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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사동에 2층 규모로 문을 연 한국 첫번째 본사직영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폴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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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폴 스미스’를 영국 최고의 상표로 만든
세계적 디자이너 폴 스미스를 만나다
“저는 그저 제가 되려고 합니다. 제 본모습을 찾으려고 하죠. 순수한 태도가 중요해요. 그건 유치한 것과는 다르죠. 늘 호기심을 갖고 “왜?”라고 물어봅니다. 또 파티나 인맥에 연연하거나 유명인처럼 살지 않아요. 몇몇 친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하게 지내려고 해요.”
색색깔의 세로 줄무늬를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왼쪽 아래를 찾습니다. 흘림체로 쓴 ‘Paul Smith’를 찾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죠. 세로 줄무늬와 ‘Paul Smith’라는 글씨는 패션 상표 ‘폴 스미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입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폴 스미스’를 영국 최고의 상표로 만든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바로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의 두번째 초대손님입니다. 지난 14일 서울 신사동 ‘폴 스미스’ 단독 매장에서 한국 첫번째 단독 매장 개장을 축하하느라 2박3일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디자이너 폴 스미스를 만났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라고 해서 화려한 외모와 거만한 몸짓을 예상했다면 오산입니다. 털털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인상의 그는 매순간 진지한 태도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폴 스미스와 김성일씨는 첫 만남이지만 편안하게, 때로 농담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이야기가 이제 시작됩니다.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성일 도쿄에 갈 때마다 이세탄 백화점에 있는 폴 스미스 매장에 꼭 가요. 꽤 오래 전에 파리에 갔을 때도 폴 스미스 가게에 갔는데, 그 때 너무 좋았어요. 전체가 마호가니 나무로 된 어두운 분위기가 매우 인상 깊었죠. 폴 스미스 매장은 나라마다 모두 다른 분위기예요.
폴 스미스 대부분 유명 상표는 여기 서울이나 일본 도쿄, 뉴욕이나 매장이 모두 비슷한 느낌이고 같은 분위기죠. 저는 모든 제 매장들이 다 각각 다른 성격이기를 원해요. 어느 매장에 가든 그곳이 어떤 분위기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도쿄나 뉴욕, 런던 등 제 매장은 다 스타일이 다르죠.
1년에 7개월은 여행… 창의적 환경이 영감의 원천
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폴 스미스 매장은 런던 코벤트 가든 매장이에요. 제가 1995년부터 2년 동안 런던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코벤트 가든 매장에서 너무 일하고 싶어서 지원서를 냈어요.
폴 (놀라며) 우리가 실망시켰군요?
김 네. 그런데 폴 스미스 쪽에서 편지를 직접 보냈어요.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조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를 받고 놀랐어요. 회사들은 대부분 편지를 보내지 않거든요.
폴 그렇죠.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우리가 예의를 갖춘 회사여서 만족스러워요.
김 요즘 패션은 패션에서 끝나지 않아요.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죠?
폴 그래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죠. 20~30년 전에는 캣워크(패션쇼 무대) 패션과 저가 패션의 차이가 컸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패션쇼가 끝나고 1시간도 되지 않아 인터넷에는 ‘발렌시아가’나 ‘구치’의 패션쇼가 올라와요. 동시에 ‘자라’나 ‘에이치앤드엠’(H&M) 같은 패스트 패션 상표가 많아졌어요. 패션이 그저 옷에 그쳤던 시대는 지난 거죠.
김 몇 해 전부터 패션과 문화는 섞이고 있죠. 그래픽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음악까지요. 그래서 저는 편집매장 ‘10 코르소 코모’처럼 패션과 문화가 만나는 곳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코르소 코모도 사실 늦었죠. 그런 점에서는 폴 스미스가 훨씬 더 빨랐으니까요.
폴 맞습니다.(웃음) 밀라노의 ‘10 코르소 코모’를 세운 카를라 소차니나 파리 ‘콜레트’를 운영하는 친구가 제게 말하기를, 그들 모두 편집매장의 영감을 폴 스미스 코벤트 가든 매장에서 얻었다고 하더군요. 제 고향에 아주 작은 첫번째 제 매장이 있는데요. 1970년대에 그 매장을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는 포스터와 노트 등 여러가지 물건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것들은 제게 매우 자연스러웠다는 거죠. 예를 들어, 그리스 여행을 가서 예쁜 노트를 발견하면 그것들을 가게에 가져왔어요. 의식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된 거죠. 이 매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자전거도 있고, 그림도 있죠.
김 대부분 여행을 하면서 영감을 받는 편인가요?
폴 1년에 7개월 정도 여행을 해요. 여행에서도 영감을 받고, 주변 환경에서도 많이 얻습니다. 제 아내가 예술가이고 저 역시 취미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친구들 중 배우나 작가도 많죠. 코벤트 가든 작업실에는 그래픽·텍스타일 디자이너는 물론 화가도 있습니다. 늘 창의적인 환경에서 사는 거죠. 그게 폴 스미스라는 브랜드가 꾸준히 긍정적인 연속성을 갖고, 계속 젊은 회사로 남는 이유입니다. 아이디어가 많죠.
유치함과는 다른, 순수한 태도가 중요하다
김 폴 스미스 가게에는 모든 것들이 젊어요. 이미지도 젊고 매우 독특하죠.
폴 감사합니다. 저는 뻔한 방식으로 사고하려고 하지 않아요. 기존의 디자이너나 디자인 회사에 실망할 때가 있어요. 그들이 서로만 바라보고 잡지만 들여다보면서 뭐가 유행이고 최신인지만 알려고 하기 때문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잡지나 인터넷을 잘 보지 않아요. 저는 그저 제가 되려고 합니다. 제 본모습을 찾으려고 하죠. 순수한 태도가 중요해요. 그건 유치한 것과는 다르죠. 늘 호기심을 갖고 “왜?”라고 물어봅니다. 또 파티나 인맥에 연연하거나 유명인처럼 살지 않아요. 몇몇 친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하게 지내려고 해요.
김 저는 런던이라는 도시가 참 좋아요. 당신은 어떤 도시를 가장 좋아하세요?
폴 저는 런던에 살고 런던이 좋지만, ‘가장’이나 ‘최고’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간마다 기분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런던을 사랑하지만, 파리의 낭만을 좋아하고 뉴욕의 에너지를 좋아해요. 로스앤젤레스의 여유로움도 좋아하죠. 모든 것에는 좋아할 수 있는 거리나 연유가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나 호텔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나요? 그 때 기분에 따라 다른걸요.
김 일본 친구들이 많은데, 다들 폴 스미스를 좋아해요. 요즘엔 한국 남자들도 폴 스미스를 좋아하기 시작했죠. 제 주변 여성들에게 ‘남자친구에게 입히고 싶은 옷이 뭐냐?’고 물어보면 80% 이상은 ‘폴 스미스’라고 대답해요. 이성이 좋아하는 옷이라면 그만큼 매력적이고 섹시하다는 뜻이겠죠. 사람들은 폴 스미스의 어떤 면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세요?
폴 내 옷도 좋아하겠지만, 사람들은 폴 스미스의 정신과 공감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제가 진실하고 평범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서 공감을 느끼죠.
김 예술가들과 협업도 많이 하는데, 최근에 특히 영감을 받은 예술가가 있나요?
폴 지난달에는 파리 폴 스미스 매장에서 <리베라시옹>의 젊은 기자가 케이트 모스에 대해서 쓴 책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그 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영국의 사진가 마틴 파와 함께 전시회를 진행했죠. 일본 폴 스미스 갤러리에서는 영국 밴드 ‘조이 디비전’의 이언 커티스의 삶을 그린 안톤 코빈 감독의 영화 <컨트롤>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어요. 언제나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이 흥미롭죠. 한국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고 숙제(!)를 하다가 조선시대 백자를 보고 놀랐어요. 색감이 너무 멋져요.(갖고 있던 도자기 사진 자료를 꺼냈다.) 저는 언제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요. 어디에 가든 그곳의 건축이나 디자인을 보려고 노력하죠. 이렇게 전통적인 것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죠.
김 한국 전통 문화를 자세히 알게 되면 아마 더 좋아할 거예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전통 문화가 있거든요. 전통과는 별개로, 한국 남자들에게는 매우 보수적인 면이 있어요. 모두 검은양복만 좋아하죠. 그런데 2001년쯤 폴 스미스 상품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변하고 있어요. 20~30대 남자들은 폴 스미스를 원하죠. 또 폴 스미스를 따라하는 브랜드도 매우 많아요. 폴 스미스 제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아닌 경우도 있죠. 많은 브랜드가 폴 스미스를 따라하지만 몇 년 지나면 사라져요. 그렇지만 폴 스미스는 그렇지 않죠.
세대를 넘나드는 매장 방문에 흐뭇
폴 영국에서는 모방이 칭찬을 하는 예의바른 방식이라고도 하더라고요.(웃음) 폴 스미스에는 폴 스미스만의 성격이 있잖아요. 도쿄 매장에 가서 55살 남자가 쇼핑하러 온 20살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걸 봤어요. 그럴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저희 매장에는 13살 학생이 와서 청바지를 사고, 또 60살 총리가 와서 옷을 사기도 한다는 거죠. 록 스타 중에서도 ‘프란츠 퍼디난드’ 같은 젊은 밴드들도,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도 폴 스미스 옷을 입어요.
김 ‘듀란 듀란’은 어떤가요? 제가 팬이거든요.(웃음) 곧 내한공연도 있어서 많은 한국 팬들이 기대하고 있어요.
폴 듀란 듀란의 닉 로즈는 몇 주 전에 코벤트 가든 매장에서 봤어요.(웃음)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에요. 경제적으로도 성공해야 하고, 감정적으로도 성공해야 하죠. 폴 스미스가 젊은이들에게도 꾸준히 매력적인 상표라는 점이 좋아요.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나이가 들면서 젊은 친구들이 찾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문을 닫고 말죠.
김 폴 스미스는 영원할 거예요. 폴 스미스만의 이미지는 젊은 사람들도 계속 좋아할 게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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