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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2 23:12 수정 : 2008.04.02 23:24

물고기마을 만들기에 미쳐 살던 전북 완주군 원반교마을의 류병덕씨가 부녀회장 김향숙씨와 함께 섰다. 150종 200만마리가 사는 물고기마을의 주역들이다.

[매거진 Esc] 이병학의 마을을 찾아서

개인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이룩한 완주 원반교 물고기마을의 드라마

‘변해야 산다’고들 한다. 주민이 변하면 마을이 바뀐다. 변화를 이끄는 건 새로운 생각과 행동이다. 새로운 발상은 주민의 일상을 바꾸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관상어 양식으로 이름난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원반교마을은 개인의 아이디어와 열정, 실행력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는 마을이다.

‘시답잖은’ 젊은이가 튀는 일을 감행하다

원반교마을 이장 박정인(51)씨가 말했다. “츠음엔 저리 하는 게 잘 되겄다 생각한 사람이 읎었죠.” 부녀회장 김향숙(51)씨가 덧붙였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으니께요. 그리 안 해도 먹고사는디 지장 읎는디 뭣 하러 생고생을 하나 했었다니께요.” 물고기마을 만들기에 미쳐 살던 ‘시답잖았던 젊은이’ 류병덕(48)씨를 두고 하는 얘기다.


원반교마을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금붕어·비단잉어 등 관상어의 85%를 생산하는 곳이다. 30여년 전부터 양식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경작지의 90%가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벼농사보다 소득이 한결 나스닝께로 너도나도 달려들어” 논밭을 파내고 양식장을 들였다. 그러다 10여년 전 관상어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내수면 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그 ‘시답잖은’ 젊은이가 나서서 튀는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장도 없는 젊은이가 마을을 바꿔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국외시장에 진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마을 브랜드가 필요했죠. 국내 최대 양식장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봤어요.” 물고기를 길러 파는 마을에서, 물고기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체험하며 즐기는 마을로 바꿔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희귀 물고기도 물고기마을의 볼거리다. 사람 얼굴과 비슷하다해서 이름붙은 인면어.
고교 졸업 한달여를 앞두고 학비가 없어 졸업을 포기해야 했다는 류씨는 “돈 벌어 효도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상경’을 실행한 뒤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와 남들처럼 양식장 일에 뛰어든 가난한 젊은이였다.

‘전국 최고의 물고기 체험마을’을 목표로 그는 일에만 매달렸다. 양식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물고기 체험장 만들기와 새 품종 개발에 ‘쑤셔 박았다’. 마을에서 정신병자로 취급할 정도였다. 몇 년 동안 혼자 물길을 새로 내 양식장을 다시 꾸미고, 직접 굴착기로 터를 파고 길을 냈다. 희귀어종을 대량으로 구입해 수족관들을 만들고 전시관을 꾸몄다. 주민들의 손가락질 속에 체험장은 차츰 모습이 갖춰졌고, 토종잉어와 비단잉어, 이스라엘잉어의 반복 교배를 통해 ‘검은 천사’라는 새 품종 개발에도 성공했다.

당시 류씨는 주민들의 동참을 요청했지만 “되지도 않을 일을 벌인다”는 핀잔만 들어야 했다. 물고기마을 개장 6개월여를 앞두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는 목과 얼굴에 철심을 박은 상태로 퇴원해 일에 매달렸다.

이런 그의 열정을 주민들이 인정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 개장과 함께 펼친 ‘제1회 물고기 축제’를 통해서였다. ‘시답잖은 친구’는 ‘놀라운 젊은이’로 재평가받게 된다. 닷새 동안 전국에서 3만여명이 원반교마을로 몰려들었다.

“겁나게들 몰려오더라고. 마을 생기구 그 난리법석은 츠음이랑게.” “하이고, 애들이고 으른이고 하튼 으마으마하게들 왔어라.” “공일엔 도로가 맥히고 줄을 나래비로 서부러야.”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다 농림부의 향토산업 육성자금 지원 소식이 전해지고, 완주군에서도 지원에 나서자 주민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주민 거의 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물고기마을 운영위원회가 꾸려졌다. 류씨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1만6천㎡(약 5천평)의 터에 들어선 ‘물고기마을’에선 열대어 등 각종 관상어와 식용어, 토종 민물고기, 인면어 등 희귀 물고기를 포함해 약 150종 200만마리에 이르는 물고기 떼를 만난다. 실내 수족관 전시장, 부화장, 체험장, 잔디밭 등을 갖췄다. 먹이 주기, 물고기 잡기 체험이 진행되고 가족 단위 ‘물고기 주말농장’ 분양도 한다. 개장 뒤 열달 동안 10만여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류병덕씨는 다양한 물고기를 들여와 수족관과 전시관을 꾸몄고, 지난해 5월 열린 제1회 물고기축제에는 닷새 동안 3만명이 몰렸다(왼쪽 사진). 검은천사(아래)는 토종잉어와 비단잉어 이스라엘잉어 등의 반복교배를 통해 탄생한 새 품종이다(오른쪽 사진).

농로에 레일 깔고 관광열차 운행하는 꿈

아직은 류씨 개인이 가꾼 시설이 전부지만, 본격 시설투자가 이뤄지면 ‘물고기마을’의 면모가 드러날 전망이다. “올해는 양식장 시설 첨단화와 수출기반 확보에 집중하고 내년부터 체험·관광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게 되죠. 세계적인 물고기마을 건설이 목표입니다.”

류씨와 주민들의 계획은 야심차다. 2010년까지 물고기 체험장과 벌꿀·배 등 특산물, 관광거리를 연계한 복합 체험마을을 선보일 계획이다. 마을 농로에 레일을 깔고 소형 관광열차를 운행할 계획도 짠다. 주민 10여명은 이미 농민대학에 입학해 농촌의 미래를 공부한다.

이장 박씨가 말했다. “츠음엔 오해도 있었지만, 인자 함께 가는 것이여. 화합해서 정말 잘해볼라요.” 오해와 질시, 타성을 딛고 원반교마을 주민들은 더 큰 변화를 향해 힘을 모아가고 있다.

글·사진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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