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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웬만한 상황에서는 서비스 업종에 대한 ‘직업적 이해’가 생긴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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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나지언의 싱글라이프
비싼 레스토랑에 갔다. 직원이 두 가지 소스를 가져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건 겨자소스시고요, 이건 매콤한 토마토소스십니다.” 나도 모르게 “분부 받잡겠습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릴 뻔했다. 언제부터 겨자소스가 작위 수준의 존경을 받았으며 언제부터 매콤한 토마토소스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높은 존대를 받게 됐을까? 아뢰옵기 황공하나 옷 파는 매장에 가면 높은 분들이 더 ‘많으시다’. “이건 손님이 입으신 셔츠와 색깔만 다른 셔츠십니다. 이건 제일 반응이 좋은 셔츠시고요.” 처음 들었을 땐 손님에게 극존칭을 쓰려다 보니 실수로 겨자소스와 블루셔츠에 존대를 쓴 상황이려니 했다. 그런데 지금 서울의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이 ‘십니다’ 말투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상한 건 이 말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찜찜해진다는 것이다. ‘나보다 겨자소스가 더 존경받을 만하다는 얘긴가?’ 어쨌든 그들도 먹고살려다 보니 저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일 거다. 밥 벌어 먹고 산 지 6, 7년쯤 되니까 이제 웬만한 상황에서는 ‘직업적 이해’가 생긴다. 10년째 연기가 늘지 않는 배우들에겐 “우리도 먹고살 거 없어서 이 짓 계속하잖아, 그들도 마찬가지야”라는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의도하지 않게 계속 헤드 뱅잉을 하게 되는 버스 안에서도 “빨리 퇴근하고 싶으시겠지”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이거 다른 색 없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거기에 없으면 없는 거예요”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 직원에게는 “그래, 하루 종일 사람들 상대하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싶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가 만진 모든 옷들을 신경질적으로 다시 개놓는 사람을 볼 때는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니 저렇게 되는 거겠지”라고 이해하려고 ‘10년째’ 노력 중이다. 이쯤에서 내가 만난 ‘고수 중의 고수’ 얘기를 해야겠다. 그녀는 노련했다. 너무 친절한 서비스는 짜증과 구토, 발열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손님이 절대 카드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면 누가 줘도 안 입을 만큼 허접하지만 그날따라 그 원피스가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가슴 부분이 너무 타이트해 보인다는 거였다. 같이 간 선배는 그럼 66 사이즈가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아침에 남자친구와 싸웠는지 얼굴에 검은 빗금이 가 있는 무서운 얼굴의 직원은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55 하나밖에 없다”고 차갑게 답했다. 여전히 망설이는 날 보고 그녀가 로저 페더러도 울고 갈 강속 스매싱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거 손님에게 안 맞아요. 작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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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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