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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의 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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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기란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절망적인 상황, 치욕적인 상황 앞에 서게 되면 말문을 닫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입을 다문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하고 괴로운 생각들로 넘쳐나 고스란히 그 절망을 체감하며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 역사 속의 인물들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의 말씀을 토해냄으로써 상황의 반전을 도모하고 결국 말 그대로 역사의 영웅들이 되었다.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했다는 나폴레옹의 저 유명한 말씀은, 아마도 가장 절망적이며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왔을 터이고 ‘궁핍은 영혼과 정신을 낳고, 불행은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고 말했던 빅토르 위고는 아마도 그 시절 지지리 궁상맞은 나날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긍정의 힘이 발현되었던 말씀은 “신에겐 아직 열두 척이 남아 있습니다”라며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던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 싶다. 원균의 참패로 조선 수군 전체가 초토화되었고, 임금이 더는 싸움이 안 될 것 같으니 수군을 버리고 육전에 합류하라 명령했던 그 치욕의 순간 절망적 상황에서, 그러나 아직 배 열두 척 남아 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은 다만 듣기 좋은 말로 그친 것이 아니다. 노량해전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구체적인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경남 통영에 다녀왔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도시다. 이번으로 벌써 일곱 번째를 맞는 통영국제음악제를 비롯해 도시디자인과 문화행사에 역점을 기울여 온 덕분에 문화 도시로서 위업도 갖추게 되었다. 우연찮게 진의장 통영시장과 만나게 되었는데, 인구 13만 소도시에서 그 빠듯한 살림으로 어떻게 이런저런 일들을 추진할 수 있었느냐 물었더니 “난 배가 여덟 척이나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물론 그 배는 시소유의 행정선을 이르는 말이고 문화도시 만들기는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으리라.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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