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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6 22:49 수정 : 2008.03.28 15:06

고아 칼랑굿 해변에는 인도인과 유럽인들이 가리지 않고 몰려든다. 인도 여인들은 대부분 바다에서도 몸을 노출시키는 수영복을 입지 않는다.

[매거진 Esc] 철학·종교·명상보다 욕망과 첨단기술의 나라로 다가온 인도 남부 실감 체험기

“기자는 첫 인도여행에 설렜다”고 쓰려다, 주어를 ‘나’라고 고친다. 기자란 제3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발굴해 진실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취재의 정의에 가깝다. 그러나 ‘취재’라는 그릇에 담기에 인도는 너무 넓고 다양했다. 기자로서 무능을 드러낼지라도 차라리 솔직함을 택하기로 했다.

뭄바이와 엘로라·아잔타의 석굴사원, 고아를 종횡한 9박10일 동안 온갖 정보로 뒤덮인 머릿속을 관통하는 느낌이 있었다. 인도는 철학·종교·명상의 나라만은 아니고 역동적인 생활인의 땅이라는 생각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종합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The Times of India)의 광고란(classified ads)을 보면서 굳어진 생각이다.

인도인들도 똑같은 생활인이었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의 ‘난자 기증 구함’ 광고.
난자를 주고받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13일 뭄바이 국제공항에 내린 뒤부터 매일 읽었던 이 신문에는 친근한(?) 광고들이 눈에 띈다. 먼저 ‘디텍티브 서비스’. 한국으로 치면 ‘흥신소’ 업무에 해당한다. “비밀 조사, 이혼, 불륜, 가족문제, 노사문제, 사진 증거물 촬영 등”을 해준다고 돼 있다. ‘점성술’ 광고도 있다. 18권의 저서를 낸 쿠라나(P. Khurrana)로부터 운명을 미리 알 수 있다고 광고한다. 성형수술 광고도 많다.

내 눈은 ‘난자 기증’(Egg donor) 광고에서 휘둥그레 졌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고다. 내용인즉슨 “‘파르시’(Parsee) 커플이 젊은 ‘파르시’ 난자 기증자를 찾는다”고 적혀 있다. “20∼33살 사이의 유부녀이고 애가 있는 여성이면 좋겠다”는 조건도 따른다. 기증자는 ‘적절하게’(adequately) 보상받을 것이라는 다짐도. 대체 이 희한한 광고는 뭘까?

‘파르시’란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인데, 조로아스터교 신자를 일컫는다. 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종교로, 불을 숭상하는데 이 고대의 종교 신자들이 뭄바이에도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타 종교인과 결혼할 땐 제명당하는 교리 때문에 집단의 규모가 점점 감소할 위험에 처했다. 다시 말해 이 광고는 감소 위기에 빠진 ‘파르시’ 그룹 안에서 서로 난자를 주고받으려는 눈물겨운 생존의 노력인 셈이다. 종교·명상의 나라로 비친 인도는 내 눈에 생활인의 욕망과 첨단기술이 뒤섞인 땅이었다. 차 뒤 범퍼마다 볼 수 있는 “경적을 울려 주세요”(Horn please)라는 문구도 마찬가지. 추월하기 전에 반드시 경적을 울려서 자신에게 알려 달라는 뜻이다. 도로 사정이 썩 좋지 않아 나온 문화인 듯하다.


엘로라 석굴군 가운데 32번째 자인교 석굴 사원의 마하비르(자인교 창시자) 부조상.
아잔타 석굴 사원군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동굴 벽화뿐 아니라, 인도 청년들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유쾌한 젊은이들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의 언어감각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아잔타 석굴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자 기념품을 파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몰려와 “재팬? 차이나?”라고 묻는다. “코리아”라고 답하자 대뜸 “아줌마∼사요, 아줌마∼사요”라고 어깨너머로 배운 한국말을 구사한다. 순식간에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다. 심지어 “아줌마란 단어가 기분 나빠 안 사겠다”고 일행 중 한 명이 받아치자 “할머니∼사요, 할머니∼사요”라고 되받아치는 언어감각을 자랑한다.

남인도를 종횡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다른 열쇳말은 ‘다양성’이었다. 나는 내심 인도에 오기 전 인도인민당(바라티야자나타당·BJP) 때문에 인도가 극심한 종교 갈등에 시달리리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2004년까지 집권했던 이 정당은 힌두민족주의에 호소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해묵은 분쟁도 인도가 종교적 똘레랑스가 없는 사회라는 색안경을 끼게 만들었다.

뭄바이 등 인도 대도시에서는 경적이 생활화돼 있다. 한국과 다른 교통 문화다.
뭄바이에서 비행기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지역에서 이런 선입견을 깨야 했다. 엘로라 석굴 사원군에는 불교·힌두교·자인교 사원이 사이좋게 공존했다. 기원전 6세기께 불교가 생긴 뒤 같은 장소에 차례로 힌두교와 자인교 신자들이 자신들의 석굴 사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다른 종교 사원을 파괴하지 않았다.

기독교 문화가 남은 고아에서는 시바신의 팔 개수만큼이나 다양한 인도의 여러 면모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고아는 16세기 이래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기독교인 문화가 많이 남았다. 봄 지저스 성당에서 원색의 사리를 입은 인도 여인이 조용히 미사를 드리는 모습은 초현실주의적이기까지 하다. 인도 관광청 고아사무소의 가이드 레이스 멘도사는 “고아 인구의 20여%가 천주교 신자이고 무슬림도 많지만 서로 존중하면서 공존한다”고 자랑스레 설명한다. 멘도사라는 성씨 역시 포르투갈식이다.


고아에서 실컷 밤문화를 체험하더라도…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마주친 액세서리 상인.
안주나 해변 등 고아 북부 해변의 떠들썩한 클럽 문화도 고아가 자랑하는 다양성의 하나다. 고아 특유의 음식 문화도 마찬가지다. 인도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소·돼지고기·베이컨 등을 자유롭게 먹는 게 가능하다. 곳곳에서 웃통을 벗은 백인들이 오토바이를 빌려 자유롭게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여행이 한창이던 이달 중순 고아에서 15살 영국인 소녀 스칼릿 킬링이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일어났다. 고아의 밤문화를 체험하는 건 좋은 경험이지만, 혼자서 밤늦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극심한 빈곤층의 모습도 여행자를 짓누르는 인도의 어두운 면모다.

여행을 이틀 남긴 18일 늦은 오후 고아의 미라마르 해변에서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며 캐논 350디를 들고 모래에 주저앉았다. 수평선에 걸린 해를 보고 앵글을 잡다 문득 내 ‘인생의 다양성’에 대해서 떠올렸다. 앞으로 내 인생의 경로에 얼마나 다양한 경우의 수가 생길까? 혹시 나는 정해진 길만 보고 있는 걸까?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봐 줄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까? ‘다양함’이란 열쇳말은 그렇게 내게 되돌아왔다. “(여행을 통해)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자기에게로 가까이 간다”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전언에 조금이라도 동의하는 젊은이라면 남인도는 훌륭한 선택이다.

뭄바이·엘로라·아잔타·고아= 글·사진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마살라 짜이로 목을 짜∼하게

탈리·탄두리 치킨 등 현지 음식 맛보고 요가도 배워볼까

짜이(왼쪽)와 라시(오른쪽).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은 최고의 여행 경험이다. 그러므로 튜브형 고추장을 꺼내는 일은 자제하자.

인도 남부도 일종의 가정식 백반인 탈리가 주식이다. 남부 음식은 북부 음식보다 덜 느끼하다. 북부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는 평이다.

9박10일 동안의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뭄바이 ‘티 센터’(Tea Center)(022-2281-9142)에서 마셨던 마살라 짜이의 맛이다. 짜이는 우유와 설탕을 넣고 찻잎을 끓여 만든 인도의 전통 차다. 인도인들은 짜이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 복합 향신료인 마살라를 넣기도 한다. 티 센터의 마살라 짜이를 한 모금 넘기자 목이 시원해졌다. 향신료가 목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전통 도기로 만든 잔에 내오는 감각도 돋보였다. 대신 보통 인도 서민들이 마시는 짜이는 6루피 정도인 데 반해 이곳은 40루피나 했다.

한국에서 인도음식점을 자주 다녔던 여행자는 뭄바이 콜라바 거리의 레오폴드에서 반드시 탄두리 치킨을 맛보자. 한 마리에 150루피를 넘으니 값은 비싼 편이지만 맛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

고아는 인도 최고의 휴양지이다. 고아에서 요가를 배워 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다. 인도관광청은 ‘시릴 요가 아유르베딕 클리닉’(2277300)과 ‘인터액션 온 리드믹 브리딩’(9422443421)을 추천했다.

고아 안주나 비치의 벼룩시장(플리 마켓)에 가면 쇼핑에 중독된다. 옷·기념품·액세서리 등 없는 게 없다. 매주 수요일 아침 9시부터 열린다. 단, 부르는 대로 내지 말고 반드시 흥정할 것. 도시마다 있는 영화관에서 ‘볼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도 즐거운 체험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인도 남부 여행쪽지

뭄바이, 경유노선 북적북적

⊙뭄바이는 인도 남부를 여행하기 위한 관문이다. 한국과의 직항 노선도 있지만 경유 노선이 더 많다. 에바항공이 수·금· 일요일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저녁 7시15분 출발해 타이베이를 경유해 뭄바이에 도착하면 새벽 4시10분이다. 뭄바이 왕복 항공운임(세금제외)이 52만원이다. 타이베이에서 하루 정도 쉬면서 인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저렴한 가격에 갖가지 먹거리를 맛본다. 이 밖에 캐세이패시픽 항공, 타이항공 등에서 경유편을 운항한다. 뭄바이는 한국 시간보다 3시간30분이 느리다.

⊙인도관광청은 인도 여행자들을 위해 한국사무소(02-2265-2235,incredibleindia.org)를 운영한다. 고아·아우랑가바드·뭄바이 등 인도 현지 주요지역에도 모두 인도관광청 사무소가 있다.

⊙인도 여행을 제대로 준비하고 싶다면 인터넷의 힘을 빌려도 좋다. 여행작가 조현숙씨로부터 사이트를 추천받았다. 다음카페 인도방랑기(cafe.daum.net/gabee)는 많은 회원수와 정보를 자랑한다. 배낭여행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참조한다. 인도 관련 가이드북 저자 전명윤씨 홈페이지(indofantazy.com)에는 수시로 정보가 업데이트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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