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박정석의 오리엔탈 스타일 5
4월의 오사카와 교토에서 더 커져버린 이질감
지난해 나는 본격적인 노화를 앞두고 두 가지 중대한 걸음을 내디뎠는데, 하나는 강원도 바닷가에 집을 짓고 은둔을 시작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드디어 일본을 여행하기로 결심한 일이다.
남미를 종단하고 아프리카행 비행기표를 사는 동안 가까운 일본에 갈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것은, 어린 시절 학급의 짝이나 옆집 오빠에게 별 관심 없던 것과도 비슷하다. 짝이나 옆집 오빠와는 달리 일본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니, 안 가봐도 이미 가본 듯한 익숙함에 가까우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용이함까지 겹쳐 한층 지루함을 더했던 것 같다. 이왕 돈을 들일 것이면 의식주 모두 최대한 낯선 곳에 가서 세차게 뒤통수를 얻어맞듯 문화적 충격을 받고, 그로 말미암아-평범한 누군가가 우연한 기회에 슈퍼파워를 얻어 슈퍼영웅이 되듯-약간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었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정말 무서워할까
“마침 벚꽃이 만개할 때야. 한번 가보자!”
친구가 우연히 나를 유혹했지만 진짜 일본행에 열의가 있었더라면 그런 제안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꽃구경이라니. 그렇게 지루하고 노티 나는 행위도 다시 없지 않을까.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도 그럴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해 봄날 우리는 오사카로 날아갔다. 내 생애 첫번째 일본 여행.
가본 적은 없지만 일본은 전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사실 나는 그곳을 세상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욱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사왔던 워크맨들이 모조리, 노트북 중 두 대가 일제이며, 유학시절 몰던 소형 중고차도 일본산, 인상 깊게 본 만화책 중 절반 이상이 일본 만화다. 한 달에 한 차례 이상 일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주일에 한 번쯤 청주를 마신다. 일본이란 나라에 별 애정이 없는데도.
애정? 민족주의가 다른 여러 의식을 간단히 압도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월드컵 때마다 부는 광풍이 지겹다 해도,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가족, 일본 이름마저 가진 적이 있는 그 죄없는 남자의 딸인 내가, 처음 입학한 학교에서 북한 공산당과 일본을 우리의 2대 공적처럼 배우며 자라난 성실한 소녀가, 멀고도 가까운 저 섬나라에 진심어린 애정을 갖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아무리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해도. “시끄러워! 너희들 혼자 탄 차도 아닌데 이제 그만 떠들고 조용히 좀 해!” 오래전 타이-캄보디아 국경에서 어린 일본인 삼인조와 함께 승합차를 탔다. 그 애들이 어찌나 정신없이 떠들어대던지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발칵 화를 내고 말았다. 노처녀 히스테리만은 아니었고, 그 시끄러운 언어가 하필 일본어가 아니었더라면, 그렇다면 나는 감히 그런 분노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그것도 무려 세 명-에게 폭발시킬 수 있었을까. “무섭다.” 언젠가 일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읽은 적이 있는데,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중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바로 ‘무섭다’였다. 오사카 숙소로 정한 호텔 직원도 내가 무서운 것 같았다. 투숙계를 쓰며 영어로 몇 마디 건넸을 때 분명히 그의 얼굴에는 좀 두려운 기색이 떠올랐다. 오사카 제3의 호텔이라고 했는데 직원들의 영어 능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매우 친절했다. 방까지 짐을 날라준 깡마른 청년 직원은 팁을 주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외친다. “재패니즈, 노 팁!” 겉만이라도 친절하면 충분한 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린 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야, 귀엽다. 거울에 그려놓은 것 좀 봐.” 욕실에 들어가니 성에 방지액을 발라놓은 것인지, 아니면 뒤에 열선을 깔아놓았는지, 물안개로 뿌옇게 흐려진 거울 복판에 정사각형으로 맑은 부분이 남아 있다. 그 다음 호텔의 욕실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예쁜 케이크나 가이세키, 노트북과 자동차 잘 만드는 재주를 넘어서서 발상 자체가 저렇게 섬세하다면 서비스 분야에서도 강점을 보일 수밖에 없겠다. 일본에서 만난 서비스 종사자들은 백이면 백 친절했고 예외는 밀려드는 외국인 관광객의 질문에 녹초가 된 듯한 교토의 버스 운전사 한두 명뿐이었다. “겉으로야 친절하지. 하지만 일본인은 믿으면 안 돼. 속마음은 다르거든.” 이런 말은 좀 너무한 것이, 겉과 속이 같은 것은 오늘날 피를 나눈 가족이나 배우자에게조차 기대하기 힘든 덕목이 아닌가. 여행자인 내가 이국에서 바라는 것은 속속들이 친절한 것이 아니라 겉만이라도 친절한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래전 캄보디아 가는 길에 신나서 떠든다는 이유만으로 된통 욕을 먹은 일본인 삼인조한테도 그걸 바랐을 것 같다. 부디 겉만이라도 친절한 것을. “이것 봐!” 낮에는 꽃구경, 밤이면 생맥주와 사케에 취해 우리는 이 나라를 칭찬했다. “아직까지 흠잡을 것이 하나도 없네. 음식은 맛있고, 사람들은 상냥하고 …!” 뭔가 흠잡아야 마땅한 곳으로 생각한 것은 과거사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보다 잘사는 현재 때문인지 모르겠다. 증오에 질투심까지. 민족은 가족처럼 애증이 어린 공동체다. 그들의 역사에 어쩌다 한번 얽혀든다는 것은 결정적인 일이다. 증오는 쌓여갈 뿐 해소되는 일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잊혀질 뿐. 실제적 역사는 그 세대의 경험, 다음 세대의 기억이 된다. 우리를 한민족이도록 하는 것은 검은 눈과 검은 머리,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 일본에게 시달리고 일본 이전에 호전적인 못된 잡놈들에게 오래도록 시달렸지만 우리는 본디 평화를 사랑하고 솜씨 좋은 동방의 백의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다. 시간과 함께 흐려진 기억이다. 숙소 근처 값싼 선술집에서의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만으로도 아슬아슬 무너질 듯 위태로운. 두 사람이 함께 간 여행이고 싸운 적도 없었는데, 여행 내내 고독했다.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도시는 워낙 고독한 곳이다. 푸른빛이 드문 회색 공간에 사람들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그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도시인 오사카에서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고 오사카보다 도시화가 덜 된 교토의 화사한 꽃길을 걸으면서도 계속 그런 기분이 들었다. 대가족 거느리고 떠난 가장은 더하겠지 의사소통의 실패는 고독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일본어를 지껄이는 친숙한 생김새의 사람들 앞에서 영어 몇 마디 건네다가 포기하고 친구를 보았을 때, 나와 똑같은 정도로 난감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서 내가 느끼는 이질감은 처음보다 더욱 확장되었을 뿐 나아진 것이 없다. 두 사람도 이럴 지경인데 대가족을 거느리고 일본을 찾은 가장은 얼마나 고독할까. 상자처럼 비좁은 호텔방에서 잠이 깨어 미로처럼 뻗은 복도를 지나 한국인과 일본인, 그 밖의 국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에서 숙박비에 포함된 조식을 먹으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단절적인 모국어와 친구가 고양이처럼 조용히 밥을 먹는 모습,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쌀죽-일단 이걸 보자 그 옆의 모든 음식이 껄끄럽게 느껴져 결국 쌀죽만 두 공기 먹고 말았다-의 미적지근한 점성을 느끼며, 지금껏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외로워 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의 컴컴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나이트버스나 유타의 붉은 산 사이로 이어진 불타는 사막 길의 헌털뱅이 자동차 안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글·사진 박정석 소설가·<내 지도의 열두 방향> 저자
교토 넘버 원, 고등어 초밥 사각형 나무틀로 만든 밧테라 스시를 눈부신 보석 앞에서 맛보다 찾았다. 교토의 명물인 그것을 발견한 것은 기온거리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어느 초밥가게 창가에 진열된 몇 가지 초밥들 중에 은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그것이 끼어 있었다. 이른바 고등어 밧테라 스시. ‘밧테라’란 포르투갈어로 ‘선박’(vessel)이란 뜻이다. 아마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간사이지방 특산인 이것은 고슬고슬한 밥을 슬쩍 쥐는 니기리스시(주먹초밥)와는 달리 주로 사각형의 나무틀(상자)을 이용하여 꾹꾹 눌러 만든다. 밥의 간이 강해서 한결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다시마는 까고 드세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친절한 문구가 계산대에 붙어 있었다. 묵직하고 반듯한 초밥을 반 근 사들고 나와 길을 걷자니 빨리 먹어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초절임 고등어 특유의 시큼한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였다. 그러나 하필 주변에는 공원도, 공터도 없다. 바삐 오가는 교토 시민과 닥치는 대로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 그리고 정교하게 꾸며진 온갖 가게들뿐. “저쪽이 좋겠다.” 부끄러움처럼 어정쩡하고 미묘한 감정은 갑작스레 솟아난 폭력적인 식욕에 간단히 눌려 버렸다. 개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귀금속가게, 유리창 안으로 보석이 들여다보일 뿐 가게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 구조로 된 쇼윈도를 발견해 은밀한 피크닉 장소로 삼기로 했다. 누가 보면 너무 비싸 사지 못하는 돌멩이를 구경하며 애타는 물욕에 끙끙거리는 관광객이라 생각하길 바라면서. 눈부신 보석들을 앞에 두고 먹는 고등어초밥의 맛은 각별했다. 하나 둘씩 우물거리다 결국 몽땅 먹어버렸다. 다시 길을 걷다 다음 가게에서 우리가 낸 가격의 반값도 안 하는 밧테라 스시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끝맛이 더욱 좋았을 텐데. 생긴 것은 거의 똑같지만-세상의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고등어의 질에 따라 3배 이상 가격 차가 나기도 한다고. 일본 레스토랑과 주점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본토의 맛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다. 다음은 나무틀 없이도 만드는 고등어 밧테라 스시의 간략한 레시피다.(안효주 주방장의 <이것이 일본요리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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