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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멈춰 카페가 된 자동차는 자전거 손님을 기다린다. 도쿄 나카메구로의 자동차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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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겨우내 차고의 먼지 속에 침몰해 있던 스쿠터를 발굴해낸다. 시동 버튼은 혼절 상태, 수동으로 몇 번이나 차고 나서야 겨우 기진맥진한 엔진 소리를 뱉는다. 그 길에 충무로로 가서 정비를 받고, 무작정 봄의 도로를 달린다. 생각 없이 너무 멀리 왔나? 어느덧 바닥나 버린 기름통을 채워줘야 할 때가 왔다. 더불어 나의 뱃속엔 찌릿한 커피 한 잔이 들어가 줘야겠다. 어설픈 희석액이 아니라 순정의 황금빛 오일로. 1960년대 유럽, 특히 영국의 장거리 도로에는 기름 먹인 머리에 검정 재킷을 입은 모터사이클 족들이 넘쳐났다. 이들은 로큰롤 음악에 심취해 ‘로커스’(Rockers)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카페-레이서’(Cafe Racer)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도로 곳곳에 세워진 카페를 거점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1시간 안에 100마일 거리의 카페에 먼저 도달하는 경주를 하거나, 주크박스의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에 목표한 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레코드-레이싱을 즐기곤 했다. 왜 카페였을까? 왜 이 폭주족들은 기네스 맥주병을 입에 꽂는 대신, 아라비아의 와인이라 일컫는 커피와 입을 맞추었을까? 죽기는 싫었던 거다. 아무리 불법을 일삼아도 알콜보다는 커피로 목을 축이는 게 훨씬 현명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던 거지.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아닌데,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봤자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테니까. 이 빡빡한 도시에서 50cc도 안 되는 스쿠터로 폭주를 흉내낼 생각은 없다. 다만 엔진이 가냘픈 만큼 더욱 자주 쉬어주어야 하고, 그만큼 징검다리가 될 카페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요즘 곳곳의 카페 창밖으로 스쿠터들이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이 도시에 새로운 카페-레이서들이 태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쿠터는 우리들끼리, 할리 데이비슨은 저들끼리, 장거리 트럭 운전수는 또 그들만의 카페를 원한다. 편안한 의자, 따뜻한 식사, 무엇보다 한 잔의 강렬한 커피 덕분에 더욱 먼 길을 떠날 수 있다. 언젠가 정말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소에 닿으면, 그들 스스로 카페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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