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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남자의 아이콘인 장근석. 명동 거리에서 아이라인 그린 남자를 찾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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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르네 휘테르를 써보세요.” ‘좋아하는 영화 장르와 하시는 일’을 얘기해야 하는 이 자리에서 어쩌다가 탈모 얘기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탈모에는 프랑스 브랜드 르네 휘테르의 샴푸가 최고라고 했다. 집에 와서 뒤적거려 보니 실제로 르네 휘테르인가 뭔가 하는 그 브랜드는 값이 비싼데도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제품이었다. 그럭저럭 말이 잘 통하는 남자를 만났는데도 난 좀 침울해졌다. 나도 몰랐던 그 이유는 선배의 소개팅 경험담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남자가 자기 여동생이 명품 브랜드 ○○○ 홍보라고 얘기한 이후부터 기분이 괜히 나빠지는 거야.” 바로 그거였다. ‘그 남자는 샴푸의 문외한이어야 했고 어느 샴푸가 좋다고 말해주는 건 내 역할이어야 했어.’ 10년 전의 남자들은 마스카라와 마데카솔을 구분하지도 못했는데, 지금의 남자들은 불투명 마스카라와 투명 마스카라를 구분할 줄 아는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올해 1월에 옥션에서 2344명의 남성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비비크림이나 파우더 등 메이크업 제품을 구입한 남자는 472명(20%), 남성용 마스카라를 구입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105명(4%)이었다. 인터넷에도 이런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빅뱅 탑처럼 눈 주변을 까맣게 하고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남자가 쓸 만한 투명 마스카라는 뭐가 있죠?” 요즘 명동에 나가면 장근석과 빅뱅의 탑 영향으로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다니는 남자도 드문드문 볼 수 있다. 아이라이너를 섹시하게 잘 그린 남자를 보고 부러웠던 나는 괜히 친구를 타박했다. “가서 어떻게 하는지 좀 물어보고 배워라.” 마치 보수적인 꼰대처럼 난 마스카라 하는 남자들이 조금은 무서워졌다. 눈이 검어서가 아니다.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이라는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게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자꾸 이런 장면이 상상돼서다. 카를로스 사우라의 1967년작 <얼음에 얼린 박하> 속 주인공 의사는 꾸미는 데는 영 젬병인 간호사를 앉혀 놓고 살 빼라고 힘든 운동을 시키질 않나, 화장 좀 고치라고 하질 않나 항상 잔소리다. 이때 그들의 대화가 압권이다. “화장 좀 고쳐.” “어차피 나가지도 않을 건데 왜요?” 이건 마치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그대로 뒤집어놓은 게 아닌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아빠에게 엄마가 세수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할 때마다 아빠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또 할 건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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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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