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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오토쇼에 전시된 베엠베의 클래식 오토바이와 세단.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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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최범석의 시선 28
이번 뉴욕에서 건진 또 하나의 행사는 오토쇼였다. 여행에서 우연히 이런 큰 행사를 만나면 지금 아니면 다시 못 볼 것 같아서 귀찮아도 꼭 보러 간다. 이번에도 카메라를 들고 쇼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입구에서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입구에 놓인 전시물들은 유치해 보였고, 관객들도 부모와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들이거나 처음으로 자기 차를 가지게 된 10대로 보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전문성이 없는 그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닐까 약간의 걱정을 하며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좀 놓였다. 전시된 차들보다 탁 트인 공간의 크기가 맘에 들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높은 천장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신차들을 압도한 베엠베와 벤츠 올드카 들어가서 처음 보이는 동선에 미국 자동차들이 전시돼 있었다. 사실 난 미국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 차들은 처음 보면 눈에 확 들어오는데 두 번 보면 역시 미국 차라는 생각이 들고, 세 번 보면 바로 디자인의 결점이 눈에 띈다. 선을 강하게 활용하고 육중하게 만들어 눈길을 사로잡지만 디테일은 둔탁하다. 디자인은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이 다시 보면서 결점을 보완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 비싼 명품일수록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결점을 많이 보완한다. 패션 역시 생산하기 전에 몇 번이나 더 샘플을 만들어 보느냐에 따라 제품이 시장에 나와서 펼치는 활약은 다르다. 예를 들어 패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수정을 해서 생산하는 사람도 있고, 수정된 것을 다시 샘플로 만들어 보는 사람도 있고, 그 샘플을 확인하고 거기다 더 나은 디자인을 보태는 사람도 있다. 구매자들이 보기에는 미세한 차이라고 해도 패턴과 디테일, 원단까지 무엇 하나, 이 정도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만들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디자인만큼이나 중요해지는 것이 마케팅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 차들은 성능이나 디자인보다 마케팅이 강해 보인다.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산회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보닛을 높이 올리고 그릴을 크롬으로 만들어 더 강해 보이고 고급스레 보이려고 노력한 것들이 비슷비슷해 오히려 지루하기만 했다. 그런데 나의 눈을 가장 크게 사로잡았던 것은 화려하고 새 기술을 추구하는 쇼의 전체적 방향과 반대되는 베엠베(BMW) 전시장이었다. 베엠베는 신차들 사이에 1900년대 중반에 나왔던 오래된 차를 전시해 놨다. 그 차들이 오히려 이 회사의 기술을 더 강하고 믿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이 오래되고 튼튼하며 근사한 차들을 만들었던 역사가 미래의 멋진 디자인과 좋은 성능의 차를 선보인다는 무언의 마케팅처럼 보였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올드카를 한쪽 구석에 전시했는데,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으지는 않았지만 나는 신차보다 그 올드카들에 넋을 잃고 빠졌다. 오랜 세월 디자인의 콘셉트와 회사의 방향을 저버리지 않고 계속 가고 있는 회사라는 자신감이 느껴져 더 믿음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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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석의 시선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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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몇 위라는 자랑보다 더 근사한 것 많은 올드카나 악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더해지는 것처럼 한국 제품 사이에서도 더 새로운 것, 더 첨단인 것에만 몰두하기보다는 후손들에게 동경받을 만한, 오랫동안 소장할 만한 브랜드가 탄생한다면 세계 몇 위라는 자랑보다 더 근사할 것 같다. 나 역시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 못지않게 오랫동안 소장하고 싶어 하는 옷,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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