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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청담동 편집매장 ‘쿤’테라스에서 포즈를 취한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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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레드 카펫 문화를 이끈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내 아이콘은 베컴과 마돈나”
서울 강남구 청담동 길에서 사이좋게 걸어가는 키 크고 마른 남자와 동그란 얼굴에 제법 덩치가 있는 남자를 만난다면, 이렇게 인사를 해도 괜찮겠습니다. “혹시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 정윤기씨 아니세요?”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올 확률은 약 90% 정도? 패션계에서 단짝으로 유명한 이 둘이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김성일씨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에 이어 만난 세번째 사람이 바로 국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이자 홍보대행사 ‘인트렌드’ 대표인 정윤기씨입니다. 이 둘은 이 코너의 주인과 초대손님으로 만났지만, 여느때와 다름없이 편안하게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들의 개성있는 말투와 다양한 표정을 모두 전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면서,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세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성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게 1994년이었나?
정윤기 1995년이었어.
김 맞다. 벌써 햇수로 14년이 다 됐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당시 성도어패럴에서 패션 디자이너 겸 상품기획자로 일하고 있었지. 너는 그때 막 스타일리스트로 시작해서 남성잡지 일을 할 때였어. 내가 원래 협찬 담당이 아니었는데 담당자가 지방 출장을 가면서 전화가 온 거야. ‘정윤기라는 스타일리스트가 협찬 때문에 오니까 도와주라’고. 그때는 인사만 한 정도였고, 내가 런던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다음 1999년에 잡지에서 다시 만났지? 그게 <키키>에서였나?
일이 겹칠 땐 서로 추천해주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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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정윤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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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아니, <위드>였잖아. 그때 아트 디렉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를 모은 ‘남자 스페셜리스트 3인방’ 인터뷰에서 내가 스타일리스트로, 형이 아트 디렉터로 나왔었지. 그때 친해졌어. 친하게 지낸 시간이 벌써 10년이네. 형은 지금까지 쭉 친하게 지내면서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해. 원래 직업이 같으면 경쟁이 심하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우리는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하지만, 서로 일할 때 도와주고 밀어주기도 하잖아.
김 스케줄을 잡다가 일이 겹칠 때, 우리는 서로를 추천하는 편이지.(웃음) 뭐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형제처럼 금세 풀리고. 일하면서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잖아. 우리 밥도 같이 먹으러 다니고. 잡지를 보다가 네가 예쁘게 잘한 작품이 있으면 내가 바로 전화하잖니. 솔직하게 얘기를 하는 거지. 또 우리는 스타일이 서로 조금씩 다르잖아. 네가 낭만적이고 사랑스럽고 우아한 여성을 잘 표현한다면, 나는 섹시하고 도발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을 좋아하고. 네가 분홍색이면 나는 빨간색이지.
정 내가 흰색이라면 형은 검은색에 가까워. 그런데 그런 색깔은 처음부터 찾는 건 아닌 것 같아. 시작할 때는 여러가지 스타일링을 해보지. 그렇게 하다 보면 이렇게 꾸몄을 때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잖아. 또 머릿속에서는 괜찮은데 실제로 맞춰 봤을 때 별로인 경우도 많잖아. 그럴 때는 틀렸다는 걸 깨닫고, 다시 공부하고, 그렇게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게 되지.
김 자기 스타일이 확실한 게 중요한 것 같아. 요즘에 스타일리스트들이 너무 많아. 그중에 살아남으려면 자기 성격이 있어야 하니까. 시안이 섹시함이라면 나를 찾고, 낭만적인 거라면 너를 찾는 것처럼. 어떤 콘셉트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스타일리스트가 되어야 해. 화보뿐 아니라 시상식 레드 카펫에서도 스타일리스트의 색깔이 나오잖아.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김민희나 김희애가 입었던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바로 네가 잘 표현하는 스타일이지.
정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는 김희애부터 손예진, 김정은, 김민희, 권상우 등 내가 스타일링한 스타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아서 너무 기뻐.(웃음) 시상식을 할 때마다 각 배우에게 잘 맞는 드레스를 고르고, 가능한 한 가장 예뻐 보일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는데. 레드 카펫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만 3년이 걸렸어. 레드 카펫 문화는 격식에 맞게 제대로 차려입고 나오는 문화거든. 그런데 처음에는 시상식에 셔츠 풀어헤치고, 모자를 쓰고 나오기도 하는 스타들이 많았어. 사실 그건 예의가 아니거든. 한복을 입고 고름을 매지 않는 거나 구두를 신는 것과 비슷한 거지.
요즘은 송윤아·김정은과 즐겁게 일해
김 레드 카펫은 격식이 있는 장소인데, 우리 배우들은 자기 성격을 살린다면서 가끔 이상한 스타일링을 하기도 해. 레드 카펫은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잖아. 그 문화를 정통으로 받아들인 다음 그걸 변형하면서 한국화시키고, 그러면서 한복도 입고 우리 문화와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하면 좋았을 텐데, 우리 배우들 중에는 어디 놀러 가는 것처럼 자신의 성격이나 개성을 보여주는 장소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 그런 면에서 네가 레드 카펫 문화를 많이 이끌었지. 김혜수가 청룡영화제에서 드레스로 주목받은 것도 네가 많이 도와준 거잖아.
정 지금 내가 스타일링하는 배우가 50명이 넘어. 스타들과 작업을 하면서 그들에게 맞는 옷을 골라 주는 게 정말 즐거워. 김희애, 수애, 손예진이나 차승원, 권상우는 나를 믿어주는 편이야. 요즘에 가장 즐겁게 일하고 있는 스타는 송윤아와 김정은이야. 착한 배우고 좋은 스타지. 그런 배우들과 함께 일하면 행복해. 김희애나 황신혜는 원숙미를 통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스타들이야. 내 스타일 아이콘은 데이비드 베컴과 마돈나거든. 그들을 보면 매번 감동해. 내가 꿈꾸는 스타일이거든.
김 맞아.
정 특히 마돈나를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멋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돼. 젊음은 영원할 수 없잖아. 영원할 수 없는 젊음을 원숙미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통해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려워. 그런데 김희애나 황신혜, 또 형이 스타일링하는 이미숙은 정말 아름답고 멋지잖아. 정말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멋을 아는 사람인 것 같아. 비싼 옷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 동대문의 멋진 옷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자기 멋을 찾을 수 있고, 또 사람들이 찾았으면 좋겠어.
김 동대문 하니까 옛날 생각이 난다. 지금은 동대문이 패션의 메카지만, 예전에는 남대문이었잖아. 어릴 때 돈을 모아서 밤늦게 남대문에 페인트 타운, 빅게이트 그런 곳에 가서 옷을 사 입고 그랬는데.
정 나는 고등학교 때 돈을 모아서 장광효 선생님에게 옷을 맞추러 간 적이 있어. 장광효 선생님이 아직도 고등학교 때 나를 기억하고 계시더라구. 장광효 선생님이 당시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였거든.
김 그때 ‘소방차’나 조용필, 임하룡 등 모두 장광효 선생님 옷을 입었었어.
색다른 일, 새로운 일을 하는 희열감
정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내가 바로 ‘소방차’와 조용필, 전영록을 보면서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패션을 즐거워했어. ‘듀란듀란’과 마이클 잭슨도 그랬지.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하긴 했어. 그래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그런데 스타일리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다른 직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야. 색다른 거, 새로운 거를 좋아하는데 스타일리스트를 하면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잖아. 거기에 대한 희열감이 커. 그 희열감과 패션에 대한 사랑이 인천의 한 남자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지.
김 패션 브랜드건, 패션 피플이건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잖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으로 처음 일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켰다면, 그건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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