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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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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재밌게 읽자
〈4월의 파리〉센 그림, 테이스트팩토리 펴냄 요즘 나오는 여행서들을 훑어보면 이제 확실히 여행은 취향이 돼 간다는 게 느껴진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기저기 요기조기를 가보자 식으로 방대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정리한 책은 전통적인 <론리 플래닛>류를 제외한다면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뒷골목’ ‘쇼핑’ ‘먹거리’ 등의 뚜렷한 테마를 가진 책들이 판매대를 가득 채운다. 실제 여행에서도 “나 여기도 가봤고, 저기도 가봤다”라는 자랑은 이제 먹혀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행서도 여행 짐싸기의 필수 준비물에서 그냥 즐기고 감상하는 책의 기능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런던의 카페를 테마로 한 책을 보며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맞아, 안개 같은 가을비가 내릴 때 대영박물관 앞 노천 카페에는 나 혼자만 앉아있었어라는 추억을 더듬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센이 그린 여행기 <4월의 파리>는 이처럼 주관적이고 사적인 여행기의 한 극단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여행서, 특히 요즘 여행서의 기둥이라고 할 만한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차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책의 한쪽 한쪽은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다. 그러니까 여행기이면서 일러스트북이다. 지도에서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스타벅스까지 모두 손으로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들이다. 물론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 등 ‘관광 코스’에 작가는 큰 관심이 없다. 추측건대 맛있는 음식을 아주 좋아하고 책과 특이한 소품에 관심이 많은 작가가 느긋하게 걸으며 찾아낸 귀여운 소품들, 낡은 책방,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이 지면을 채운다. 책을 보는 가장 큰 재미는 이것들을 찾아내거나 먹었거나 구경했을 때 작가의 기분이 부드럽고 따뜻한 크레파스의 질감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생제르맹 데 프레의 뒷골목 작은 비스트로에서 이 식당의 단골손님들과 오후의 한끼를 즐기는 풍경화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그냥 우두커니 그림을 보면서 느긋해지는 평온함을 불러일으킨다. 파리에 여행 갈 때 꼭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언제든 선물로 받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책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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