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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4 21:37 수정 : 2008.05.14 21:37

박소 한 그릇에 관한 비밀

[한겨레 창간 20돌] Esc / 20살 한겨레군의 세계여행
박정석의 아시아 여행 퀴즈

여기서부터는 조금 빛깔이 다른 퀴즈가 나갑니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8~15면은 에세이 퀴즈가 주종을 이루게 됩니다. 여행에 관한 독특한 스타일과 이력을 가진 필자들이 자기만의 향기가 폴폴 나는 에세이를 선물하지요. 그 내용 중에서 퀴즈를 맞히는 형식입니다. 아시아 20대 젊은이들의 활기찬 수다도 마련되었고요. 재미있게 읽으며 풀어봅시다.

끝내 진짜 가격을 밝히지 않은 인도네시아 할아버지가 문제를 드림

어느 이국을 내 집으로 삼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해당 언어에 대한 이해, 음식에 대한 적응, 그리고 또 한 가지.

젊어서 어떤 것-사람이든 사상이든, 혹은 여행지든-에 매혹된다는 것은 결정적인 일이다. 우연히 여행한 인도네시아는 경관 다채롭고, 물가 싸고, 바다 아름답고, 여러 모로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짙푸른 수마트라, 문화적인 자바, 메마르고 고독한 누사틍가라, 감명받아 책도 한 권 쓰게 된 발리. 그 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 나는 마침내 이민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미 박소, 그리운 고향의 라면 맛이여

문법책을 한 권 사서 틈틈이 공부, 이윽고 인도네시아어-세상에서 배우기 제일 쉬운 언어 중 하나다-로 웬만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은 음식. 음식은 언어학습보다 더 쉽고 간단했다. 나시고렝(볶음밥)과 사테(꼬치구이)는 물론 매운 고추와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파당 푸드, 발리의 명물인 기름진 바비굴링(돼지통구이)까지, 뭐든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입에 짝짝 붙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담 없는 것은 길에서 많이 파는 박소(bakso). 흔히 국수가 조금 들어 있어 “미 박소”라 하는, 잿빛 완자 몇 개가 들어간 짭짤한 수프다. 맛은 물론 싼값까지, 그리운 고향의 라면보다 못할 것이 그다지 없는.


나시고렝과 미고렝으로 찬을 차렸다.
로비나(발리 북부 해변)에서 보낸 어느 날, 노란 태양과 시원한 바람, 부서지는 하얀 파도의 풍경이 완벽하게 느껴지던 평화로운 오후, 문득 이 땅을 고향으로 삼기 위한 마지막 조건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해변 옆 키 큰 야자수 푸른 그늘 아래에서 영업하는 단골 박소 장수 마데 영감을 찾아갔다. “한 그릇에 얼마예요?”

“5천루피.” 뻔히 알면서 왜 새삼 묻느냐는 얼굴에 나는 수줍고도 은근한 웃음을 날린다.

“아니, 그건 나 같은 외국인에게 부르는 금액일 테고, 여기 현지인에게는 얼마 받아요?”

“똑같아. 5천루피.”

왜 이러시나? 나는 이곳을 오래 여행했고 베테랑 특유의 노련미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던 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터줏대감의 작은 고백 한 마디. 나와 그가 더 이상 남이 아니라는, 우리끼리 주고받는 다정하고 은근한 눈빛 딱 한 번만.

“솔직히 말해 달라니까요. 얼마예요? 3천루피?”

“아니야. 현지인에게도 똑같이 5천루피라니까.”


발리의 로비나 해변. 노란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맞다가 단골 박소 장수 마데 영감을 찾아갔다.
솔직히 말하면 만 루피 드릴 텐데…

영감은 생각보다 고집이 셌다. 증인을 대겠다며 마침 지나가던 동네 청년 한 명을 불러 세운다. 멀뚱하니 서 있던 청년, 영감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돌아오는 대답은, “5천루피.”

“아니, 방금 그건 무효예요!” 나는 득달같이 이의를 제기한다. 두 남자 사이에 번개처럼 오가는 은밀한 눈짓을 봤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영감님, 지금 바가지 씌운다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진실이 궁금해서 그럽니다. 나는 이곳 현지 사정을 잘 안단 말입니다. 여긴 뭐든 관광객용 물가와 현지인 물가가 따로 있잖아요. 왜 그러는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뭐라고 안 할 테니 제발 솔직히 말해 주세요. 이게 현지인에게도 5천루피라니 말이 안 돼요. 대체 얼마예요? 3천? 3천5백루피?”

“5천루피라니까!”

“사실대로 말하면 1만루피 드릴게요!”

마데 영감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그날부로 나는 이민 계획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집에서 속고 살 순 없잖아요.

이국을 얼마나 여행하든, 그 땅을 얼마나 사랑하든, 이방인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마지막 진실 한 조각.

그걸 잊고 살기에 어떤 여행자는 속이 너무 좁다.

37. 가격의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은 인도네시아 할아버지가 문제를 드립니다. 다음중 인도네시아 현지 음식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나시고렝
② 가도가도
③ 팟타이
④ 베벡 베투투


박정석의 〈내 지도의 열두방향〉
박정석

고교 졸업 이후 찾은 휴양지에서 열대 해변에 매혹된 뒤 여행에 빠져 사는 소설가입니다. 〈33번째 남자〉로 2004년 문학사상사 장편소설상을 받았고, 〈용을 찾아서〉 〈내 지도의 열두 방향〉 등 여행에 관한 글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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