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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로는 마을과 사람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강축 해안도로에서 돌미역을 손질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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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동해안 강축 해안도로로 하루에 돌아보는 영덕 강구항과 구룡포·호미곶
사차로 넓은 길은 쭉쭉 뻗은 모습이 자연과 마을의 침략자 같다. 뚱뚱한 직선이다. 이와 달리 이차선 도로는 늘씬한 곡선이다. 산과 강, 해안을 살리며 마을을 타고 구불구불 이어진다.
한반도 등허리를 달리는 동해안 7번 국도는 사차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일부 구간은 이미 고속화도로로 개통됐다. 사차로 위세의 곁길에 20번 지방도로가 있다. 특히 영덕 강구에서 축산까지 잇는 2차선 강축 해안도로(20번 지방도)는 동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최근 각광받기 시작했다.
강축 해안도로와 그 아래 호미곶, 구룡포를 묶어 하루에 돌았다. 첫날 영덕 강구에 도착해 대게를 먹고, 이튿날 대게 경매장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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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의 영덕대게 경매장. 한 척 당 보통 1만 마리를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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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스파이더맨이었다
⊙08:30 영덕대게의 고향 강구항
이 즈음이면 강구항은 사나흘 밤을 새고 돌아온 대게 발이(배)들로 붐빈다. 적을 때는 한 척, 많을 때는 예닐곱 척이 입항해 한 척 당 1만마리씩 풀어 놓으면 경매가 시작된다. 아침 8시30분에 시작한 경매는 댓바람으로 끝나지만, 하루 거래액은 1억2천만~2억원에 이른다.
“올해는 작년보다 덜 하네요. 지금은 윤달이 끼어 못하지만 다음달 초쯤엔 양도 많고 토실해질 거예요.”
강태선(43) 지정 경매인이 선착장에 깔린 대게를 살펴봤다. 대게들은 배를 까고 20열종대로 누웠다. 1열은 토실한 에이급 박달대게, 20열은 속이 빈 ‘물빵’들이다.
동해안 봄길은 ‘대게 길’이다.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강원 삼척에서부터 포항 구룡포까지 대게발이와 미식가들로 붐빈다. 일반적으로 대게는 ‘영덕 대게’로 알려졌지만, 영덕에서만 잡히는 게 아니다. 울진 후포 앞바다인 왕돌초에서도 잡히고, 독도 근해에서도 잡히고, 일본 연해에서도 잡힌다.
대게를 두고 영덕과 울진은 원조 경쟁을 벌여 왔다. 최근엔 포항까지 가세했다. 울진은 대게 맛이 가장 좋은 왕돌초가 울진에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포항은 구룡포의 대게 위판량이 전체 생산량의 53%를 차지한다는 통계를 내세운다. 그리고 영덕군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어디서 잡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대게를 고급 먹을거리로 브랜드화한 건 영덕 덕택이에요. 대게가 유명해지니까 울진과 포항이 달려든 거예요.”
여하튼 울진 죽변, 영덕 강구, 포항 구룡포의 ‘삼대 대게 성지’ 가운데 스파이더맨처럼 횟집을 기어오르는 대게들은 강구에 가장 많다.(가끔 대게인지 거미인지 헛갈린다. 킹크랩맨인가?)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값비싼 박달대게가 가장 맛있다는 점이다. 박달대게는 이날 8만~9만원에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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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공원에 핀 수선화. 강축 해안도로에서 가장 전망이 나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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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최대의 항구 뒤로 숨은 ‘일본’
⊙10:00 수선화 핀 해맞이 공원
20번 지방도는 구불구불 이어진다. 마을이 있으면 둘러가고 풍광이 있으면 쉬었다 간다. 미역을 말리는 할머니를 만났고 바다를 가르는 통통배를 봤다. 그러다 창포 해맞이 공원을 만났다. 해안 절벽 아래로 노란 수선화가 피었다. 노란 튜브 물감이 파란 바다에 터진 것 같다. 5월까지는 만발할 것이라 한다. 오른편에는 창포등대가 서 있다. 역시 대게가 등대를 감싸안고 있다.
해맞이 공원 내륙으론 거대한 풍차가 돈다. 60미터 고도에서 길이 40미터짜리 날개 세 개가 휘청휘청 도는데, 돈키호테도 맞서 싸우지 못할 듯 위압적이다. 거대한 바람개비 24개는 영덕 풍력발전 단지다. 거대한 풍차들 사이로 민둥산 능선을 타고 넘는 비포장길이 났다. 30여 분의 약식 오프로드 코스로 맞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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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일본 골목을 굽어보는 구룡포 공원. 옛 신사터로 이어지는 계단에 공덕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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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구룡포 일본 골목
축산항까지 올라갔다가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으로 한달음에 내려왔다. 다시 포항에서 구룡포까지 사차선 도로(31번 국도)를 탔다.
구룡포는 대게와 청어가 잡히는 포항 지역 최대 항구다. 항구 뒤로 ‘일본 골목’이 숨었다. 포항시 문화관광과의 김필호씨는 “1920년대 구룡포가 어업 전진기지가 되면서 일본인들이 집단 이주해 형성된 곳”이라며 “이렇게 일본 가옥이 집단적으로 남은 곳은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삼각 지붕을 얹은 반듯한 목조 건물들은, 지금은 살림집으로 이발소로 복덕방으로 쓰인다. 이국적인 왜식 건축과 한국의 근대적 풍경이 기묘하게 결합돼 독특한 골목길을 만들어냈다.
골목을 헤매다 가파른 계단 길을 마주했다. 일제 때 신사 터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계단 양쪽으론 공덕비 수십여 기가 일렬로 섰다. 원래 공덕비 앞면에는 신사 건립 기부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구룡포 사람들은 아마도 일본인이나 ‘친일파’였을 이름을 시멘트칠로 덮은 뒤, 공덕비의 앞뒤를 바꿔 다시 세웠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앞면에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 한국인들의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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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공원의 창포등대. 대게의 집게발을 형상화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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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차로에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
⊙15:30 대보리 청보리밭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사차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이 도로가 완공되면, 구룡포는 지금처럼 이차로가 속살을 헤집고 당도하는 곳이 아니라 사차로 나들목에서 ‘드나드는’ 곳이 될 테다. 김필호씨는 “구룡포 상권이 죽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길에 대한 꿈을 품는다. 길이 넓어질수록 생활이 편리해지고 땅값이 오르고 돈이 몰린다는 걸 사람들은 알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최근 영일만 대교 건설을 추진 중이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뚫는 사차로를 아예 영일만 바다 한가운데까지 밀어붙여, 호미곶에서 흥해(혹은 신항만)까지 11㎞의 다리를 놓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포항시와 박태준 당시 포스코 회장이 검토했다가 유야무야 됐는데, 다시 최고의 기회를 맞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형님(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국회부의장. 포항이 지역구다.)만 믿어요!”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호랑이 꼬리를 닮아서 호미곶이다. 이 다리가 실현되면 호랑이 꼬리가 접히는 꼴이 될 것이다.
호미곶 직전 대보리를 지날 즈음 창밖에 푸른 청보리밭이 나타났다. 차를 세우고 소나무와 어우러진 청보리밭을 한참 바라봤다. 만약 사차로에 있었다면 청보리밭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덕·포항=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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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리 저수지 아래로 내려다본 풍경. 부드러운 소로를 따라 산수유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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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3만그루의 장관
아직 사람 발 길 덜 탄 의성 화전리, 12일에는 축제도
동해안 가는 길에 의성 산수유 마을을 들러도 좋다. 15~400년생 산수유 3만 그루가 사곡면 화전2·3리 일원에 피었다. 구례 등 유명 산수화 마을에 비해 아직 사람의 발길이 덜 탔다. 음식점 하나 없는 곳이다.
화전2리에서 시작하는 산책길은 시멘트 소로와 논두렁, 밭두렁을 따른다. 길은 골짝을 따라 평탄하게 이어지는데 가끔씩 만나는 민가와 경운기와 농부가 정감 있다. 골짝 물에 비치고 녹색 마늘밭에 걸리는 노란 산수유가 8㎞ 길을 따라 군락을 이룬다. 길은 산 중턱으로 오르고 길 끝에 저수지가 있다. 산수유 길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저수지 물결 따라 노란빛이 하늘거린다.
화전리 주민들 말로는 “7~8년 전쯤부터 사진 찍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르기 시작하며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녹색 마늘밭과 노란 산수유의 녹황 대비에 열광한 아마추어 사진동호회들의 렌즈에 포착된 것이다. 이어 언론사들의 봄 스케치 장소로 떠올랐고 지난해에는 2만명이 화전리를 다녀갔다. 2006년 ‘산수유 꽃피는 마을 사진 공모전’의 대상 작품이 청와대 집무실에 걸린 사실도 주민들은 자랑스러워한다.
화전리 주민들은 ‘산수유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올해부터 산수유 축제를 연다. 산수유 길 입구 주차장에서 경운기로 산수유 드라이브가 출발한다. 마을회관에서는 산수유 진액을 넣은 동동주와 손두부, 국수를 내놓는다.
산수유는 5일께부터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축제는 12일 하루 열린다. 의성읍에서 912번 지방도를 타고 사곡면에서 들어간다. 15분 걸린다.
의성=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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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여행쪽지
동서울에서 시외버스 하루 8번
⊙ 서울에서 영덕까지는 중앙고속도로를 타야 가장 가깝다. 서안동 나들목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을 거쳐 강구로 내려간다. 4시간30분 걸린다. 동서울에서 영덕까지 하루 8번 시외버스가 다닌다. 동서울종합터미널(ti21.co.kr)
⊙ 영덕 대게축제가 11일부터 13일까지 삼사해상공원과 강구항 일대에서 열린다. 대게잡이 낚시체험, 영덕대게 깜짝경매, 중국 기예단 특별공원, 열린 음악회 등이 이어진다. 영덕군청 문화관광과(054-730-6396·tour.yd.go.kr) 참고.
⊙ 해 질 녘 영덕에 도착해 대게를 맛본 뒤, 다음날 아침에 일정을 시작해야 여유롭다. 동해비치관광호텔(054-734-5400), 동해해상관광호텔(054-733-4466) 등 숙소를 이용한다. 고래불 해수욕장 앞에 자리잡은 펜션형 숙소 고래불리조트(054-734-0773)는 바다 경치가 좋다. 테라스가 있는 가족실, 통나무 펜션 등 객실 20개와 편의점, 바비큐 시설이 있다. 4월 말이면 청백일홍으로 꽃밭을 이룬다.
⊙ 구룡포 일본 골목은 구룡포파출소에서 보성냉동식품까지 약 400미터 거리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없다. 포항시는 일부 주택을 매입해 근대문화재로 등록하고 문화 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봄날 한가로운 오후에 골목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선다. 구룡포 공원에서 구룡포 항구 전경이 펼쳐진다. 포항시 문화관광과(054-270-2241·ipohang.org)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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