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
[한겨레 창간 20돌] Esc / 20살 한겨레군의 세계여행
김중혁의 소설여행 퀴즈
( )가 아닌 블랙홀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저 멀리 시대에 뒤처진 은하계 서쪽 소용돌이의 끝,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변두리 지역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노란색 행성 하나 있다. 이 행성에서 대략 구천팔백만 마일 떨어진 곳에 시시하기 그지 없는 작은 청록색 행성이 공전하고 있는데, 이 행성에 사는 원숭이 후손인 생명체들은 어찌나 원시적인지 아직도 전자 시계가 꽤나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더듬더듬…이상하고 특별한 블랙홀 매대
이 행성에서는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확인하고 순위를 매기는 풍습이 있는데, 무려 38년 동안 1위를 놓치지 않은 전설 속의 책이 있다. 그 책의 제목은 <블랙홀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블랙홀을 여행하는’) 인데,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은 암흑 속에 감춰져 있다.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1위 자리에 가장 근접했던 책으로는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은 개구리라지만 은하대백과 비행선>과 <애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에스라인>이 있다. <블랙홀을 여행하는> 이 이렇게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은 홍보 전략의 탓도 컸다.
38년 동안 홍보담당자가 열두 번 바뀌었지만 홍보 전략은 단 한순간도 바뀌지 않았다. 모든 서점에는 <블랙홀을 여행하는>의 특별 매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모양이 특이했다.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의 검은색 박스 속에다 책을 진열해 두었고 책을 사려는 사람들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책을 골라야만 했다. 블랙홀을 여행하는 기분을 제대로 내주기 위한 것이었다. 어떤 독자는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여자의 엉덩이를 만져 치한으로 오해받기도 했으며, 어떤 독자는 나오는 문을 찾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떤 독자는 책을 훔치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블랙홀 속에서도 폐쇄회로 카메라가 작동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블랙홀을 여행하는>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 책은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유머가 풍부해 한번 손에 쥐면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3만2100페이지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을 한꺼번에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날마다 책의 내용을 낭독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생겨났으며, ‘동쪽 방에 앉아 블랙홀을 읽는 폐인들의 모임’(일명 동방블폐)과 같은 동호회만도 수백개가 생겨났다. 사전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각 항목들이 또다른 여러 개의 항목을 설명하는 식의 다단계 형식인데, 이런 형식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켜 물건을 사고 팔 때도 다단계 형태의 판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파격적인 장은, 질문은 있으나 답이 없는 문제집의 형태로 이뤄진 2341장인데 그 문제를 전문적으로 푸는 퀴파라치들이 생겨나기도 했다.-퀴즈를 풀면 출판사로부터 엄청난 상품을 받을 수 있다-아직까지 아무도 풀지 못한 대표적인 문제로는 ‘사람들은 어째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 대부분 동안 전자시계를 차고 지내는가’ ‘사람은 왜 태어나는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을 때 귀신과 만나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귀신이 숨지 못했기 때문일까’ ‘빛은 진공 속에서 1초 동안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진행할까’ 등이 있다.
어둠 속에서 울지 않고 200시간 견딜 수 있어?
이 책의 서문에는 ‘블랙홀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가 기록돼 있는데, 여행자에게는 아주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블랙홀을 여행하기 위해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준비할 물건은 무엇인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가장 편하게 블랙홀을 여행할 수 있는지와 같은 정보들이 담겨 있다.
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선, 어둠 속에서 혼자 지내는 법을 익혀라. 어둠 속에서 울지 않고 200시간을 견딜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준비된 히치하이커! 그리고 엄지손가락 운동을 실시하라. 엄지손가락을 세웠는지 집게손가락을 세웠는지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세우기도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우주인과 친해진 다음 언제든 우주선을 빌려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두는 게 좋다. 어둠 속에서는 돌아오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밑줄이 쳐진 부분은 <000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책세상 펴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55. 위 글은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공상과학 소설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1978년 6회짜리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텔레비전 드라마, 음반, 컴퓨터 게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 )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빈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 |
김중혁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