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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삵. 길 위에서 세상을 뜬 동물들은 죽은 뒤에도 안식을 찾지 못한다.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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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고경원의 애니멀 퍼스트
퇴근길 전철역에 내려 어슬렁어슬렁 굴다리를 지나 집 쪽으로 올라가는데, 너덜너덜한 신문지 뭉치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밟고 지나치려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발을 딱 멈췄다가, 발밑에 널린 잔해를 보고 ‘헉’ 하면서 물러섰다.회색 신문지처럼 보이던 덩어리는 죽은 비둘기였다. 원래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뭉개진 잿빛 털가죽 사이로 빛바랜 핏자국과 뽑힌 깃털이 나뒹굴었다. 아마 차에 치어 죽은 녀석을 오가는 차들이 계속 밟고 지나다닌 통에, 곤죽이 된 것 같았다. 처지야 딱했지만, 이미 피떡이 된 녀석을 내 손으로 묻어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죽은 비둘기의 흔적은 며칠 동안 희미하게 남아 있다가, 자동차 바퀴에 쓸려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 뒤로 그 근처를 지나칠 때면 얼른 시선을 외면하면서 괜히 둔한 비둘기만 탓했다. ‘에이, 미련퉁이 닭둘기 같으니 … 그렇게 엉덩이가 무거워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차가 달려들면 얼른 날아서 도망갔어야지.’
가끔 뉴스나 동물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로드킬 소식을 들으면 내내 궁금했다. 왜 새들은 날개가 있는데도 자동차에 치이는지, 제법 빨리 달린다는 고라니와 삵은 왜 차를 피하지 못하는지 ….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 이런 말도 해주고 싶었다. “혹시 병 주고 약 주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희들을 위한 ‘생태도로’란 게 있다는데 …”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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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애니멀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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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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