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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 장난감. 사진 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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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혁의 장난감공화국
장난감의 역사를 물어 오는 분들이 있다. “세계 최초의 장난감은 무엇인가?” 그럴 때마다 마치 벽을 맞대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분들에게 다시 물어본다. “세계 최초의 옷이 무엇일까요? 세계 최초의 먹거리가 무엇일까요?” 뭐, 악의를 가지고 그런 질문을 했을 리야 없겠지만 그러한 질문과 생각의 바닥에는 ‘장난감=공산품’이란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곧 인류의 역사이다. 어느 누구도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적이 있던가? 그들 어린이들은 모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그것으로 그들 최초의 인성을 가꾸어 왔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진실이다. 단지 그것을 만든 소재가 시대에 따라 바뀔 뿐이다. 그 옛날에도 어떤 형태로든지 장난감은 존재했을 텐데, 사람들은 장난감이 최근에 만들어진 플라스틱이나 양철 조각으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700년께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가 있다. 한 독일계 미국인이 그의 조상 대대로 가지고 있던 물건을 어찌어찌 손에 넣게 되었다. 나무로 만든, 낡디낡은 방주와 180여마리의 동물들. 이리저리 손을 본 흔적도 많고 동물도 짝을 잃었거나 칠이 벗겨진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종교가 곧 삶이나 마찬가지였던 중세의 유럽, 티브이나 영화는 당연히 없었고 어린이를 위한 책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 교회의 성경 공부는 새로운 개념의 시청각 교육장이었을 게다. 그 속에서 듣게 되는 노아의 방주는 그 어떤 스펙터클 드라마보다 더 웅장하고 재미있었으리라. 묵묵히 방주를 만드는 노아와 가족들, 세상을 삼키는 홍수, 세상의 온갖 동물들이 몰려오고. 그 재미난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 그런 아이들 앞에 들이밀어진 노아의 방주 장난감, 그 엄청난 환호와 탄성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장난감이 아니라 교회 교육용 교구라도 좋다. 아이들 눈에 비친 그 작은 나무 동물과 배는 상상력을 타고 더욱더 커다란 모습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장난감은 개울가의 조약돌이며, 나뭇잎이며, 솔솔 부는 산바람이라고.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고, 경제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장난감이 공산품의 탈을 쓴 것이지 장난감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장난감을 그저 공장에서 생산되어 우리에게 툭 던져지는 ‘요즘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 언제나 놓여 있었던 문화이자 역사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김혁 장난감수집가·테마파크기획자 blog.naver.com/khegel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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