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마는 불심이 이슬람적 열정에 육박하는 유일한 국가다. 수도 양곤의 탁발하는 동자승들.
|
[매거진 Esc] 박정석의 오리엔탈 스타일 6 비밀의 섬, 두 번 찾은 버마에 관한 기억들
버마(미얀마)에서 내가 아는 ‘부’는 두 사람인데, 그 중 하나는 수도 랭군 센트럴호텔의 마흔 몇 살 난 벨보이로, 여태 만났던 세상의 모든 벨홉들 중 단연 가장 성실한 인물이다. 겸손하고도 붙임성 있는 표정의 그는 언제나 자주색 낡은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안녀하쎄요,” 복도든 로비든 나를 볼 때마다 커다란 몸을 굽혀가며 한국어로 인사했다. “캄싸합니다.” 헤어질 때는 이렇게.
|
버마 남부 도시 몰메인의 아이들.
|
파간으로 가는 찜통버스 안에서 생긴 일
그는 친절할 뿐더러 현명함까지 갖춘 사람이다. 작년 10월 랑군(양곤)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에 대해 묻자 난감한 얼굴로 목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그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은서준서 이야기나 합시다.”
오늘날 외딴섬 버마를 바다 건너 바깥세상과 연결하는 가냘픈 고리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몇몇 무해한 외국 드라마, 분당 5원 정도로 이용 가능한 느려터진-그리고 제한적인-인터넷, 길거리 좌판에서 판매하는, 케케묵은 외국잡지 등이다. 숯을 피워 요리하는 길거리 식당 옆 벽에 안젤리나 졸리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신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젊디젊은 실베스타 스탤론의 모습도 보였다. 이마에 빨간 끈을 동여매고 총을 든 <람보>.
“너무 더워. 창문 좀 열어줘 …!”
버마에서 뒤처진 것은 연예계 소식만이 아니다. 북부의 유적지 파간(Pagan)으로 가면서 개중 시설이 낫다는 버스를 탔다. 헌 일제 버스로 진작 수명이 다 된 티가 역력한, 에어컨 구멍으로 찬바람 대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침 혹서기의 복판에 놓인 4월.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탐스러운 갈색 볼에 아직 어린티가 듬뿍 묻어있는 청년이다. 급히 창문을 열었지만 더 뜨거운 바람이 밀려들어올 뿐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하던 청년, 어디선가 얇은 책을 한 권 꺼내더니 나를 향해 정성어린 부채질을 시작했다.
“아니, 고맙지만 소용없어. 제발 그러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요 …!”
지독스레 뜨거운 날이었다. 이렇게 더워본 적이 여태 또 있었나. 좌석 사이의 좁은 복도에까지 작은 의자가 놓이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의식을 반쯤 잃은 나는 옆자리 청년과 땀으로 찰싹 허벅지가 밀착된 채 열 여덟 시간을 가야만 했다.
|
순수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버마 여행의 최대 즐거움이다.
|
그러나… 알아듣지 못한 나의 이상형
그는 친절했다. 왜 그렇게 친절한지 알 수 없었다. 휴게소에 내리자 나를 화장실로 안내해 비누를 건네주고 세수를 하게 하더니 물기를 닦으라며 품에서 휴지까지 꺼내 내민다. 휴게소 식당에 들어가 버마어라고는 “쩨주띤바데”(고마워요)밖에 모르는 나를 대신해 식사를 주문하고 놀랍게도, 비용마저 대신 계산했다. 돈을 주려 했지만 절대 받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구나. 내가 더 나이가 많고, 아마 돈도 더 많을 것이고, 우리는 서로 이름도 모르는데.
“정말, 내 이상형이다, 넌!” 그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상형 몰라? 내가 좋아하는 남자. 이상형은 쓸모없을 때 만난다더니.”
청년은 그냥 웃었다. 포만감에 잠든 나의 머리가 절구 찧듯 그의 어깨에 닿았을 때도 몸을 피하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부둥켜안아 달라면 안아주고 결혼해 달라면 그렇게도 해 줄 것 같았다. 착한, 왜 그렇게 착한 것일까?
그 청년만 친절한 것이 아니었다. 버마인들 대부분 순진하고 선량했다. 동물을 인간으로 바꿨다는 것만 빼면 버마는 그 종적 진귀함에서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제도를 압도한다. 세상의 다른 곳에는 이미 멸종되어 사라졌거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버린 인간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희귀한 목적지다. 군부독재로 세계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물리적인 격리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문명의 혜택과 폐해, 어느 것의 영향도 받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인간 존재가 원체 이렇게 순박한 것인지 아니면 버마인 고유의 특성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상황적 단서로 보아 전자의 가설이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
버마 북부의 불교 유적지 파간의 불상. 파간은 크고 작은 유적이 수천 개를 헤아린다.
|
내가 아는 두 번째 ‘부’는 파간에서 만난 어떤 마부다. 말이 끄는 커다란 수레는 버마의 전통적인 운송수단이자 오늘날 관광객 상대의 돈벌이 수단이기도 했다. 일일투어 값으로 하루에 8천원을 불렀다가 곧 5천원으로 깎아주었다. 그는 33살이라고 했는데, 족히 열 살은 더 들어보였다. 마차 주인은 따로 있고 자신은 하루하루 돈을 내고 빌려서 쓴다고. 자식이 셋 있고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단다. 가족 이야기를 하다 내 부모의 나이를 알려주자 깜짝 놀란다.
“여기는 아무도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해요. 고생을 많이 하고 병을 치료받지 못하니까. 육십 넘기면 장수하는 거죠. 돈 많은 사람들만 오래 살아요 ….”
올해 초 다시 파간을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린 나를 향해 마부들 몇 명과 트라이쇼 운전사들이 슬금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나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의 이름과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했다.
“아, 그 사람 누군지 아는데, 작년에 죽었어요.”
이유를 물으니 병에 걸려 죽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는 이제 죽고 없으니 자신과 투어를 가자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순박한 사람들도 먹어야 사니까.
|
몰메인에서 만난 시클로 운전수. 버마인들 대부분은 순진하고 선량했다.
|
사나워진 민심은 절망을 반영하는가
다시 찾은 버마는 옛 기억보다 인심이 사나워진 것 같았다. “1달러 내!” 거리에서 사진을 찍던 나를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몇 번이고 날아왔다. 화려한 외국드라마의 영향인지, 10월항쟁 때문인지, 혹은 결코 바다 건너 육지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의 절망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거대하고 고독한 나라에서 희망을 느끼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다. 낯선 곳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라. 어둑한 석양, 혹은 동쪽 먼 하늘에 희미한 분홍색이 피어오르는 새벽녘 그곳에서, 버스-혹은 기차나 배-에서 내릴 이방인을 기다리며 기대감에 차서 초조하게 서 있는 트라이쇼 운전사의 얼굴을.
나는 마부가 내민 손을 잡고 말이 끄는 나무마차에 올랐다. 날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와 신선한 새벽바람에 섞여 프란지파니 향기가 짙게 풍겼다.
저기, 푸르스름한 빛으로 가득 찬 시골길이 보였다.
|
혹서기의 버마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아마도 파간이다. 석양녘의 파간.
|
땀과 눈물, 게다가 붉은 피
뜨거운 파간을 자전거로 돌아보는 순례자의 세 가지 조건
혹서기의 버마에서도 가장 뜨거운 곳을 찾자면 아마 북쪽의 유적지 파간일 것이다. 이글거리는 태양 때문에 명암이 박탈된 듯 동네는 온통 희끄무레했다. 해가 저물기 두 시간 전, 그러니까 오후 4시 반쯤 낡아빠진 자전거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
“아, 지금 가면 너무 더워요. 조금 더 있다가 해가 질 무렵 가지 그래요?”
5킬로미터쯤 떨어진 사원군으로 가는 길을 묻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러나 서둘러야 한다. 어두워지면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지 못하니까.
마른 나뭇가지와 덤불이 우거진 사막의 평원을 지나다 보니 붉은 흙빛 사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간의 크고 작은 유적은 모두 수천 개를 헤아린다. 소위, 사원의 바다. 깡마르고 헐벗은 몸으로 메마른 땅을 거니는 파간 주민들과 육중한 돌무더기와의 관계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방정식과도 같았다. 저 불탑들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까.
“땀, 피, 눈물을 엄청나게 흘렸겠군.”
사원을 지은 고대인들과 오늘의 여행자인 내가 공유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땀. 시간이 갈수록 옷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커다란 물 한 통을 꿀꺽대며 몽땅 마셔버렸지만 오줌을 누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니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알 만했다.
두 번째는 눈물. 황량한 평야 가운데로 난 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종교적 경외심 때문이 아니라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 때문에 눈이 쓰라렸다.
땀과 눈물, 그 다음은 피. 이런 가혹한 환경에 이렇게 거대한 사원군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소위, 순교자. 천 년 뒤의 순례자인 내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피 정도였다.
그때였다. 입바른 소리를 한 탓일까. 눈물이 계속 흘러 앞을 가린데다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어 더욱 답답했다. 눈을 비비기 위해 핸들을 쥐고 있던 손을 뗀 순간 그만 중심을 잃고 자전거와 함께 나뒹굴고 말았다.
꽥,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없는 길은 넘어지기 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고요했다.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다. 땅을 짚은 손바닥은 양쪽이 모두 까져 피가 맺혔다. 더 큰 문제는 부딪힌 다리였다. 배어나온 피로 왼쪽 바지 무릎이 점차 둥글게 물들었다.
“땀과 눈물, 게다가 피까지. 이제는 정말 완벽하구나.”
절뚝거리며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목표로 삼았던 유적지에 겨우 도착, 엉금엉금 기다시피 사원으로 들어가 거대한 황금빛 불상 아래 그대로 엎어졌다. 땀과 눈물, 그리고 피와 함께 몸속의 모든 것이 빠져나간 듯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 공간을 무한한 신심으로 채운다면 독실한 신도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고통과 허무로 몸을 떠는 이 순간 저렇게 자비로운 얼굴로 나를 굽어보는 절대자와 마주본다면.
이기심은 적당한 온도에서만 활동 가능한 효모나 바이러스와 같은 것으로 정상을 벗어난 극도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맥을 못 추는 것 같다. 그래서 위대한 종교는 예외 없이 사막, 혹은 그와 비슷한 불모지에서 피어난 것일까.
버마는 신자들의 불심이 무슬림적 열정에 도달한 세계 유일한 국가다. 물을 한 병 사들고 5킬로미터의 여정에 다시 올랐다. 땀과 눈물, 그리고 붉은 피에 젖어 고요한 마을에 돌아왔을 때, 해가 져서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땀과 피가 말라붙어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밑으로 청바지를 입은 채 걸어 들어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글·사진 박정석 소설가·<내 지도의 열두 방향> 저자
* ‘박정석의 오리엔탈 스타일’을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여주신 박정석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소설가 서진의 뉴욕 서점 탐험이 연재됩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