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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7 18:22 수정 : 2008.05.07 18:22

입만 열면 ‘교훈 3점 슛’. 사진 연합뉴스.

[매거진 Esc] 김중혁의 액션시대

프로농구 2007∼2008 시즌이 원주 동부 프로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명승부도 많았고 재미있는 경쟁도 많았다. 챔피언 전에서 맞붙은 원주 동부와 서울 삼성의 감독 싸움도 대단했다. 전략도 전략이지만 말싸움이 재미있었다. 올 시즌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서울 삼성의 안준호 감독은 입만 열었다 하면 뉴스를 만들어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작전을 펼칠 것이다’, ‘호랑이 가죽을 가져오느냐, 호랑이 밥이 되느냐 둘 중 하나다’ 와 같은 명언을 남겼고, ‘성동격서’, ‘유구무언’ 같은 사자성어로 챔피언 전의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인터넷에서는 - 지나치게 희화화한 게 좀 마음에 걸리지만 - ‘안준호 어록’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서울 삼성의 농구 스타일과 안준호 감독의 팬 서비스는 두고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는 값진 기념품이다.

원주 동부의 전창진 감독은 안준호 감독의 완전한 반대편에 있던 감독이었다. 현 감독 중에서 가장 다혈질이었으며 심판 판정이 잘못되었다 싶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뀌었다. 몰라보게 차분해졌으며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전창진 감독은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스타일은 아니다.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가슴을 때릴 때가 많다.

그의 진가는 인터뷰에서보다 작전타임 때 드러난다. 그가 챔피언 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들, 계속 이렇게 하면 삼성한테 진다.” 응원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새롭게 들린다. 한때 이상민의 그늘에 묻혀 지내다 원주 동부로 팀을 옮긴 뒤 전성기를 맞은 표명일에게는 이런 말을 했다고도 한다. “명일아, (이상민을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그냥) 삼성을 이기면 돼.” 아, 정말, 당연한 말씀이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하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그것이야말로 모르는 말씀.

김중혁의 액션시대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가끔 깜빡 잊어버리는 사실들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감독의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내가 들었던 전창진 감독의 명언 중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너희들, 3쿼터에서 자신 있게 던지지 않으면 4쿼터에선 아예 못 던진다.”

해석하자면 이런 말이다. 지금 자신 있게 경기를 펼치지 못하면 4쿼터에선 긴장감 때문에 몸이 굳을 수밖에 없다. 3쿼터에서부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한다. 천천히 몸을 달궈두어야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스포츠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된다. 전창진 감독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승도 축하드린다.

김중혁 객원기자 vonnegu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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