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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장난감회사 ‘슈커’에서 만든 초기 미키마우스 봉제인형들(왼쪽). 1930년대에 나온 상표불명의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인형(가운데, 오른쪽). 눈 모양이 검은 콩에서 ‘파이 아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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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끊임없이 세류에 적응하며 진화를 거듭해 온 캐릭터들의 운명과 속성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생산되는 칭다오 맥주라는 게 있다. 세계 몇 대 맥주니, 무슨 무슨 타이틀의 맥주를 뽑을 때 반드시 상위에 오르는 기가 막힌 맥주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 맥주,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밍밍한 것도 아니고, 원조 평양냉면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맹탕 국물에 맥 빠진 국수 말아주더라는 식의 느낌이랄까?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간, 순수한 맛의 조상 같은 느낌이 칭다오맥주에 있다. 왜 그럴까? 이 맥주가 탄생한 1900년대 초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건 이름만 같은 이물질이야!”
당시 칭다오 일대는 독일의 조차지역, 다시 말해 독일 땅이었다. 1897년 칭다오에 파견되었던 독일 선교사가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독일은 이를 빌미로 무력을 행사해 그 일대를 99년간 강제 조차했던 것이다. 그 조차 기간에 탄생한 것이 칭다오 맥주다. 독일인들이 그 지역의 지하수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독일 현지의 맥주 기술자와 장비를 들여다 맥주를 만들게 한 것이다. 그 이후 중국의 근현대 폐쇄정책이 끝나고 다시 외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칭다오 지방으로 돌아온 독일인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이것은 바로 그 전설의 맥주!” 지난 100년간 독일인들이 맥주 맛을 개량하고 양조법을 수정하는 동안 중국인들은 묵묵히 100년 전 독일인들이 전수해준 그 방법, 그 양조술 그대로 맥주를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부터 캐릭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80년 전의 미키마우스를 보면, 뭐 나름대로 귀엽다면 귀여울 수도 있겠지만 1920년대 특유의 거친 작화지와 탁한 잉크로 표현해 낸 그 모습은 시커먼 몸에 콩 2개를 붙여 놓은 듯한 고전적인 얼굴과 현실적인 꼬리를 하고 있다. 국민과자에 침투했던, 바로 그 친구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8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귀여움’투성이의 미키마우스 인형을 끼고 사는 누군가가 80년 동안 세상과 단절되었던 어느 곳으로 가 예전의 모양새 그대로의 미키마우스를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또 그 예전 그대로의 그들은 이제는 뚱뚱이가 되어 버린, 얼굴의 절반만한 눈을 가진 이 2000년대의 미키마우스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1970년대 경영난으로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대중형 저가 모델을 내놓은 ‘미제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을 타 본 원조 할리 라이더가 “이건 이름만 같은 이물질이야!”라고 외쳤다. 좋든 싫든 모든 상품은 인간의 기호에 따라 변하게 된다. 미키마우스며 빨강머리 앤이며 스머프와 레고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무슨 이유일까? 장인 정신이나 묵묵한 전통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은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세상에 아부하고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둔갑해 간신히 그 이름만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문화의 속성이며 모든 캐릭터들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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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950년대 아톰과 1970년대 아톰, 그리고 2000년대 아톰. 손가락 갯수가 네 개에서 다섯 개, 다시 네 개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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