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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6 22:55 수정 : 2008.03.26 22:55

우유는 커피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커피의 벗’이다. 사진 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2008년의 우리는 먹을 만한 한 끼 식사가 천 원씩 오르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이 카페의 메뉴판 역시 뒤지기 싫은가 보다. “다음주부터 음료 가격이 일괄 인상되오니 양해바랍니다.” 커피 원두 값이 10년 만의 폭등이라니 그 때문일까? 매니저의 말은 다르다. “우유 값이 너무 올라서요.” 그럴 법도 하구나. 한국의 카페에서 손님들이 가장 사랑하는 메뉴들은 컵의 3분의 2 이상을 우유로 채우고 있으니.

커피는 그 색채에서부터 쓰고 독하다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유와 한번 몸을 섞은 뒤에는 초콜릿에 뒤지지 않는 달콤한 유혹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나는 10년 전 유럽 여행에서 매일 아침 한 잔의 커피를 몸속에 누적시키며 중독자가 되었는데, 그 모든 순간에 우유가 함께 했던 것 같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우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질감이 식사 대용의 칼로리를 전해줄 거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을 거다.

나만 비겁했던 건 아니다. 투르크 병사들이 빈(Wien)에 남겨두고 간 커피 역시 곧바로 서구인의 탁자에 오르진 못했다. 텁텁한 커피 가루를 걸러내고, 우유로 악마의 빛깔을 중화시킨 뒤에야 유럽 정복에 성공했다.

우유는 커피의 맛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그 비율만으로도 놀랍도록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낸다. 프랑스의 카페오레, 스페인의 카페 콘 레체, 이탈리아의 카페라테는 표기법만이 아니라, 우유를 넣는 양과 방법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20여 가지의 서로 다른 농도로 커피와 우유를 어우러지게 하는 빈의 헤렌호프(Herrenhof) 카페에 이르면 거의 연금술의 경지에 이른다.

커피와 우유의 가장 환상적인 데이트는 역시 카푸치노라고 생각한다. 절반의 유유는 따뜻하게 커피와 몸을 섞고, 절반의 우유는 포근한 거품으로 그 현장을 숨긴다. 작은 컵 위로 넘칠 듯 거품이 솟아난 드라이 카푸치노는 그 아슬아슬함이 더욱 좋다. 설탕과 몸을 심하게 섞은 생크림 메뉴는 너무 노골적이라 꺼려진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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