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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우정의 척도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의 인내력과 비례한다. 사진은 영화 〈돈 많은 친구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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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라이프
그러니까 그 순간을 영화로 찍는다면, <애니 홀>에서 다이앤 키튼이 우디 앨런과 자다가 ‘유체 이탈’을 한 후에 무심하게 자신의 몸뚱어리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될 것이다. 친구 한 명은 얼간이 같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만 하고, 다른 한 명은 회사의, 날 때부터 잔인한 사이코패스 팀장 욕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놈은 멍청이였어”나 “그래도 팀장에겐 이런 장점이 있잖아”라고 말하는 건 내 몫이 아니다. 그런 ‘객관적인’ 평가는 당사자만이 내릴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둘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했지만 실은 하나뿐인 관객을 위해 독백을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한 명이 “그 여자는 주말에도 전화한다니까”라고 말하면 다른 한 명은 대꾸할 생각은 않고 “근데 걔는 왜 나한테 헤어지자고 한 걸까?”라고 화제를 자기 쪽으로 바꿔 버리는 식이다. 벌써 이 얘기만 50번째다. 이야기를 다 끝마치지 못하고 당장 죽기라도 할까봐 절박하고 비장한 모습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들이 이럴 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보다야 이쪽이 더 빨랐으므로, 말했다. “나도 얘기 좀 하자.” 누구에게나 레퍼토리는 있다. 예술가들이 한 가지 문제에 천착해 그 주제만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그 주제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대신에 오토리버스로 반복 재생해 친구들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끈끈하냐 하는 정도는, 우리가 같이 먹은 케이크의 수, 그리고 서로 얘기를 들어준 시간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억울한 것은 왜 그렇게 할 얘기가 많은지 점점 늘어나는데, 같은 비율로 (남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참을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친구가 연애 문제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간다고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는다. “나한테 물어봐. 너의 연애 문제라면 내가 점쟁이보다 더 잘 알아!” 친구의 회사 문제만 듣다가 집으로 가던 날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뭘 한 거지?” 직장 옮기는 문제로 고민하는 선배 얘기를 한 달 동안 들은 적도 있다. 한 달쯤 되자 나의 결론은 명쾌해졌다. “때려치워!” 물론 여기서 그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고 힘들 때 내 얘기를 어찌나 잘 들어줬는지 묘비명에 감사 인사를 적고 싶다는 말은 굳이 안 해도 되리라 믿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친구들의 얘기는 잘 들어주고 정작 내 얘기는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관대한 평가를 내리니까 말이다. 드라마 여주인공의 연애 얘기를 다 들어주는 여자친구 같은, 절대적인 청자는 지구상에 없다. 최근 들어 싱글들과 수다를 떨 때마다 결혼한 사람이 부러워지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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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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