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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철사줄 파스타 다이어트엔 딱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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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이탈리아 국도변의 허름한 기사식당에서 스파게티의 원형을 발견하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기사식당은 ‘맛있고 싼 식당’을 의미한다. 물론 여전히 택시나 화물차 같은 기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탈리아에도 기사식당이 있다. 시칠리아의 괴짜 주방장 주세페와 함께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종종 들르던 곳이다. 버섯을 사러 활화산 에트나에 오르거나,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사러 대형 재래시장에 갈 때도 이집에서 꼭 밥을 먹었다. 별다른 메뉴도 없었다. 장작에 구운 닭, 몇 가지 파스타와 전채 요리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주세페가 이 집을 단골 삼아 들르는 이유는 그저 국도 변에 있어 요기하기가 만만해서인 줄 알았다. 40년 단골 웨이터와의 길고 긴 포옹 그런데 알고 보니 자그마치 40년 단골이다. 주세페의 선친 대부터 계산하면 그 세월을 훌쩍 넘어선다. 주세페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고, 지금 주세페가 사는 시칠리아의 시골 당 책임자였다고 한다. 당연히 각종 회합 때문에 다른 도시를 들를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이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단다. 은퇴하고도 한참은 지났을 만한 늙은 웨이터가 주세페를 보고 반가워했다. 아버지의 친구란다. 그 웨이터는 50년을 한결같이 일하고 있었다.그가 주세페를 발견할 때 마침 다른 테이블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스파게티를 가득 담은 큰 쟁반을 대충 손님상에 내려놓고는 주세페에게 달려왔다. ‘달려’왔다는 것은, 그의 태도였지 실체적 속도는 아니었다. 그가 주세페와 포옹을 하는 데는 수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반가워서 상체는 이미 문 쪽에 있는 주세페에게 기울어져 있었지만, 다리가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주세페는 참을성 있게 문 앞에서 기다렸다. 아버지 친구에 대한 예의 같았다. 그러고는 긴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각자의 아내, 아들과 딸, 숙부와 숙모, 당숙의 안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찌는 듯한 날씨 얘기에 엿을 각자 먹이고서야 안부인사가 끝났다. 하릴없이 그 안부 세리머니를 지켜보며 물만 홀짝이던 내가 물었다. “오랜만에 만났나 봐요?” “으응 … 지난주에 양고기 사러 왔을 때 봤지.” 역시 참을성 있는 기사식당의 손님은 그제야 스파게티 시중을 받을 수 있었지만, 별 불평은 하지 않았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시칠리아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다. 50년 일한 웨이터에게 해고 통지를 날리지 않는 주인도 노인 공경 사상이 투철한 건 아니었다. 이 노인네가 없으면 식당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무시로 드나드는 수많은 트럭 운전사들의 식성까지도 줄줄이 꿰는 진짜배기 웨이터였기 때문이다. 팔뚝에 촌스럽게 오렌지와 일장기 문신을 그려 넣은 무시무시한 인상의 트럭기사도 그에게는 고분고분하게 눈웃음을 쳤다. 웨이터는 닭다리를 맛있게 뜯는 그 기사에게 한참이나 잔소리를 했다. “술 좀 그만 마셔.” “아이고, 무슨 말씀. 와인 없이 어떻게 밥을 먹느냐 말이오?” “그게 아니고, 자네는 와인을 마시려고 닭을 먹고 있잖아.” 종종 시칠리아 국도 변의 트럭들이 여덟 팔자 운행을 하는 건 이처럼 와인과 음식이 맛있는 기사식당이 곳곳에 깔렸기 때문일 게다. 나는 이 식당에서 스파게티의 원형을 보았다. 말하자면 ‘알 덴테’(면을 꼬들꼬들하게 삶는 것)의 참맛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 돈으로 치면 고작 3천원을 받는 스파게티에 들어간 것이라곤 올리브기름과 마늘이 전부였다. 얼마나 오래 썼는지 이빨이 빠지고 누렇게 변색된 접시에 흥건할 정도로 담긴 뜨거운 올리브기름이 인상적이다. 국수를 먹는 건지, 올리브기름을 먹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 기름에 손으로 눌러 으깬 서너 쪽의 마늘이 까맣게 구워진 채 그대로 서비스된다. 웬만한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이 마늘을 접시에 담지 않는다. 향만 우리고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식당은 그것마저도 번거로운 일이라는 듯, 그대로 접시에 담겨 있었다. 식당 안은 닭 굽는 냄새와 타는 마늘 향으로 코가 매캐할 지경이다. 반죽해 뽑은 생면을 햇볕에 말리던 시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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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덴테’로 익혀야 파스타의 참 맛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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