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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7 22:51 수정 : 2008.05.07 22:51

베를린의 하케셔마르크트. 베를린을 여행하려면 자유를 챙겨가라. 사진 이화정.

[매거진Esc] 필름의 거리③- 베를린

〈비욘드 사일런스〉가 모노톤으로 스케치한 젊은 도시

베를린 여행에 앞선 당부 하나! <베를린 천사의 시>의 쓸쓸한 감성을 기대하지 말 것. 빔 벤더스 감독이 컬러로 담기에 너무 황폐해 흑백 촬영을 결정했다던 ‘잿빛’ 베를린은 어디에도 없다. 전승기념탑의 천사상 ‘황금의 엘제’는 번쩍번쩍 금빛을 자랑하고, 잠깐이나마 영화 속 ‘천사 다미엘’이 되고 싶은 관광객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계단을 오르기 바쁘니 말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로부터 14년 뒤. 한 달간 직접 ‘베를리너’가 되어 컬러로 풀어본 이 도시는 그야말로 북적댔다.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라라’의 성장 스토리, <비욘드 사일런스>는 빔 벤더스가 스케치한 모노톤의 베를린을 총천연색의 현재로 되돌려주는 최신 관광안내 책자다. 영화는 클라리넷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라라와 어릴 적 받은 상처로 딸의 진로를 반대하는 아버지, 둘 사이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라라가 고향 마을을 떠나 택한 곳이 바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젊은 도시, 힙합 도시로 통하는 베를린이다.

영화 속엔 참 많은 ‘베를린’이 등장한다. 베를린의 관문인 초역(동물원역)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 폭격의 흔적을 간직한 카이저 빌헬름 교회,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슈프레강을 지나는 유람선의 운치를 만끽할 만한 산책로 운터 덴 린덴, 그리고 알렉산더 광장의 텔레비전 탑까지. 컨버터블을 타고 환호하는 라라를 쫓기만 해도 따로 관광버스 탈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는 맛보기. 본격적인 베를린 체험은 처음 초역에 도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라라의 어리둥절함이 가신 뒤, 카메라의 빠른 움직임이 멈추고 나서부터다.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고 싶은 꿈 하나로 빈손으로 베를린행을 택한 라라. 그의 대담한 선택에 베를린의 현재가 그대로 포착된다. 영화의 주 무대는 아티스트들의 온상인 쿠담 지역. 클럽에서의 서툰 즉석연주를 시작으로 라라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한다. 고향 마을이 지금껏 자신을 구속했던 족쇄였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베를린은 가능성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지금 베를린에는 무수한 ‘라라’가 존재한다. 젊은 아티스트들은 크리에이티브한 열정 하나만으로 앞다퉈 ‘베를린 대이동’을 감행한다. ‘해변의 모래보다도 많은 숙소’, ‘수도의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싼 유일한 예’로 알려질 만큼 싼 집값이 가장 큰 메리트. 통일 뒤 버려진 집들은 아티스트들의 주거지이자 전시 공간, 클럽, 혹은 트렌디한 숍으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베를린을 매혹적이게 하는 궁극의 요소, 바로 상업화된 소호나 마레가 줄 수 없는 특유의 정취가 양념처럼 첨가된다. 베를린에서 <본 슈프리머시>를 찍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은 “동시대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신선한 도시”다. 누구나 ‘속성’으로 시민이 된다는 까다롭지 않은 도시. 이곳을 여행하면 빼먹지 말고 잊었던 자유를 챙겨 와라. 혹시 빈티지 숍에서 맷 데이먼을 만나도 부산 떨 일 없다. 그 역시 당신처럼 베를린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화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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