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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의 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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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탁현민의 말달리자
얼마 전 가수이면서도 버라이어티 쇼 출연자로 더욱 알려져 버린 슬픈 김C를 만났다. 만나서 그가 쓰고 현재 찍는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C가 머릿속에 담아뒀다는 새로운 시나리오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주인공에게 정말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서는 그저 ‘미안’이라는 한마디로 그 상황을 정리해 버리는 것에서 분노를 느끼고 응징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인데, 내용의 재미보다는 상황 설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사과라는 것을 단지 표현으로만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미안’이라는 한마디만큼 적절하며 포괄적인 말은 없다. 그러나 사과는 그것이 가진 사전적·이성적 의미만으로는 완전하지 못하다.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을 때는 진심 어린 고백과 반성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는 이성적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분위기로 해야 받아들여진다. 운전을 하다 멀쩡한 남의 차를 받아놓고서 “미안, 수리비는 얼마?” 한다면 말만 따져 본다면야 사과도 했고 수리비도 준다는 뜻이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아마 누구라도 “아 예, 얼마입니다” 하고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당장 붙잡고 패대기를 치거나 돈이고 뭐고 욕부터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요즘 이런저런 불만스러운 일이 많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먹는 음식에서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자꾸 나오는 것에 다들 심기가 불편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미안’하다고만 하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미안’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위생상태 점검이니 재발 방지 대책 같은 것은 이성적으로는 당연한 절차이겠으나 진심과 반성이 느껴지는 사과는 아니다. 제발 감성적으로 사과하길 바란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것 때문에 김C의 시나리오처럼 응징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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