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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6 22:36 수정 : 2008.03.26 22:36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삵. 길 위에서 세상을 뜬 동물들은 죽은 뒤에도 안식을 찾지 못한다.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매거진 Esc] 고경원의 애니멀 퍼스트

퇴근길 전철역에 내려 어슬렁어슬렁 굴다리를 지나 집 쪽으로 올라가는데, 너덜너덜한 신문지 뭉치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밟고 지나치려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발을 딱 멈췄다가, 발밑에 널린 잔해를 보고 ‘헉’ 하면서 물러섰다.

회색 신문지처럼 보이던 덩어리는 죽은 비둘기였다. 원래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뭉개진 잿빛 털가죽 사이로 빛바랜 핏자국과 뽑힌 깃털이 나뒹굴었다. 아마 차에 치어 죽은 녀석을 오가는 차들이 계속 밟고 지나다닌 통에, 곤죽이 된 것 같았다. 처지야 딱했지만, 이미 피떡이 된 녀석을 내 손으로 묻어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죽은 비둘기의 흔적은 며칠 동안 희미하게 남아 있다가, 자동차 바퀴에 쓸려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 뒤로 그 근처를 지나칠 때면 얼른 시선을 외면하면서 괜히 둔한 비둘기만 탓했다. ‘에이, 미련퉁이 닭둘기 같으니 … 그렇게 엉덩이가 무거워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차가 달려들면 얼른 날아서 도망갔어야지.’

가끔 뉴스나 동물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로드킬 소식을 들으면 내내 궁금했다. 왜 새들은 날개가 있는데도 자동차에 치이는지, 제법 빨리 달린다는 고라니와 삵은 왜 차를 피하지 못하는지 ….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 이런 말도 해주고 싶었다. “혹시 병 주고 약 주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희들을 위한 ‘생태도로’란 게 있다는데 …” 하고 말이다.


고경원의 애니멀 퍼스트
한데 로드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서, 그런 궁금증이 얼마나 인간 위주로 생각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얼굴이 뜨거웠다. 차를 타고 편안하게 달릴 때는 누구나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차에서 내려봐야 느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30㎞로 달리는 차 옆에 서면, 몸을 훅 빨아들일 듯한 기류가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도 그 옆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육중한 트럭이 달릴 때 기분 나쁜 땅울림 소리가 귓속까지 따라붙으면, 달리기 선수 고라니도 두려움을 느끼고 몸이 얼어붙는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차바퀴에 몸을 찢기고,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인간을 위한 길이, 동물들에겐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되고만 것이다. 생태도로가 드문드문 있다지만, 야생동물의 행동 반경이 미치지 못해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만단다. 로드킬의 심각성을 몰랐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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