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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 모자’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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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누군가의 흉을 볼 때 침 튀기며 동조할 줄 알며 서로의 부끄러운 점을 아낌없이 공유해야 하는 게 친구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ㄱ이 커피숍에 들어오자 ㄴ과 나는 ‘이건 좀 아니다’라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어느 추웠던 지난해 겨울, 그녀가 <색, 계>의 탕웨이가 썼던 클로슈 모자(종 모양으로 생긴 모자)를 쓰고 온 것이었다. “어! 그 모자는…”이라고 내가 말문을 열자마자 “맞아, 탕웨이 모자야”라고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순순히 수긍했다. 그녀의 머리털은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므로 우리는 모자 쓴 모습이 훨씬 낫다며 위로했다. 문제는 커피숍에서 나와 부암동 길을 걸을 때였다. 동네 할머니들이 지나갈 때마다 겸연쩍어하던 그녀는 결국 모자를 슬그머니 벗어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유인즉슨, 1930년대에 유행했던 그 모자가 사스(SAS) 신발과 함께 대한민국 할머니들의 패션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스타일 아이콘이 됐던 것이다. 부지런한 파파라치와 대한민국의 산업 역군인 의류업계 종사자들 덕분에 우리는 커스틴 던스트,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의 스타일을 일주일의 시간차를 두고 따라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 티브이에 나온 채시라·이미연을 따라 앞머리를 삼자 모양으로 치켜세우던 수준은 애교에 속한다. 지금은 김민희가 <놀러와>에서 입고 나온 자르댕 드 슈에트 옷이 며칠 만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김민희 스타일 원피스’라고 판매되는 시대이며, 생소했던 브랜드인 커스틴 던스트의 ‘메일’(Mayle) 백조차 모조품이 판매되는 시대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스타일보다도 1년 365일 만날 쇼핑하고 커피나 마시고 개 끌고 산책하는 것만 같은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식은 어떻게 피해야 할까’와 ‘이번 달 카드값은 어떡하나’라는 고민일랑 없어 보이는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산다. 문제는 이런 스타일들이 다양한 몸매의 맥락과 된장찌개적 특수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 하나는 <뜨거운 것이 좋아> 개봉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화 속 김민희의 숄더백(의 모방품)을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이유는 “싸긴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들고 다녀서 유행만 좇는 된장녀 티가 날까 봐서”이다. 치렁치렁하고 난해한 꽃무늬 레이어드 룩을 선보였던 한 선배는 우리에게 “얼굴은 아줌만데 옷만 아오이 유다”라는 가혹한 비평을 들어야 했다. 친구 한 명은 <원스>를 보고 손가락이 다 보이는 긴 털장갑을 사다 못해 결국 기타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결국 기타를 둘러메고 광화문을 누비는 그녀를 보고 우리들은 지겹다는 듯 인정했다. “야, 그래그래, 너 자유로운 방랑자 같다. ‘로망스’는 칠 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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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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