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3.19 21:15 수정 : 2008.03.21 14:52

스파게티 더 삶으라 하면 손님까지 삶을 기세였지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못말리던 다혈질’ 옛 동지 주세페 주방장을
9년 만에 찾아간 시칠리아에서 해후하다

주방은 주방장이라는 소황제가 군림하는 제국이다. 만약 유럽 사회에서 누군가를 때렸다가는 당장 쇠고랑을 찰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부글부글 끓는 기름처럼 욕구 불만에 가득 찬 요리사들이 설치는 주방은 예외다. 성기를 들먹거리는 욕설과 무자비한 폭력이 용인되곤 한다. 폭력은 고참 요리사의 특권이다. 그래서 주방은 치외법권지대가 되곤 한다. 적어도 내 견문에는 유럽에선 두들겨 맞았다고 경찰을 부르는 요리사를 본 적이 없다. 지난번에 어떤 주방장이 맘에 안 드는 요리사의 옷에 그라파(독한 증류주)를 끼얹은 후 라이터를 켜들고 태워버리려고 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디저트를 준비해”라는 말의 의미

그런데 종종 손님들이 화풀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어떤 이탈리아인 주방장이 요리 접시를 집어던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요리가 짜다고, 스파게티가 덜 익었다고 접시가 돌아오자 분노가 치밀었던 것이다. 다른 한국인 요리사들은 무슨 큰 난리가 난 것처럼 소동을 벌였지만, 나는 태평했다. 시칠리아에서 늘 보던 재방송 스펙터클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찰떡궁합으로 붙는 명대사가 있다.


“내 요리가 맘에 안 들면 오지 말란 말이야. 집에 가서 네 마누라가 만들어주는 미트볼 스파게티나 먹으라고.”

주석을 달자면, 미트볼 스파게티는 본토(?)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미국식 이탈리아 요리(사)를 경멸할 때 쓰는 은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이탈리아인 요리사들도 자기 할머니나 엄마가 만들어주는 미트볼 스파게티는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이탈리아에도 일찌감치 미트볼이 있었다. 이름이 ‘폴파 디 카르네’일 뿐, 만드는 법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걸 미국 사람이 만들어 먹으면 패스트푸드 비슷한 쓰레기 음식 취급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트볼은 이탈리아인에게 저급한 미국 음식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사랑의 레시피>를 기억하시는지. 주인공인 여자 주방장 캐서린 제타존스가 자꾸 스테이크가 많이 익었다고 불평하는 고객의 테이블에 생고기를 냅다 찍어 얹는 장면이 있다. 나는 ‘야, 저 시나리오 작가 취재력 대단한걸’ 하고 웃었다. 실제 외국의 식당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용감한 시칠리아 주방장 주세페는 꽤나 피가 뜨거워서 손님들과 투쟁도 불사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디저트를 준비해!’라고 말할 때는 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다. 내가 일하는 식당 ‘파토리아 델레 토리’에서 파는 맛보기 메뉴는 전채 두 가지, 파스타 두 가지, 고기나 생선 한 가지, 디저트로 구성된다. 그런데 아직 전채를 먹고 있는 손님 테이블에 디저트를 내란 것은 다시 말해서 ‘식사를 중단하시오!’라는 협박이다. 당신에게 음식을 팔 수 없으니 그만 나가서 작열하는 시칠리아의 태양이나 즐겨주십사 하는 간절한 호소나 다름없는 것이다.

스파게티 요리도 늘 말썽을 일으킨다. 도대체 ‘알 덴테’(al dente, 씹히는 질감을 살려서 삶기)는 어느 정도를 일컫는지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이게 헷갈린다. 누가 물어보면 그저 ‘봉지에 써 있는 대로 삶으세요’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그만큼 어렵다. 각자 기준이 다르다. 게다가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가 다르고, 스파게티를 먹는 유럽 사람들마다 또 다르다. 그래서 폼나는 이탈리아 식당에 가면 알 덴테를 거론하면서 경고(?)부터 하는 경우가 있다.

늘 말썽 일으키는 ‘알 덴테’ 스파게티

“우리는 모든 스파게티를 알 덴테로 제공합니다. 푹 익히시길 원하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웨이터가 이런 경고를 날리거나. 메뉴판에 써 놓곤 한다. 말은 점잖아 보이지만, 알 덴테로 덜 익힌 스파게티를 먹지 못하는 소화불량 환자거나 생전 이탈리아 식당이라고는 처음 와보는 촌놈이라고 고백하라는 협박인 셈이다.

이렇게 경고와 협박을 날려도 꼭 ‘덜 익었으니 더 삶아 달라’는 손님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손님을 다루는 주세페의 수법은 변화무쌍하다. 벌컥 화를 내면서 접시를 벽에 집어던져 박살을 내거나, 홀에 들으라고 소리를 지르거나(‘다른 식당을 안내해 드려!’)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저 조용히 그 접시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10분이고, 20분이고 처박아둔다. 웨이터가 달려와 난처한 표정으로 재촉을 하면, 웨이터 귀를 붙들고 소곤거린다. 이때 주세페의 표정은 마치 비밀 마피아 단원처럼 진지해진다.


피가 뜨거워 손님들과 투쟁도 불사했던 주방장 주세페(오른쪽). 9년만에 만난 그는 많이 늙어 있어,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케 카초(F로 시작하는 미국 욕과 같은 말)! 그 빌어먹을 스파게티를 더 익히려면 새로 불을 붙이고, 물을 끓여야 한다고 일러줘. 또 우리 주방장님은 워낙 바쁘셔서 스파게티를 새로 삶을 시간을 내시기란 아주 어렵다고도 얘기해주고.”

웨이터가 하얗게 질려서 쭈뼛거리면 그제야 그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농담이라구, 농담. 확실히 웨이터의 평균 수명은 주방장의 품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고는 스윽, 접시 위의 스파게티를 팬에 부어서 슬쩍 볶는다. 10분 이상 방치해둔 스파게티는 이미 팅팅 불어 있다. 이걸 다시 볶으니 그야말로 ‘개밥’이 된다. 포크로 뜨면 스파게티 전체가 소스랑 엉켜서 집단으로 공중부양을 한다. 그걸 손님에게 가져다주라는 거다. 웨이터가 당신 미쳤냐는 투로 눈을 동그랗게 뜨면 그는 다시 진지 모드로 속삭인다.

“이 식당은 내 거라구. 내가 주인이야. 손님이 주인이 아니야. 알아먹었어? 가격도 내가 정하고, 내가 맞다고 하면 그게 진짜 알 덴테얏!”

그리고는 벌벌 떠는 웨이터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친다. 얼른 가져다줘. 시칠리아 알 덴테의 쓴맛을 보여주자구!

최근 나는 파토리아 델레 토리, 그러니까 주세페 바로네가 주방장으로 일하는 시칠리아의 깡촌 식당을 9년 만에 방문했다. 세월의 흐름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아시아 사람은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이 동네에 중국 식당도 생기고, 별 네 개짜리 최고급 호텔도 문을 열었다. 코나 흘리고 다니던 녀석들이 멋진 선남선녀로 몰라보게 변신했다.

대로변의 공산당 사무실도 쇠락했구나

주세페는 많이 늙었다. 얼굴에 흰 수염이 가득했고, 걸음걸이도 중늙은이처럼 기운이 없었다. 식당 마당의 레몬 나무도 여전했고, 수수하지만 매력적인 그의 메뉴도 그대로였지만 ….

세월은 역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부주방장 페페는 독립해서 인근 도시에 식당을 차렸고(망해가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공산당의 텃밭이던 시칠리아에도 쓰나미를 몰고 왔다. 대로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공산당 사무실은 관광안내소에 자리를 내주고 옹색한 사회당에 통폐합되었다.

“으흠, 공산당은 이번 동네 선거에 아예 후보도 내지 못했다네. ‘카피탈리스모’(자본주의)가 대세지. 프랑스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은?”

쥬세페는 해소 들린 노인네처럼 기침을 해댔다. 그가 늙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처연해졌다. 그와 밤새 와인을 마시며 세상 얘기를 나눴다. 호텔로 나를 바래다주며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시골 동네에까지 아메리칸 바가 두 개가 생겼네. 요즘은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는 것 같아. 아침은 어쨌든 시칠리아식 쓴 커피와 비스킷으로 하자구. 다 바뀌어도 입맛은 안 변하는 법이야.”

박찬일 뚜또베네 주방장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