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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의 석양. 예나 지금이나 가장 사랑하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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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정석의 오리엔탈 스타일 3
감탄사가 휘날리던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 별바다 오두막
그 애를 처음 만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시카고의 어느 대학원에서였다. 한눈에도 증세가 심각한 범생이었다. 강의시간이면 교수의 침이 정통으로 튀는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아 5초에 한 번씩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댔다. 저러다 자칫 목이라도 삐면 어쩌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대 쟁쟁했던 엄마 친구 딸들 중에서도 저런 애는 없었다.
“부모님이 너무 엄해서, 서울에서는 공부 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시간만큼 위대한 것은 세상에 없다. 어차피 우리는 학과에서 단 둘뿐인 한국 여학생. 탐색과 증오, 체념의 시기를 거치며 점차 적응, 결국 꽤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우린 정말 공통점이 많아, 안 그래? 친구는 가끔 이렇게 물으며 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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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바닷가 파당바이. 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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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어떤 남자가 끌어안는 거야”
“나도 좀 데려가 줘. 짐이 되진 않도록 노력할 테니!”
어느해 여름, 마침내 나는 그 애에게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세상을 보여 주기로 했다. 함께 발리로 날아갔다.
“여태 네가 묵었던 미국이나 유럽의 호텔 같지는 않을 거야. 대신 방값이 싸지.”
우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쿠타해변 뒷골목, 어느 싸구려 로스멘(여인숙)에 투숙했다. 그늘진 방에 매트리스가 엉망인 침대 둘, 천장에서 낡아빠진 선풍기가 삐걱대며 돌아가고 대낮부터 옆방 남녀의 교성이 울리는 그런 곳이다.
“물도 콸콸 나오고 화장실에 변기도 있고 훌륭하네 뭐. 이 값에 아침까지 준다니 …”
친구는 신기한 표정으로 방을 돌아보았다. 좀 흥분한 것 같았다. 생전 피우지 않던 담배를 어디선가 사오더니 한 대 피워 물었다. 숙소에 어슬렁거리는 쭉쭉 뻗은 반알몸의 유럽인들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진을 찍어줘. 나 지금 너무 행복한데, 사진을 찍으면 그게 잡힐 것 같아!”
낙원을 찾아 몰려든 각국의 청춘들과 전설적인 석양풍경. 예나 지금이나 쿠타비치에는 얌전한 사람의 마음도 얼마든지 들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는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식당에서 아락(쌀로 빚은 술) 칵테일을 몇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 좀 이상한 꿈을 꿨어!”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제공한 토스트와 커피, 바나나를 먹으며 그 애는 수줍게 털어놓았다.
“자다가 새벽녘에 잠이 깼는데 묘한 기분이 드는 거야. 어떤 남자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그럼 빽 소리라도 지르지 왜 가만히 있었니?”
“비명을 질러서 너를 깨우려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어쩌면 여기는 원래 그런 숙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렇게 숙박비가 저렴한 거라고. 바보처럼, 여태 그것도 몰랐냐고 나를 나무랄까봐, 그래서 너를 깨우지 않고 다시 잠을 청한 거야. 세상의 조금 험한 곳에는 이렇게 냉혹한 기브앤 테이크 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숙소도 있는 거야, 또 하나 배웠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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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관광지인지라 기념품 가게도 성시를 이룬다. 전통 배인 주쿵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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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길리 메노에서 새처럼 자유롭게
알이 두꺼운 안경과 단정한 단발머리 너머로 아름다운 유머감각을 가진 소녀가 한 명 살고 있었다. 나는 이 진귀한 영혼에게 발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는 이 섬을 대표하는 인기 관광지로 전락해 버린 중부의 우붓(Ubud)을 거쳐 조형미 넘치는 계단식 논 풍경으로 가득 찬 티르타강가(Tirtagangga), 동부의 흑사 해변 아멧(Amed), 그리고 항상 파랗게 빛나는 나의 비밀의 바닷가 파당바이(Padangbai)까지.
발리는 내가 사랑하는 섬이다. 어딜 가나 풍요로운 빛과 색채, 향기로 가득 찬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흰 깃발이 펄럭이는 푸른 논, 머리와 두 팔에 묵직한 제례음식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전통의상 차림의 여인네들, 오토바이를 수선하는 남자들, 나무그늘 아래 앉아 기타 줄을 퉁겨대는 청년들, 그 틈을 뛰노는 갈색 아이들. 이처럼 아름다운 섬은 어딘가에 또 있을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섬은 어디에도 없다.
좀더 순결한 자연을 찾아 우리는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발리 옆 롬복(Lombok)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한 외딴섬 길리 메노(Gili Meno). 나무로 대충 지은 오두막을 한 채 빌렸다. 일박 3달러.
“이 섬엔 민물이 없어. 수도꼭지를 틀어봤자 바닷물뿐이야.”
나는 샤워실-오두막 옆 노천공간-을 둘러보는 친구에게 말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모처럼 집으로 보내는 엽서에 자랑할 만한 잠자리는 못된다.
“… 정말 근사해!” 친구는 꿈이 깰까 무서운 사람처럼 아주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렇게 멋있는 곳을 상상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자게 될 줄은 몰랐어. 완벽한 곳이야.
오두막은 바닷가에서 2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얼기설기 엮은 벽 틈으로 낮에는 바람이, 밤에는 파도소리를 타고 먼 하늘의 하얀 별빛이 넘나들었다.
“꼭 배를 탄 듯한 기분이야. 내일 아침 일어나면 세상 반대편에 닿아 있을 것 같은데.”
그 애가 말하자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누추한 잠자리가 별바다를 건너는 로맨틱한 선실로, 초라한 와룽(warung·간이식당)에서의 한 끼 식사가 천상의 만찬처럼 느껴졌다. 숙소 근처 가게에서 아락을 한 병 사가지고 오다 놓쳐 깨뜨렸을 때도 마법의 주문은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깨어진 술병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앉아 폐부 깊숙이 알코올의 황홀한 향기를 들이마셨다.
낮에는 섬 탐험을 했다. 덤불이 우거진 길리메노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섬 반대편까지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바다가 나왔다. 천국 같았다.
우리는 새처럼 자유롭도다!
그 애와 나는 연푸른 바닷가에 뛰어들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향해 헤엄쳤다.
오라는 곳은 없지만 부름 따윈 필요도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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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섬 발리에서는 날마다 어딘가에서 축제와 의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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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시는 아락이 쓸쓸해지고…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우리는 서로 조율했다. 나는 전보다 눈에 띄게 얌전해지고 친구는 좀 사나워졌다.
“안 돼! 절대 돈 주지 마! 이 사기꾼아! 돈은 너에게 줄 게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겠다!”
섬에서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만난 악덕 뱃사공에게 친구는 나보다 더 큰 목청으로 이렇게 으르릉댔다. 이 추세로 가다간 손으로 코를 풀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았다. 가장 큰 취미가 독서이며 두 번째가 요리, 세 번째가 재봉질인 그 여자다운 애가 말이다.
그것이 내 친구의 첫 번째 아시아 여행이었다. 미국 동부에서 어느 대학 교수로 일하는 그 애는 나보다 며칠 앞서 발리를 떠나야 했다.
“너는 내심 이 순간만을 내내 기다렸겠지? 홀가분하게 혼자 여행할 수 있을 테니까.”
예나 지금이나 발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섬이다. 무슨 핑계를 대든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갔다. 중요한 것 두고 온 사람처럼 떠나면 반드시 돌아갔다. 그러나 그해 여름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혼자 마시는 아락은 전에 없이 씁쓸했고 쿠타를 누비는 근육질의 예쁜이들은 어느새 내겐 너무 어렸다. 뒷골목 싸구려 로스멘에도 발길을 끊었다. 누추함을 단숨에 감춰 버리는 마술의 지팡이, 그 놀랍고 신비한 재능이 나에겐 도저히 없기 때문에.
지금, 발리가, 그보다 그 애가 너무 그립다.
글·사진 박정석 소설가·<내 지도의 열두 방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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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전통의식. 대형 리조트와 함께 주민들의 일상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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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지선다형에서 찍어라?
발리에선 남녀불문 와얀·마데·뇨만·크툿 네 사람 뿐
이름이 곧 존재 그 이상임을 설파한 어슐러 케이(K). 르귄의 단편소설 <이름의 법칙>은 발리섬에서는 통용되기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
세계 최대 회교국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유일하게 힌두교를 믿는 섬이다. 미지의 이땅에 처음에는 용감한 탐험가들, 이어서 식민지 확장을 꿈꾸는 서방의 군대, 독립한 이후로는 히피와 예술가들, 인류학자들이 차례로 상륙하더니 마침내 각국에서 날아온 관광객들한테 점령당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 최대의 휴양지인 발리, 국제적인 특급호텔과 팬시레스토랑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어 버린 이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생활은 수십 년 전과 크게 변한 게 없다. 예나 지금이나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간다. 심지어 이름도 네 가지뿐이다.
뭐라고? 정말 그렇다. 발리인들의 이름(정식 이름은 카스트제도의 흔적이 뒤섞여 좀더 길고 복잡하지만)은 오직 네 가지뿐이다. 서아프리카 가나처럼 태어난 요일별로 이름을 붙이는 나라도 있지만, 작명법의 간결함에서 발리를 따라갈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을 붙이되 귀엽게도 넷뿐이다. 첫째는 와얀(Wayan), 둘째는 마데(Made), 셋째는 뇨만(Nyoman), 넷째는 크툿(Ketut). 그러면 다섯째로 태어난 사람은? 고민하지 마시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와얀이다!
남녀 구별이 없는, 쉽고 간단하며 매우 민주적인 동시에 일견 동화적으로 보이는 이 이름의 법칙은 실제 생활에 적용되었을 때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뇨만이 그 뇨만인지, 아침에 만난 마데와 오후에 만난 마데가 누가 누구인지, 그들의 자식인 와얀과 마데는 다시 어떤 누구의 아들딸인지 헛갈리기 일쑤다.
장점을 찾자면 지금 내 눈앞에 친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저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 낼 확률이 최소한 25퍼센트는 된다는 것. 돌아서면 곧장 잊혀지는 분주하고 형식적인 현대사회,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 명함·전자우편·문자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날 저것은 그야말로 다정스럽고 지극히 인간적인 확률 아닌가. 당신 이름이 뭐였더라? 와얀, 아니면 마데? 아니, 뇨만이었던가? 설마 …크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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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근처의 논 풍경. 지금은 인기 관광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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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정석 소설가·<내 지도의 열두 방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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