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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2 19:42 수정 : 2008.04.02 20:02

테니스의 핵심. AP연합.

[매거진 Esc] 김중혁의 액션시대

얼마 전부터 테니스를 하고 있다. 나와 비슷하게 할일 없는 친구와 함께 일주일에 한번 경기도의 한 테니스장으로 향하는데, 그곳의 풍경이 참 좋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였고, 당연히 공기는 좋고, 다행히 사람은 거의 없다. 꽤 큰 테니스장이어서 코트가 수십 면이나 되지만 테니스를 치는 사람은 고작 열 명 안팎이다. 사람보다 코트가 더 많은 셈이다. 하긴 평일 오후에 시외에서 테니스를 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인적이 드문 커다란 테니스장으로 들어설 때면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 공을 치는 소리가 텅빈 공간 속에서 고즈넉하게 메아리치고, 공을 놓친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바람과 함께 허공에 어수선하다. 공 치는 소리는 언뜻 들으면 산사의 종소리 같기도 하다. 고요하고 고요하다. 탱, 탱, 탱, 탱 ….

우리 역시 타종식을 거행하는 경건한 심정으로 초록색의 둥근 테니스공을 힘껏 쳐 보았지만 소리가 영 경쾌하지 않다. 탱~, 깊고 그윽한 소리는 나지 않고 ‘틱, 픽, 끽’하는 둔탁한 소리뿐이다. 테니스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 그러니까 20년 전이다 - 몇 달 쳐 본 것이 전부고 친구는 미국에 있을 때 몇 달 쳐본 것이 전부다. 몇 달의 테니스 경험으로는 깊고 그윽한, 탱, 탱, 한 공소리를 낼 수 없는 법이다. 그래도 우리는 즐겁게 공을 쫓아다녔다. 공을 치는 시간보다 공을 줍기 위해 걸어다니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즐거웠다. 공놀이의 핵심은 공을 치거나 차거나 잡거나 던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니까. 허공 속에서 흔들리며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공놀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


김중혁의 액션시대
테니스장 진풍경의 하나는 주차장에 빼곡하게 서 있는 택시들이었다. 택시들이 몰려 있을 이유가 없었다. 기사 분들이 이곳에서 낮잠을 자는 걸까? 아니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일까? 손님?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라곤 고작 열 명뿐인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테니스를 사랑하는 택시 기사들의 모임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늘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택시 기사 분들에게 공놀이만큼 좋은 스포츠가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일본의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중견수’라는 작품이다. 전문을 소개한다.

“나는 39년이나 센터를 지키고/ 대략 1만3천 개의 센터플라이를 잡아왔어/ 생각해 보니/ 플라이를 잡을 때 이외엔 하늘을 본 적이 없구나.”

나 역시 요즘 들어 하늘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테니스 실력이 뛰어나다면 하늘 볼 일이 적겠지만, 내가 치는 공들은 뻥뻥, 하늘을 향해서 잘도 날아간다. 친구의 실력도 마찬가지니까 하늘 볼 일이 더욱 많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색의 테니스공이 날아다닌다. 아, 아름답고 민망하다.

김중혁 객원기자 vonnegu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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