리를 했네? 오렌지색 운동화라, 대담하군. 성격은 활달하겠지만 너무 수다스러울지도 모르겠어. 저 아가씨는 소심할 것 같군. 동작이 간소하고 웃는 법이 없어. 체육관에서 지급하는 운동복은 싫은가 봐. 빨래하기 귀찮을 텐데.

(운동은 건성으로 하며) 이런 관찰을 하고 있으면 운동하는 그들의 모습이 쓸쓸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들이 들어올리는 무게가 그들의 고민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이 달리는 속도가 그들이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고 싶은 후회처럼 보일 때가 있다. 헬스클럽의 아저씨들이나 피트니스클럽의 젊은 남녀나 모두 마찬가지다. 러닝머신 위에서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다가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바보 같은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긴 하지만 말이다.

김중혁 객원기자 vonnegu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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