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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9 21:47 수정 : 2008.03.22 10:22

타이의 기간산업은 여흥이다. 수도 방콕은 쾌락산업의 1번지다. 방콕의 야경. 최규용

[매거진 Esc] 박정석의 오리엔탈 스타일2
특급호텔과 싸구려 여관을 전전하다 비싼 바지에 구멍을 내기까지

타이항공을 타고 동남향 방콕으로 날아가는 여행길. 싱을 마시며 기내지인 <사왓디>(Sawasdee)를 펼치자 다음과 같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알마니 스타일’ 신사숙녀복, 최고급 캐시미어 양복 두 벌, 실크셔츠/블라우스 두 벌, 여름 면 양복/드레스 한 벌, 실크넥타이/스카프 한 개
모두 199달러!

타이에서 쉽고 저렴한 것은 옷 맞추기뿐만이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을 향해 아낌없이 뿌리는 공짜 지도, 주말판 신문, 각종 전단지들을 한 번만 뒤적거려 보시라. 치아미백, 스켈링, 주름제거, 비만수술, 성기 확장·축소 수술, 마사지, 요리교실, 그리고-예전보다 공공연한 호객행위가 줄어들긴 했지만-모든 인종과 연령, 광범위한 취향을 빠짐 없이 아우르는 최강의 매춘 서비스까지. 그 뒤에 따라붙는 너그러운 두 문장. “출장서비스 오케이”, “세상의 온갖 신용카드 다 받아요.”

타이 사람들은 독실한 불교도들이다. 타이의 절에서 흔히 보이는 와불. 최규용
‘손님의 쾌락’은 명실상부 기간산업

오늘날 티베트의 위대함의 상당 부분이 세상 어디에서부터도 멀다는 것이라면 타이의 매력은 가깝다는 것이다. 콜카타의 특징이 어렵다는 것이라면 방콕의 장점은 뭐든 아주 쉽다는 것이다. 초보 여행자는 물론 1년 반 전 축출된 전 총리 미스터 탁신과 같은 정치인들에게도 방콕은 정말이지 너무 쉬운 곳이다. - 그렇다. 그는 그새를 못 참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타이의 기간산업은 여흥이며 목표는 오직 하나, 손님의 쾌락 증진이다. 파타야와 푸껫, 코사무이처럼 바닷가를 낀 관광지도 더 큰 쾌락 생산을 목표로 열심히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 나라 쾌락산업의 명실상부한 1번지는 역시 수도인 방콕. 타이어로는 크룽텝, 천사의 도시. 거대하고 살찐, 추악한 죄악의 도시.

다행스럽게도 여행자의 어리둥절한 눈에 비친 방콕은 그리 비만하지도, 추하지도 않다. 도시는 발전이란 미명 아래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을 새롭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감춰 버렸다. 에이즈 환자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 버림받은 노인들이 살아가는 빈민가는 전보다 더욱 수가 늘어난 특급호텔, 더 크고 호화로운 쇼핑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그늘에 파묻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각종 외제차들과 한손에 잡힐 듯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남방계 미인들, 한 집 걸러 식당들, 여행사, 상점, 백화점들. 환전서비스와 영어 안내, 그리고 부가세 환급은 기본이다.

쉬운 나라 타이도 예전보다 물가가 많이 뛰었다. 페닌슐라 호텔은 10년 전 개장 당시 프로모션 가격 99달러에 비하면 세 배 가까이 숙박비가 올랐다. 인근 오리엔탈 호텔의 프렌치 식당 르노르망디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전통과 분위기는 공짜가 아니어서 한국의 특급호텔보다 와인값이 더 비싸다.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가서 그랜드 하이얏의 에라완 티룸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신다. 바깥은 아직도 뜨거운 햇볕이 거리를 뒤덮을 시간. 페닌슐라로 돌아가 광동식당 메이지앙에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남은 몇 시간은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쇼핑센터 파라곤을 탐험한다. 덩치 좋은 마사지사는 약속대로 밤 10시 정각에 호텔로 찾아왔다. 출장비 200바트 추가.

서울로 돌아가는 동행과 작별한 나는 방콕에서의 마지막날, 옛 기분을 내기 위해 소이(골목) 카셈산으로 향했다. 카오산로드가 너무 번잡하다고 느끼면서 대안으로 찾게 된, 소위, “중년들의 카오산”이라 불리는 조촐한 숙박지역이다.

파타야를 넣은 샐러드 ‘씀땀’을 파는 노점상. 박정석
중년들의 카오산, 카셈산을 아십니까

단골인 스타호텔은 가난한 여행자들과 보따리상 손님들이 많은 싸구려 여관이다. 미지근한 바람을 뿜어내느라 무섭게 덜덜거리는 에어컨 딸린 객실이 예전보다 더욱 너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페닌슐라 호텔에서 보낸 며칠의 호사 때문일 것이다.

카셈산을 벗어나 쇼핑몰로 들어서자 강변호텔에서의 기억이 다시 따라붙는다. 길 잃은 공주처럼 마땅찮은 얼굴로 ‘자라’(Zara), ‘망고’(Mango) 등 소박한 브랜드숍을 줄줄이 지나쳐 어느 고가 옷가게 앞에 걸음을 멈췄다. 워싱이 과하게 된 청바지 … 10년은 족히 입은 듯 낡아 보이는, 그 시간이 진짜라면 모르되 가짜 세월값으로 치르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이다. 그러나 마침 며칠 뒤가 내 생일날.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는 말처럼 고독하고 이기적인 여자의 지갑을 쉽게 열게 하는 핑계는 다시 없을 것 같다.

다시 카셈산. 겸손한 광경에 제정신이 돌아왔다. 어둠이 내린 숙소 앞 골목길, 꼬치구이 장수가 판을 벌였다. 푸른 연기와 함께 천상의 냄새를 솔솔 풍기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서 몇 번을 뒤집힌 꼬치들은 따끈한 찹쌀밥(카오냐오)과 기가 막힌 조합이다. 돼지고기·닭껍질·닭간·닭똥집, 실컷 사도 50바트(1500원).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만찬에 곁들일 ‘창’ 맥주를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부드럽고 관대한 어둠이 누추함을 지워 버렸다. 낡고 좁은 호텔방은 어슴푸레한 전등 불빛과 함께 식욕을 돋우는 숯불구이 냄새로 가득 차 꽤 그럴 듯하게 변했다. 만찬을 마친 후 창문 커튼을 열어젖히니 맞은 편 숙소 베란다에 늙은 서양인이 벌거벗은 채 열심히 요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호텔 앞에서 신공항 가는 택시를 탔다. 기사는 미터기를 켜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수줍음도 없이 외친다. “300바트!” 내 대답은 노!. 빈 택시는 얼마든지 있다. 택시에서 내려 다른 택시에 올라탄다. 이번에도 기사는 미터기를 켤 생각이 없다. “300바트!” 5바트에 몸을 떨던 과거로, 카오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다시 내려 한 번 더 택시를 잡는다. 역시, “300바트!”

방콕은 빈 택시의 천국이다. 다시 내려 다음 택시를 향해 걸어가던 나는 순간 기다란 청바지단에 하이힐 앞굽이 걸리면서 앞으로 세차게 고꾸라졌다. 몸은 카셈산에, 마음은 아직도 강 건너 페닌슐라에 있다. 머나먼 두 극점 사이에서 경제관념은 찢겨지고 불행히도 내 몸 또한 마찬가지다.

어둠이 내린 골목길에는 먹을거리 노점상이 판을 벌인다. 박향라
빈 택시의 천국에서 “미터 플리즈!”

피가 배어나는 무릎보다 새 바지에 구멍 난 것이 더 가슴 아프다. 다행히도 바지에는 패션의 이름으로 이미 몇 군데나 의도적인 구멍이 뚫려 있다. 새로 찢긴 부분은 티도 나지 않는다. 비싼 바지 만세.

다섯 번째 택시에 오르자 눈치 빠른 늙은 기사가 휴지를 내어준다. “300바트, 오케이?” 나는 뚫어진 바지구멍을 비집고 침을 묻혀가며 상처를 닦는다. 왕후의 바지에 걸인의 마음가짐. “미터, 플리즈.” 방콕에서 택시기사로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마침내 영감은 나뭇가지처럼 바싹 여윈 팔을 뻗어 미터를 켠다. 지독한 년. 그러나 미러에 비친 노인은 웃고 있었다. 마이뺀라이.(이츠 오케이!)

박정석/ 소설가·<내 지도의 열두 방향> 저자


세계 제일의 배낭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 최근 들어 중산층 여행자들이 주된 손님으로 끼어들었다. 박진주

K, 다시는 널 찾지 않으리

심심한 동네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하게 바뀐 카오산로드

여행자들 사이에 로망이 된 케이(K)는 아시아만 찾아봐도 여러 곳이다. 여행 좀 했다는 베테랑이나 고생을 낙으로 아는 금욕주의자, 길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고독한 영혼들을 위해서는 저 멀리 카트만두·카불·카라코람이 있고, 휴가가 며칠뿐인 회사원, 알뜰한 배낭족, 마냥 놀고 싶은 청춘, 기타 헤도니스트들을 위해서는 한결 세속적인 쿠타와 카오산이 대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닿기 쉬운 케이(K)라면 시간과 비용 모두에서 역시 타이의 카오산로드가 되겠다. 알렉스 갈랜드의 엑스(X)세대 소설 <해변>(The Beach)이 영화화되면서 극중 배경의 하나인 이곳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은 방콕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푸껫이었지만.

카오산로드, 그러니까 방람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방콕(타이어로는 ‘끄룽텝 마하나컨 보원 랏따나꼬신 마힌따라 아유타야 마하딜록 뽑놉빠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우엣 마하싸탄 아몬삐만 아와딴싸티 싸카타띠띠야 위쓰누깜 쁘라씻’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도시 이름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이 생겨난 1782년부터 정확히 200년 동안, 왕궁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던 이곳은 별 특징 없는 조용하고 심심한 동네에 불과했다.

그러던 1982년, 방콕시 200주년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고 이에 몰려든 외국인들, 그 중에서도 비싼 호텔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저예산의 여행자들을 위해 이 지역 주민들이 하나둘씩 방을 빌려주게 된 것이 지금의 카오산로드의 시작이다.

그 후로 이 거리는 진화를 거듭했다. <론니플래닛>을 손에 든 국제적 중산층 여행자들이 주된 손님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을 위한 힙(hip)한 문화가 과거의 초저예산 히피 문화에 섞여들기 시작했다. 구멍가게 대신 여기저기 미니마트와 세븐일레븐이 들어서고 몇십 바트에 국수와 볶음밥을 팔던 싸구려 밥집들은 산뜻한 식당과 카페들로 변신했다. 유명한 ‘버디 바 앤 게스트하우스’가 얌전한 객실 76개와 함께 옥상 수영장-공동 화장실 쓰는 게스트하우스가 가득하던 이 거리에 무려 수영장 딸린 호텔이라니!-을 갖춘 호텔 <버디 롯지>로 변모한 것이 벌써 8년 전 일이다. 그 건물에는 맥도날드 햄버거도 들어와 있다.

오늘날 카오산로드는 하룻밤 저렴한 잠자리를 위한 숙박지역을 넘어서서 왕궁이나 새벽사원, 짜뚜짝 주말시장처럼 여행객을 위한 방콕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이태원이 그러하듯 이곳도 파랑(외국인) 못지않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 서양인과 동양인, 젊은이와 노인들, 힙한 자와 힙하고자 하는 자들이 적당히 뒤섞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코스모폴리탄한 방콕에서도 가장 코스모폴리탄한 지역이다.

나? 나는 이제 카오산로드에 가지 않는다. 모교를 안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쩐지 창피하고, 어색하고, 지난 시간이 아쉽고, 또 한 가지, 질겅거릴 추억이 너무 많아 그 거리를 걷다 보면 자칫 이가 부실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박정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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