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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 전시관에 전시된 북한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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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혁의 장난감공화국
장난감에 관심을 두고 수집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북녘에서 만들어진 장난감도 만나게 된다. 중국에서 그런 경우가 많고, 동남아 나라에서 열리는 무역 박람회에 출품된 장난감을 본 적도 있다. 대부분 우리네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것들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우리 장난감과 그리 다르지 않다. 몇 해 전 베이징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박람회에서 유럽 애니메이션 회사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북한’이란 단어에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에 북한 식당에 가서 식사할 것을 제안했다. 식사 자리 중간 화장실을 잠시 다녀 오는데, 식당 지배인 ‘동무’의 아들쯤 되는 아이가 북한군 로고가 박힌 ‘장난감 땅크’를 가지고 노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양철로 만든 그 ‘땅크’는 바퀴를 밀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저절로 굴러 가는 반태엽 장치 장난감으로 포신 끝에 빨간 램프까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일당백’이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다. 계산하는 사이 다시 그 ‘장난감 땅크’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입으로 부르르 부르르 소리까지 내며 굴려지던 소년의 땅크는 연신 빨간색 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의미 없이 한마디 내던졌다. “일당백이 뭐야, 일당백이. 어려서부터 장난감으로라도 전쟁 훈련을 시키니, 무섭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장난감 수집합네, 전문갑네 유난을 떨던 나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지만 화제는 금방 다른 곳으로 옮아갔다. 장난감을 매개로 생긴 조국 분단의 간극. 그런데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을 돌려 서울의 문구점, 완구점을 가 보자. 거기 남자 아이들 장난감 중에서 총·칼·탱크 아닌 것이 몇이나 되나. 공격, 전진, 파이팅, 섬멸 같은 호전적 단어가 씌어지지 않은 게 얼마나 되나. 우리도 벌써부터 아이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고 있다는 건가. 그건 그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우리편 나쁜편’하는 단세포적 영웅담의 아이콘일 뿐인 것이다. 그 아이들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죽음과 이별을 얼마나 심오하게 생각하기에 총과 칼과 탱크를 들려준다는 것인가? 그런 아이들의 장난감에 냉전주의식 사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여하는 우리들의 시각은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조악한 품질의 ‘일당백 땅크’보다도 장난감을 둘러싼 이 서글픈 현실이 더욱 우울해지는 순간이었다. 김혁 장난감수집가·테마파크기획자 blog.naver.com/khegel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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