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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2 23:11 수정 : 2008.04.05 14:13

베트남에선 강대한 인도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동쪽의 중국풍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혀끝으로 느낄 수 있다. 하노이 시장의 밥집. 박정석

[매거진 Esc] 박정석의 오리엔탈 스타일4
춥고 험한 겨울의 북부 베트남을 견디는 몇가지 방법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면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짓을 할까? 사랑까지 갈 것도 없다. 약간의 호의·성의·배려 혹은 그 비슷한 어떤 것. 따스하고, 부드럽고, 상대를 위한 작고 별로 어렵지 않은 그것.

때는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 아직 인터넷 예약이나 전자항공권이 활성화되기 전, 그러니까 바다건너 어디로든 날아가기 위해서는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목적지와 날짜, 원하는 스케줄을 줄줄이 말하고 로마자 이름 불러줘야 항공권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베트남의 최대 종교는 돈, 바로 자본주의다. 베트남의 전통 공연. 최규용
항공권과 함께 받은 메모에 감격하다

여행사는 이제나 저제나 몹시 바쁜 곳이다. 따릉따릉 사방팔방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넋이 반쯤 나간 듯한 직원 붙잡고 간신히 예약을 하고 보니 출발 전날 단체로 끊는 항공권이라 우편으로는 못 보내주고 당일날 아침 공항에서 나눠준단다.

“아니, 그 말을 왜 진작 안 했어요? 난 항공권 미리 받고 싶은데!”

항의를 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쩔쩔매던 여직원, 곧 목소리가 밝아지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제가 하루 전날 댁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르면 되니까 문제없어요. 그렇게 해드릴게요.”

성실한 태도와 고운 목소리에 순식간에 마음이 풀어지며 그냥 공항에서 받기로 했다.

하노이의 남학생들. 이지선
출발일 아침, 공항에서 항공권을 받아보니 웬 메모가 한 장 곁들여져 있다. 잊은 물건 없이 안녕히 다녀오시라는, 베트남 여행과 관련된 이런저런 덕담을 볼펜으로 꼭꼭 눌러 쓴 예쁘장한 여자 글씨다.

별 것 아닌 것을 읽으며 순간 감동까지 한 것은 지금껏 항공권을 수없이 사봤음에도 이 별것 아닌 것을 건네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받은 연애편지처럼, 그 쪽지를 잘 접어 여권 커버에 끼워넣었다. 뜻밖의 메모는 그날 뜻밖의 선행 두 가지로 이어졌다. 하나는 미국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가는 칠순 노인, 야단난 얼굴로 허둥거리던 할머니를 업다시피 해당 게이트 앞까지 인도한 것. 두 번째는 하노이행 비행기 속에서 일어났다. 단체로 하롱베이 구경을 가는 어느 효도관광단, 좌석 위 짐칸에 짐을 올리던 노인이 묵직한 가방을 하필 내 머리위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괜찮아요!” 고통 속에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실수로 그럴 수도 있지. 남몰래 목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화를 낼 필요는 없어.

모처럼 따스한 마음으로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겨울의 하노이는 동남아라는 지명이 무색하리만치 몹시 추웠다. 이 도시의 상징인 호안키엠 호숫가, 가져간 얇은 옷들을 모조리 껴입고 벤치에 앉아 햇볕 한줌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는 내 곁으로 털모자에 스웨터로 중무장한 행인들이 바삐 지나다녔다.

잿빛 도로 곳곳에 여전히 ‘블리바드’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 하노이의 거리를 다니는 꽃장수. 박정석.
몇 번 얻어맞을 뻔했던 위기들

사회주의라는 제도·사상적 공통점 탓인지 날씨 말고도 여러모로 하노이는 동남아보다 중국에 더 가까운 지역이다. 로맨틱한 시클로를 타고 도착한 호텔, 마침 차비를 낼 잔돈이 없어 호텔 안에서 돈을 거슬러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클로 운전수 영감이 냅다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대가였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행인들 표정만 봐도 얼마나 심한 욕인지 알 만 했다. 얻어맞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뒤늦게 개방된 베트남의 최대 종교는 돈, 바로 자본주의다. 북방계의 강인한 심성에 빈곤한 현실, 돈에 대한 열망이 합쳐지니 무시무시한 결과가 빚어졌다. 시장 구경을 하다 마주친 어떤 거지, 두 시간 여에 걸쳐 무려 5킬로 가까이 내 뒤를 따라다녔다. 1분 간격으로 한 푼 줍쇼를 외치면서.

“내가 졌다. 이거 줄 테니 제발 이제 그만 가서 볼 일 봐요.”

1달러를 내밀자 나꿔채듯 받아들더니 침을 뱉고 사라졌다. 돈 안 줬으면 끝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니 좀 무서웠다.

베트남 음식은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아시아 요리다. 이지선
호의적이지 않은 날씨와 팍팍한 사람들을 견디게 만드는 이곳의 최대 매력은 바로 맛난 음식이다. 중국요리보다 훨씬 담백하고 타이요리처럼 시고 맵지 않으면서 불을 적게 쓰고 푸른 채소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베트남 퀴진은 21세기 웰빙이라는 개념에 맞추기라도 한 것 같다. 유치원생들이나 사용함직한 꼬마 의자에 앉아 옆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먹는 길거리 식당의 쇠고기 쌀국수(Pho Bo)는 하노이가 원산으로, 향긋한 민트와 부위별로 주문 가능한 고기고명이 뒤섞여 황홀한 맛을 낸다. 국수를 먹든 밥을 먹든, 현지인들의 식당을 이용한다면 한 끼 식사로 2달러 이상 쓰기 쉽지 않다. ‘비아 호이’라고 불리는 베트남의 명물 생맥주는 냉장고가 흔하지 않은 관계로 보통 얼음을 넣어 마시는데 몇 백원이란 값에 비해 상당히 훌륭한 맛이다.

배가 불렀거나 취했을 때도 방심은 금물이다. 길을 걷다 분짜(구운 고기를 촛물에 담가 국수·야채와 함께 먹는 베트남요리)에 쓸 고기를 숯불에 굽는 광경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들자 기다렸다는 듯 삿대질과 함께 엄청난 욕설이 쏟아진다. 심성 약한 사람이라면 얼굴이 새파래질 만한, 굳이 해석을 하자면, 카메라 저리 치우셔, 정도가 되겠다.

한때 아시아의 파리라 불리던 이 오래된 도시, 잿빛 도로 곳곳에 여전히 ‘블리바드’라는 명칭이 남아있는, 썩어가는 건물들과 푸른 가로수가 늘어선 오롯한 거리 위로 지친 표정의 자그마한 사람들과 검은 매연, 알싸한 민트향이 한데 섞여 떠도는 이곳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해와 사랑은 별개 문제다.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몇 번 얻어맞을 뻔했지만 그리 화가 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한 일은 …

베트남 사회주의는 제복 입은 군인에게서나 겨우 느껴질 정도다. 박정석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서울 도착, 집에 돌아와 가방 내려놓고 물 한 잔 마신 다음 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아무 여행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간 일이었다. 여행 첫날 공항에서 그 조그만 메모를 읽은 이후로 하노이 쌀국수고 욕설이고 뭐고 내내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칭찬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 날 늦은 오후였다.

“… 좋게 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직원이었다. 수줍고 어린 목소리는 기쁨에 넘쳤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한 것뿐인데, 그런 글을 올려 주셔서 사장님께 칭찬도 받고, 하루종일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겨울에 북부 베트남을 여행하려면 따스한 옷과 넉넉한 위장, 그리고 사랑이 조금 있으면 좋다. 사랑까지 갈 것도 없다. 호의 약간이나 배려 혹은 그 비슷한 부드러운 어떤 것.

소설가 박정석·<내 지도의 열두 방향> 저자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의 맛

서양 빵에 아시아의 재료가 절묘히 녹아들어간 바게트, 반미

가격 대비 만족도로 보아 베트남보다 더 나은 식도락 천국은 세계에서 없다. 박정석
“다섯 명의 소년이 두 개의 막대기를 가지고 하얀 물소떼를 검은 동굴 속으로 몰아넣는 것. 이게 무엇일까요?”

이상은 음식과 관련된 베트남의 전통 수수께끼다. 정답은 젓가락으로 밥 먹기.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데, 아마 500원쯤 할 거야. 눈에 띄면 한 번 먹어 봐.”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는 마당에 여행의 목적을 식도락에 두는 여행자들이 늘어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가격 대비 성능으로 보나 절대적인 맛으로 보나 식도락의 천국이 틀림없는 베트남. 미국과 타이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이 나라의 국민음식을 들자면 아마 쌀국수(포)가 되겠지만 먹음직한 것은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전세계 베트남 식당들의 필수 메뉴인 스프링롤(춘권)의 본토 버전도 좋겠고 후에의 궁중요리나 하노이의 개고기도 별미로 꼽힌다. 그러나 베트남 미식여행을 계획하는 지인에게 내가 모처럼 추천한 것은 요리라고 하기도 뭣한 초라한 음식, 바로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

서쪽 인디아에서 버마를 거쳐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를 지나 마침내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강대한 인도의 영향력이 차츰 약해지고 동쪽의 중국풍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혀끝으로 느끼는 것은 즐겁고도 신기한 일이다. 타이와 중국 등 이웃 말고도 베트남의 음식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또 하나의 국가는 바로 멀고 먼 프랑스. 오늘날 베트남 요리는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아시아 음식이다.

19세기부터 100여년간 베트남을 점령했던 프랑스가 들여온 것 중에는 맥주, 아이스크림, 카페오레, 그리고 바게트가 끼어 있다. 바게트. 프랑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길쭉한 빵은 베트남 어느 시장에 가나 한 귀퉁이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본토에 뒤지지 않는 맛에 가격은 미안하리만큼 싸서 왕창 사도 단돈 몇 백원.

바게트 샌드위치 반미는 투명한 유리상자에 넣어 길거리에서 팔기도 하지만 주문 즉시 눈앞에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무딘 칼로 쓱싹쓱싹 바게트의 옆을 가르고 버터를 바르는 것까지는 프랑스식과 똑같다.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은 그 다음부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햄 대신 베트남식 기름투성이 햄조각을 끼우거나 돼지고기의 어느 부위인지 정체가 모호한 파테를 바른다. 얇게 썬 오이 몇 조각과 베트남 요리의 단골 재료인 푸른 쪽파를 첨가하고 구리구리한 냄새 물씬 풍기는 피시소스를 듬뿍 뿌리면 완성이다. 바게트 빵에 쪽파로도 모자라 액젓이라니, 대체 얼마나 괴상망측한 맛이냐고?

“대체로 모두 맛있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일 맛나게 먹은 것은….”

예정대로 하노이의 ‘브러더스 카페’와 생선요리로 유명한 식당 ‘차카라봉’을 비롯해 식당 순례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한 지인은 베트남에서 경험한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을 발표했다. 영광의 1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반미. 프랑스가 자랑하는 빵 맛에 베트남 향기 짙게 풍기는 아시아의 재료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다고.

요리의 기본은 재료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며 반미는 한국의 부대찌개가 그러하듯 프랑스와 베트남의 절충점을 찾아 그걸 곧 특징으로 삼아버린 음식이다. 정치인보다 요리사가 몇 배 더 평화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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