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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54번 문제)~() 국경의 한 냇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무장투쟁 반군들. 그들은 애송이 전선기자의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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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0돌] Esc / 20살 한겨레군의 세계여행
정문태의 전선 여행 퀴즈
100여개 나라를 늘 살벌한 출장으로만 다녔던 전선기자의 세계일주 계획
많은 이들이 오해한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수많은 전쟁터를 다녔으니 여행도 많이 했겠지?”
천만에. 다닌 걸로만 따지면 한 100여 나라쯤은 되겠지만, 그게 ‘여행’이 아니고 ‘출장’이었다고 상상해 보시라. 어떤 해는 국제선만 100번 넘게 갈아타며 140일을 비행장과 비행기 안에서 보낸 적도 있는, 그 지긋지긋한 출장. 게다가 국제정치판이나 전선으로 출장 갈 때 들고 다니는 그 긴장감은 여행 기분을 내며 낭만이나 부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몸에 흐르는 G형 피
오죽했으면, 아테네를 6번씩이나 갔지만 파르테논 신전 한번 둘러보지 못했을까! 요르단을 수없이 거쳐 다녔지만 페트라에 한번 올라가 보지 못했을까! 물론 전혀 틈도 없이 지독하게 일만 하고 다녔다는 뜻은 아니다. 퍼질러앉아 커피나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내 게으름 탓이었다. 남들은 요즘 부쩍 이렇게 묻는다. “왜 그렇게 사냐?” 스스로 이런 생각에 빠져보기도 한다. “아예 출장 없는 직업으로 바꿔버릴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다니는 건 내 팔자다. 내 몸에 흐르는 G형(Gypsy) 피 탓이다. 내 피의 원천은 나도 잘 모른다. 고조의 고조쯤 되는 할머니가 묻혀 왔는지, 아니면 스스로 길들인 결과였는지. 분명한 건 둘 있다. 하나는 (53번 문제)씨가 쓴 <끝없는 여로>란 책으로부터 G형 피를 수혈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어른은 1950년대 말에 무전여행으로 세계를 돌고 그 책을 썼다. 히피도 배낭족도 등장하지 않았던 그 시절 온 세상을 돌았으니, 가히 전설이라 할 만하다. 그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년간 닳도록 끼고 살았다. 그 결과, 세상을 줄줄 꿰는 지리 천재소년이 되었다. 세계 일주 계획서까지 만들며 발광했다. 떠나겠다며 주변을 보챘다. 또 하나는, 어릴 때부터 산 사나이들-나중에 그이들 가운데 1977년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참가했던 이들도 있었고-이 아지트처럼 드나들던 집에서 자라 자연스레 G형 피와 접촉했다는 사실이다. 그 틈에서 산악 장비를 봤고, 등산화를 봤고, 나침반을 봤다. 그것들을 하나 둘씩 훔쳐서 내 배낭에 넣기 시작했다. 떠날 준비를 했다. 아직 너무 어리다고 모두가 말렸다. 중학교 때다. 그 다음부터는 좀 흐리멍텅하다.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다. 여행 떠나고 싶은 병에 걸려 고등학교를 때려치웠다. 그때만 해도 영문을 몰랐다. 내 피가 O형이라고만 믿었으니. 근데, 정작 떠나지는 못했다. 여권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그로부터 여행을 한참 잊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에서야 외신기자로 살길을 찾아나섰다. 그러면서 여행의 꿈도 다시 살아났다. 직업 탓에 남들이 가기 힘든 세상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도 나는 늘 여행을 갈망했다. 고백건대, 좀 촌스럽긴 하지만, 어릴 때 꿈인 세계일주 계획을 나는 아직도 접지 않았다. 하여,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직업을 지닌 채, 떠날 수 있는 좋은 자리인 방콕에서 살고 있다. 카슈미르를 넘어, 레바논을 넘어 머잖아 훌훌 털고 진짜 여행을 떠나는 날, 나는 수첩도 카메라도 모두 버리고 빨아 입을 속옷 한 벌과 칫솔 하나만 달랑 들고 (54번 문제)에서부터 출발할 생각이다. 1988년 8월8일 민주화를 외쳤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무장투쟁에 청춘을 바친 강, 애송이 전선 기자였던 내게 학교였고 선생이었던 그 살윈강 전선에서부터 나는 되돌아오지 않을 먼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인디아-카슈미르-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이라크-시리아-팔레스타인-레바논-터키-그리스-알바니아-코소보로 가야겠다. 내게 세상 읽는 법을 가르쳐 준 그 모든 전선들로 다시 돌아가서 신세 진 이들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여야지! 해서, 나는 그 모든 전선들에 평화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출장 대신 여행으로 찾아갈 그날을 꿈꾸며.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53. <끝없는 여로>를 쓴 그는 30여년에 걸쳐 3회의 세계일주와 20여회의 테마여행을 통해 한국 외국 여행의 선구자로 일컬어집니다. 〈세계일주 무전여행기〉 〈목숨을 건 세계여행〉 〈세계의 나그네〉 등의 저서도 남겼습니다. 누구일까요? 1. 김찬삼 2. 한비야 3. 고상돈 4. 이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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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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