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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8 19:52 수정 : 2008.05.28 19:52

외국출장이 코 앞에 다가오면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여행가방 짐싸기다.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김도훈의 싱글라이프

조선땅을 떠나기 전날에 잠을 자본 기억은 없다. 흥분으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소풍 전날 밤 초딩 증후군’ 때문은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도 자고 싶다. 푹 자고 싶다.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넣고 십수시간의 비행을 견디려면 출국 전날밤의 숙면은 반드시 필요하다. 고공 수천미터에서 위장에 가스 차는 고통을 느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비행 전날 밤 푹 자둬야 위장 기능도 활발해진다. 시차 적응도 빨라진다. 그러나 결국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2주 전에 출국 전날의 숙면을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빌어먹을 ‘짐싸기’ 때문이다.

외국출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여행가방(슈트케이스)에 짐 싸넣기다. 이번처럼 거의 3주에 육박하는 칸영화제 출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로 말하자면, 보유한 최대 용량의 슈트 케이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어떤 물건들로 저 괴물을 채워야 하나 고민하는 데만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인간이다. 이게 다 (올해 칸영화제의 끔찍한 경쟁부문 영화들처럼) 예술성이 부족해서다. 여행짐을 싸는 건 정말이지 ‘아트’의 일종이다. 적합한 물건들을 적당하게 골라서 적절하게 가방에 밀어넣고 적시에 자는 데는 지력과 완력을 넘어서는 본능적인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매년 칸영화제로 향할 때마다 나의 짐싸기는 결코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부족한 수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밤새도록 고민하고도 효율적인 짐싸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간 칸영화제 출장을 되돌아보니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쓸모없는 강박으로 구겨넣은 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말이다. 첫번째 강박. 올해는 쇼핑을 줄여야 겠으니 옷도 최대한 많이 싸가야겠어.(사실은 파리의 아슈앤엠(H&M) 매장을 한번만 들러도 십수벌의 싸구려 옷들이 손에 들려 있기 마련이다) 속옷을 다섯벌만 가져갔다가 세탁할 시간이 없으면 어떡해.(물론 그럴 일은 없다. 세탁할 시간도 없는 출장이라면 애초에 가지도 않았을거다)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지만 밤에는 추워질지도 몰라. 울로 된 검은 재킷도 꼭 필요할거야.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들고갈 가치가 충분해.(칸은 절대 울로 된 검은 재킷을 입을 만큼 추워지지 않는다) 포말한 파티가 있을지도 몰라. 정장 비스무리한 옷이라도 가져가야 해리슨 포드가 등장하는 파티에 참가할 수 있을걸.(아이고. 잠바에 운동화 신고도 다들 문제없이 파티에 들어와서 처먹고들 있더라)


김도훈의 싱글라이프
결국 올해의 짐싸기도 예술의 경지는커녕 잔기술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하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니, 지금까지의 짐싸기 실패 역사를 능가하는 최악의 경지에 마침내 도달하고야 말았다. 영화제 기념품으로 나눠주는 면가방들과,가져왔으나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들 덕분에 20kg가 훨 넘어가는 육중한 슈트케이스를 갖게 된 거다. 비행기 탈 때 허용되는 짐의 무게? 이코노미 클래스는 20Kg, 퍼스트 클래스는 30kg이다. 게다가 에어프랑스 언니들은 손님의 짐이 20kg가 넘어가는 순간 얄짤없이 말한다. 파르동(Pardon) 무슈! 짐이 초과했어용!

다들 알다시피 짐 무게가 초과했을 때 물어야 하는 과징금은 엄청나다. 게다가 유로는 비싸다. 그걸 피하는 이상적인 방도는 딱 두가지뿐. 첫째, 짐을 잘 싸는 것. 둘째, 과징금을 마음대로 물거나 더 많은 짐을 허용하는 퍼스트 클래스를 마음놓고 탈 만큼 돈을 많이 벌거나 돈이 많은 직장에 다니는 것. 짐싸기 기술을 익힐 것이냐 돈을 많이 벌 때까지 기다릴 것이냐. 물론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김도훈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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