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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된 소설가를 찾아 ‘반스앤노블’과 ‘스트랜드 북스토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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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서진의 뉴욕 서점 순례 1
행방불명된 소설가를 찾아 ‘반스앤노블’과 ‘스트랜드 북스토어’로
소설 <웰컴투더언더그라운드>로 지난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서진씨가 뉴욕의 서점을 두루 다닌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소설처럼 읽히지만 서점에 관한 정보는 모두 사실인 점을 유념하세요.
내 이름은 이선제, 젊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여행기·소설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7년째 편집자로 일한다. 선배들이 혼기를 놓쳐 버리는 이유를 절실하게 알면서도, 남자친구를 만드는 것보다는 책을 만드는 것에 빠져 산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 하는 책이 있고, 꼭 만들어 보고 싶은 책이 있다. 서진씨의 새 장편소설은 그 후자다. 그는 ‘책’에 관한 소설을 예전부터 죽 쓰고 있다고 했다. 꼭 만들어보고 싶은 책이 반드시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상하게 서진씨의 책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약속된 원고 마감을 보름 남겨두고 서진씨는 뉴욕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거의 완성된 소설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뉴욕에서 꼭 찾아야 할 중요한 책이 있는데, 그 책만 찾는다면 모든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는 것이다. 그가 뉴욕으로 떠난 이후 넉 달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동안 메일도 확인하지 않고, 블로그 업데이트도 없다. 작가가 어디엔가 틀어박혀 글을 쓰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책을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나는 출판사가 한가한 틈을 타서 일주일 휴가를 냈다. 입사한 후 처음 가는 긴 휴가다. 일주 휴가 동안 뭘 할 건지는 이미 정했다. 서진씨를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 것이다. 무모한 일이라는 건 알지만 직접 나서지 않으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가 뉴욕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어디를 돌아다니는지는 알고 있다. 바로, 뉴욕의 서점이다. 서점을 뒤지는 것이라면 나도 웬만큼 자신이 있다.
800개의 지점을 거느린 대형 체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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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앤 노블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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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도착해서 시차를 극복하기도 전에 숙소를 나섰다. 열네 시간의 비행시간과 열세 시간의 시차 때문에 정신이 몽롱했지만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반스앤노블은 뉴욕에만도 열 군데가 넘는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다. 그중에서도 유니언 스퀘어 것이 가장 큰 지점이다. 유니언 스퀘어 공원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과일과 야채, 유기농 빵과 쿠키를 파는 일종의 임시장터가 열리고 있다. 장터에서 쿠키와 오렌지 주스를 사서 아침으로 해결하고 공원 북쪽 끝에 있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에도 교보서점·영풍문고 등의 대형서점 체인이 있지만 미국 내에 지점 800곳을 거느린 반스앤노블과는 비교할 수 없다. 뉴욕대학(NYU)의 학생이던 레너드 리지오(Leonard Riggio)가 재학 시절 학교 서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5번가의 작은 서점 반스앤노블을 1971년 인수하면서 반스앤노블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보유하면서 하드커버를 40% 싸게 파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구사했다. 처음에는 주로 대학교재를 전문으로 했지만 점점 그 영역을 일반 서적으로 확장하고 1987년 달튼(B. Dalton) 북체인을 인수하면서 현재와 같은 대형 체인 서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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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곳이 넘는 프랜차이즈를 가진 반스 앤 노블. 그 중에서 가장 큰 유니언 스퀘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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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유니언 스퀘어의 반스앤노블은 서점을 내려고 지은 건물이 아니라 예전에 있던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 다른 건물과 비교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단지 시원하게 뚫려 있는 높은 천장이 맘에 든다. 전체가 4층으로 된 이 서점은 서점이라기보다는 도서관이라는 느낌이다. 200석이 넘는 3층 카페에는 사람들이 꽉 찼다. 그들은 맘대로 책을 가져와 읽고 있다. 심지어 카펫으로 된 서점 바닥에 드러누워 책을 읽기도 한다. 4층에는 200석 정도 규모의 이벤트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서진씨의 꿈은 이곳에서 낭독회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진씨는 분명 좋아하는 작가의 행사가 있다면 반드시 올 것 같다.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행사 차림표를 집어 들었다. 매일 작가들의 낭독회가 있는데 홈스(A.M. Homes)가 사흘 뒤에 낭독회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네는 서진씨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다. 사흘 뒤에 다시 와봐야겠다.
Barnes & Noble Booksellers Union Square / Union Square 33 East 17th Street / www.b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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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 스트랜드 북스토어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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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생긴 최대의 중고서점
스트랜드 북스토어(Strand Bookstore)
유니언 스퀘어 남쪽으로 브로드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뉴욕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인 스트랜드 북스토어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중고서점은 거의 사라졌지만 스트랜드는 뉴욕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으로 1927년에 생겼다. 스트랜드가 생겨날 당시 유니언 스퀘어와 아스토플레이스 사이(여섯 블록)의 5번가에는 서점이 48곳이나 있었다. 스트랜드는 그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살아남은 서점이다. 다운타운의 분점까지 낼 정도니까 책을 죽 늘어놓으면 ‘18마일의 책’이 된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허황된 말은 아니다. 서진씨는 유니언 스퀘어 반스앤노블에서 책을 구경한 다음 스트랜드에서 할인된 가격의 책을 산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들른다고 했으니 어쩌면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서진씨가 찾는 책은 분명 이런 중고서점 구석에 먼지가 뿌옇게 쌓인 채로 처박혀 있을 것이다.
서점 입구에는 1달러 특별 세일하는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를 통과하자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헤이!”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니 중앙 카운터에 서 있던 흑인이 내 가방을 가리키며 짐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짐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이곳이 뉴욕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인가 싶을 정도로 좁게 느껴진다.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은 책장이 빼곡 들어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스앤노블이 백화점이라면 이곳은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라 책을 여유 있게 고르기가 어렵다. 카페는커녕 앉을 공간도, 의자도 없다. 중앙 매대에서는 신간을 25% 싸게 팔고 있고, 헌책 코너에서도 출판사의 재고가 반값에 팔린다. 지하에는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리뷰용 하드커버를, 2층에는 예술과 어린이 책을 팔고 있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몸을 부딪혀 가며 걸신 들린 듯 책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쭈뼛쭈뼛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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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앤 노블의 3층 카페. 200석이 넘는 이곳에 사람들은 책을 가져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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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이곳에 자주 찾아오는 저보다 키가 약간 큰 동양 남자를 혹시 보지 못했나요?”
세치가 가득 난 그녀는 한숨을 푸욱 쉰다.
“이것 봐요. 이곳에 오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어야 말이죠.”
“그러니까 … 어떤 동양 남자가, 자주 찾아와 어떤 책을 찾는다고 귀찮게 묻지 않던가요?”
뚱뚱한 여자는 나를 힐끔거리더니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
“음 …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 같아요. 검은테 안경을 쓴 남자 맞죠? 지난달까지 거의 매일 이곳에 와서 여기 미스터리 섹션을 뒤지곤 했어요.”
그네가 가리키는 미스터리 섹션의 코너는 마주보는 서가와 그 사이의 60㎝ 정도의 벽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딘 쿤츠나 스티븐 킹 이외에는 아는 작가가 없었으므로 쭉 훑어봐도 누가 누군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대부분이 하드커버다. 미국에서는 보통 하드커버의 책이 신간으로 먼저 나오고 일년쯤 뒤에 싼 가격의 페이퍼백이 나온다. 나는 멍하니 그 서가에 서서 책등을 손으로 스르륵 만져본다. 서진씨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서서 분명 내가 만지는 책을 만져 보았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희미하게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 책은 말이죠, 단지 제 소설의 열쇠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고민도 풀어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책입니다. 그 책을 사오지 않은 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몰라요. 제목도 지은이도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
단지 서점 두 군데를 돌아다녔는데도 피곤이 몰려온다. 하루 동안 펼쳐본 책이 100권은 훌쩍 넘으니 당연하다. 벌써 저녁 7시가 넘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내일은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서점을 돌아야 한다. 서진씨의 블로그에서 봤던 그 서점들을 방문하다 보면 분명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trand Bookstore / 828 Broadway / www.strandbooks.com
글·사진 서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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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복판은 늘 화려한 전광판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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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서점 순례 쪽지
맨해튼에 100여곳 와글와글
평범한 뉴욕 여행안내서(투어가이드)에는 짤막하게나마 서점 몇 군데가 소개되어 있다. 반즈앤노블과 스트랜드, 그리고 몇몇 중고서점이 대부분인데, 제대로 서점을 찾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옐프닷컴(yelp.com)은 각 도시의 가게에 관해, 카테고리별로 사용자들의 리뷰를 모아놓은 사이트다. 이 사이트의 뉴욕 서점 섹션에는 맨해튼에만 100여 서점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대형 체인서점과 가판대, 대학 구내서점, 기념품 판매서점을 제외하고 약 50곳을 선택했다. 특히 이 사이트는 구글맵과 연결이 돼 위치를 찾는 데 편리했다. 짧은 시간에 좀더 효율적으로 서점을 방문하려 지역을 나누어 서점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각 지역의 지도에 방문할 서점을 표시하고 한 지역 내에 서점을 걸어서 방문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뉴욕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가로는 기껏해야 3킬로미터, 세로는 11킬로미터(110번가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길도 바둑판 배열로 숫자표기 방식이기에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대형서점 때문에 중소형 서점이 사라지는 건 뉴욕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아직도 뉴욕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여느 다른 도시보다 많은 편이다. 그 좁은 지역에 서점이 100여곳이나 몰려 있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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